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혀 있는 걸 데리고 왔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언제나 반갑다. 낯익은 이름도 있었다. 이석원, 박정민. 이 책은 8명의 작가 혹은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가 쓴 글로 엮여 있다. 원래부터 작가였다기보다 다른 직업이 있었던 경우가 많다. 운명적으로 글을 쓰게 된 이들은 때로 글이 써지지 않아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도 손이 생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신들린 듯 자판을 두드렸을 것이다.
책 속 작가들의 고백을 듣다 보면 이들은 글을 쓰고 싶음, 혹은 쓰고 싶지 않음에 대한 글의 청탁을 받고 이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자 작가인 박정민은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서른두 가지나 적었다. 쓰지 않을 이유가 이렇게 많은데도 그는 ‘쓸 만한 인간’이라는 꽤 읽을 만한 책을 썼다. 가수이자 에세이스트로 여러 베스트셀러를 쓴 이석원은 절필 선언을 닮은 ‘어느 에세이스트의 최후’라는 글을 썼다.
글쓰기가 일이 되는 순간부터 부담과 함께 마감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닮은 점이다. 마감 직전까지 머리를 쥐어뜯다가도 마감이 지나면 글이 이미 나와 있는 신기한 경험들을 해 보았을 것이다. 작가들에게는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만 작업 시간이 아니다. 길을 걷는 동안, 밥을 먹으면서, 버스에서도 글 쓸 거리와 아이디어를 찾고 메모하며 글을 만들어 나간다.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은 그렇게 엮은 글을 쏟아내는 시간인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무 생각 없이 글쓰기에 돌입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는 자신을 글 감옥에 스스로 가두고 엉덩이로 쓰기도 한다고 하니 모든 사람이 글을 걸어 다니면서 쓰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글 쓰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성실성이다. 계획한 분량의 글을 쓰고, 시간을 두고 퇴고하는 과정은 성실함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글을 써본 사람들은 한 권 분량의 책을 쓰는 작업이 쉽지 않음에 공감할 것이다. 간혹 일주일 만에, 또는 며칠 만에 책 한 권을 썼다는 사람들의 고백을 듣긴 하지만 퇴고의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으리라.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전고운은 작업실까지 얻어 글을 쓸 계획을 세우지만 스마트폰과 해야 할 일들, 그리고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는 내용을 유머 있게 썼다.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뒤로 밀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초초해지는 경험. 아마 글쓰기가 아니어도 누구나 느껴보지 않았을까?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다른 일 하느라 자꾸 미루다 연주회 날 좀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을 하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자꾸만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 좀처럼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경험들.
책을 좋아했던 이석원은 대형 서점 한구석에서 오랜 시간 책을 읽곤 했었는데 자신의 책이 서점에 꽂히고부터는 그런 기쁨을 맛보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판매 순위는 곧 그와 가족의 생활비였기 때문이다. 한동안 음악 세션과 작가 일을 병행했던 그는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음악은 17년을 했는데 글은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궁금한 작가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글을 쓰지 않을까? 글이 밥벌이의 수단이 되면서 순수한 창작의 기쁨을 잃기도 하지만 수많은 수작들은 그런 헝그리 정신에서 나왔다는 사실. 오래 글을 써 왔지만 쓰는 시간보다 준비 시간이 너무나 길어져버린 그는 인생은 원래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는 하늘의 원리를 아는 지천명이다.
영화 전문지 기자였던 이다혜는 글쓰기와 편집으로 청춘을 보내며 쓴 글의 양을 돈으로 환산하며 스스로의 목표를 정해 글을 썼다. 수많은 마감에 시달리면서 누군가가 시켜서 쓰는 글이 아닌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동경을 갖는다. 젊은 시절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글을 쓰다 서른세 살에 죽음을 맞은 김소진처럼 말이다. 하지만 생계의 벽에서 대부분은 멈춰 서게 된다. 그 벽을 넘은 사람은 대가가 되거나 이른 죽음을 맞기도 한다.
영화 각본을 쓰고 음악을 작곡 작사하고, 글도 쓰는 이랑은 글을 쓰다가 문서 통계에 들어가 글자 수를 확인하곤 하는데 그 자체가 이미 글쓰기의 리듬이 끊긴 것이라고 한다. 나도 늘 글을 쓰고 나면 그날 얼마나 썼는지 꼭 확인해보곤 하는데 사실 신들린 것처럼 쓰는 중이라면 문서 통계에 들어가 볼 필요가 없긴 하다. 짧은 글 한 편을 위해 2주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그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메모하고 음성 받아쓰기를 한다. 그녀의 각별한 키보드 사랑 이야기가 독특한데 나는 항상 다른 이에게 소음 피해를 주지 않는 저소음 키보드를 선호하고 키스킨까지 부착해 사용하는데 어떤 작가들은 타닥타닥 작업하는 느낌을 낼 수 있는 여러 축 키보드를 실험해보기도 하나 보다. 하긴 책 속 어느 작가는 글 쓸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아 10년 동안 바꾸지 않고 수명을 다할 때까지 하나의 노트북을 쓰기도 했다. 누구나 자신에게 편한 도구가 있으면 좋은 법이다. 이랑 작가는 지금도 마감 없는 일기를 행복하게 쓰며 잠자리에 들고 있을까?
서른두 가지의 쓰지 않을 이유를 찾은 영화배우 박정민은 지금도 글을 쓰고 있을지 궁금하다. 작년엔가 영화 속에서 여장을 하고 나와 웃음을 많이 주었던 그가 요즘 영화에서 잘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콤플렉스가 있고, 조용한 사람들이 의외로 톡톡 튀는 글을 쓰기도 한다. 박정민은 그만의 문체를 가지고 있는데 글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살아 숨 쉬는 듯한 글자들. 글을 쓰지 않을 이유를 열심히 찾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아마 쓰기를 더 열망하지 않을까? 독자인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김종관은 나와 비슷한 굿모닝 팝스 세대인가 보다. 지금도 그 잡지가 나온다는 책 속 내용에 무척 놀랐다. 라디오 인구가 많이 줄었을 텐데도 아직 잡지를 발행하는 걸 보면 마니아층이 있는 모양이다. 시나리오 작가라 그런지 이 글을 몇 가지 사실에 상상을 가미해 대사와 이야기로 엮었다.
읽고 쓰는 사람 백세희는 멋진 작업용 책상을 갖춰 놓고 좀체 앉지 않는 스스로를 탓한다. 써야 한다는 마음은 가득하지만 앉아서 그녀는 ‘쓰고 싶지 않다’라는 말만 연신 입력한다. 사이사이에 ‘진짜, 엄청, 잘 쓰고 싶다’를 넣어 가면서. 자신의 책이 갑자기 인기를 얻으면서 갈리는 평 때문에 상처도 받았을 것이다. 인정받고는 싶지만 욕먹기는 싫은 마음은 그의 책 제목과 닮았다. 그녀는 지금도 무리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소설가 한은형은 쓰고 싶은 마음만으로 20년을 보냈다고 한다. 소설을 많이 읽으면 소설가가 되는 줄 알고 기다린 그녀는 서른이 넘어 그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그녀는 어쨌든 여러 번 문학상에 당선이 되어 큰돈을 상금으로 받기도 한다. 평생 한 번 문학상을 받기도 어렵다는 면에서 그녀가 보낸 20년의 세월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의 퇴고를 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구상한다니 복 많은 소설가다. 그녀는 글쓰기 좋은 책상과 스탠드를 갖추어 두었다. 마음 상태에 따라 조명 색까지 바꾸며 모래시계와 아날로그 초시계도 사용한다. 책 속 어느 작가보다도 무언가 체계적이고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진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하루치의 일을 하고 아홉 시에 산책을 나가다니. 이런 도구들을 갖추고 새벽에 일어나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한 번 해보고 싶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임대형은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갖지 않거나 갖더라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 소음에 하나를 더하기 싫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책이나 영화는 그럴 수 없게 한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위로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글 쓰는 건 쉽지 않다. 죽기 직전까지 성실히 작업했던 ‘피너츠’의 작가 찰스 M. 슐츠를 존경하는 그는 글쓰기를 없는 근육을 만들어 유지하는 것에 비유한다. 일기 외의 글은 모두 쉽게 피로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글쓰기를 택했다. 많은 다른 작가들처럼.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