도서관에 갔다가 서핑 좋아하는 아들이 생각 나 신간 코너에 있는 이 책을 빌려 왔다. 서핑하는 카피라이터. 요즘은 직업을 가지고 취미생활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이분은 서핑을 어느 정도로 좋아하느냐 하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데 거의 매 주말마다 제주에 가서 파도를 타고 온다고 한다. 파도가 없다고 예보된 날은 그동안 돌보지 못한 집에서 빨래를 하며 쉰다. 자신을 맥시멀 리스트라고 드러내는 그녀의 집에는 여행에서 얻은 물건들과 자신이 그린 그림들이 있다.
통통하고 얼굴이 동그랗게 생긴 그녀는 외모 콤플렉스를 가졌었다고 한다. 지금은 까맣게 태운 건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지만 이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로부터 외모에 대한 견해를 들으며 자존감이 많이 상했었다. 남자를 한 번 사귀면 깊이 빠져드는 그녀는 그 덕분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신발을 신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만드는 일이고, 결국 서로를 피곤하게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단점마저도 사랑할 수 있다면 반려자로서의 자격을 어느 정도 갖춘 사람일 것이다. 지금은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만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나도 파도를 좋아하긴 하지만 서핑은 무섭다. 어렸을 적 남해 바다에서 높은 파도가 오기를 기다렸던 적이 있다. 허리만큼 오는 곳에서 파도가 올 때 점프를 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지는데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속도를 느끼는 서핑은 얼마나 짜릿할까? 매번 파도 예보를 확인하고 짐들을 챙겨 바다로 향하고, 짠 바닷물 속에서 버둥거리다 번거로운 빨랫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상당히 귀찮을 것 같은데, 그런 걸 감수하고도 매주 바다를 찾는 걸 보면 참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는 파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한 편이라 강원도나 제주를 찾아다니느라 고생스럽다. 실내 서핑장도 생겼다고 하지만 변화무쌍한 자연의 파도만큼 매력적이진 않을 것이다.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육지 생활을 해보고 싶어 대학을 육지에서 나오고, 엄청난 노력 끝에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결국 파도가 그리우면 바로 향할 수 있는 제주에 가서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외지인인 나도 제주가 그리운데 제주가 고향인 그녀는 오죽할까?
서핑은 너무 나이 들어서는 하기 어려운 젊음의 스포츠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녀가 언제까지 파도를 즐길지 궁금하다. 아마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바다를 즐겨 찾을지도 모른다. 겨울에도 파도를 타고, 심지어 새해 첫 해를 바닷물에 뜬 채 맞는 그녀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덩달아 없던 열정도 생기는데 그녀의 책을 읽으니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불쑥불쑥 생겨나는 것 같다.
이 책 내용 중 인생을 파도에 비유한 것이 너무 멋지다. 20대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인생의 파도를 최선을 다해 넘어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파도를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삶. 그렇지만 지금이 유일한 시간이라 생각하며 가장 나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 하루하루 애쓰며 살아간다. 앞으로 수많은 거친 파도가 다가오겠지만 아마도 그녀는 모두 잘 헤쳐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