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인문학 모임 도서라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고미숙 님의 책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가 유일한데 입말 그대로 쓰고, 외래어도 많지만 공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만났고, 공부란 평생 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공감했었다. 이 책 역시 고전을 딱딱하지 않게 접하도록 하는 입말이 들어있다. 강연 내용을 그대로 옮긴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선 후기 연암과 다산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서로 맞물려 살다 갔다. 연암이 먼저 태어났고, 외모가 상반되는 느낌이다. 어울렸던 사람들이 겹치지만 둘은 서로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만난 기록은 없고 한강에서 화성으로 이어지는 배다리 낙성식에서 한 자리에 있었을 수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연암은 다산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다산은 연암에 대해 좋게 말하지 않았다. 둘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생각하는 바가 많이 달랐을 수 있겠다. 주류로 태어난 연암은 변방으로 가길 원했고, 비주류였던 다산은 중앙으로 가고자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권력을 애써 내려놓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던 연암은 오십이 넘어 생계형 말단 관직을 맡게 되고, 다산은 대과에 합격하여 관직을 얻었지만 오래지 않아 귀향을 간다. 유람을 좋아하고 해학적인 연암은 친구와의 우정을, 올곧게 살았던 다산은 형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조는 두 사람의 재능을 익히 알고 활용하고자 노력했다. 연암이 토지의 상한을 주장한 토지 개혁안 <한민명전의>가 수록되어 있는 농서 <과농소초>를 지었을 때 정조가 흡족해했고, 다산은 정조가 내는 과제에 수석을 차지했다고 한다. 정조가 더 오래 살았다면 다산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주류의 일원으로 태어났지만 정계 진출을 하지 않고 파당도 만들지 않았으며 재야인사로 남고 싶어 했던 연암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적게 휘말린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산은 승승장구하던 차에 천주교로 인해 유배를 가서 오랜 세월을 보낸다. 그 덕분에 ‘다산’이라는 이름과 수많은 저작이 나왔겠지만.
둘이 달랐던 것 중 큰 것이 바로 문체이다. ‘정조는 고문을 사수하는 판관이었고, 연암은 고문을 타락시킨 배후 조종자였으며, 다산은 정조의 돌격대였다.’(174-175쪽)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두 사람의 대표작인 열하일기와 목민심서는 그 내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다르다. 둘 다 번역본으로 읽어보긴 했지만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 없다. 열하일기에 심취해 재미를 느꼈다는 저자는 아마도 깊이 탐독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박 겉핥기로는 열하일기에 담긴 깊이를 알 수 없다. 반면 방대하다는 목민심서는 얇은 책으로 읽어서인지 너무 감동적이었다. 목민관으로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을 딱딱하게 말하는 것이 왜 감동일까? 저자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같은 형식으로 늘어놓는 잔소리는 감동을 줄 수 없다고 하였는데 나는 연암보다는 다산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쩌면 반복적으로 말하는 다산의 말속에 담겨 있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방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 두 사람의 평전 1탄이라는 게 놀랍다. 책날개를 보니 그 뒤로 두 권의 시리즈가 더 나왔다. <호모 쿵푸스> 저자답게 저자가 정말 연구를 많이 했다는 생각을 했다. 조선 후기 역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나에게 끝까지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었다.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대략적으로라도 조선 후기의 두 별에 대해 다시 떠올려보고, 그들의 삶과 업적을 새긴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yEMj5XNGDB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