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단편소설을 하나 찾아 필사해 보고 싶어 그동안 잘 읽지 않았던 단편들을 골라 읽는 중이다. 얼마 전 글 쓰시는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방법이다. 김영하의 ‘아이스크림’을 추천하셨는데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찾기가 어려워 이 책과 다른 한 권을 빌려왔었다. 이 책은 김영하 님의 작품만 모은 것이고 다른 한 권은 그의 작품이 실린 단편 수상작품집이었는데 두 책에 다 ‘옥수수와 나’라는 작품이 실려 있다.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정말 놀랐다. 청소년이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내용이 있어서였다. 영화라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을 텐데 이상하게 책에는 그런 등급 표시가 없다.
사실 요즘 소설들을 찾아 읽으며 외설적인 부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이런 내용도 잘 쓸 수 있어야 진정한 작가가 되는 것일까? 내가 너무 반듯한 캐릭터만 생각해서 글을 못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내용만 고집하고 있으니. 이런 책들을 읽으며 발상의 전환을 해 볼 필요가 있겠다. 내가 너무 틀에 박힌 사고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 책에는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김영하 님 특유의 유머 섞인 대사들이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의외로 대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도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연인처럼 늘 함께 지내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딸의 이야기를 편지 쓰듯, 또는 이야기 들려주듯 자연스럽게 진술하는 내용인 ‘오직 두 사람’은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현주가 아버지가 아프다는 걸 알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와 딸의 오묘한 관계는 예전부터 늘 이야깃거리가 되어 왔지만 이렇게 소설로 담을 생각을 한 작가의 시도가 부럽다.
‘아이를 찾습니다’도 정말 센세이셔널하다. 마트에서 카트에 태운 아들이 사라지고 십일 년이 지난 후, 부부는 지칠 대로 지쳤고, 심지어 엄마는 정신 질환을 앓게 되었다. 아이만 있으면 다시 행복해질 것 같았지만 갑자기 되찾은 아이는 부부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한참 사춘기를 지나는 청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엄마인 줄 알고 살았던 한 여성의 죽음으로 원래의 가정에 돌아온 아들은 잘 적응하지 못했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 갑자기 들어온 아들과의 동거는 편치 않다. ‘인생의 원점’에서는 과거 연인을 만나고, 그녀가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게 된 서진이 그녀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그녀의 집으로 간다. 남편의 폭력에 대항하던 그녀가 남편을 쓰러뜨린 것이다. 인생 최대의 갈림길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선택에는 항상 다른 선택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옥수수와 나.’ 시작은 좋았다. 자신을 옥수수라고 생각해 정신 치료를 받던 한 소설가의 이야기이다. 한때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썼지만 더 이상 작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부인과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 신세한탄을 하지만 친구들도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날 전 부인을 통해 찾아온 미국 갈 기회를 그는 불순한 생각으로 잡고 미국으로 떠난다. 그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고 그곳 역시 작품에 대한 열정을 당기지는 못할 즈음 한 미인이 찾아온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환상의 시간이 시작된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모호한 이 작품은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양복을 유품으로 챙겨 오는 지훈의 사연이 담긴 ‘슈트,’ 미혼모가 될 결심을 한 최은지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이 난 출판사 사장님과 그의 병든 친구 박인수의 이야기, ‘최은지와 박인수,’ 어느 날 갑자기 탈출 게임 주인공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신의 장난.’ 각 상황과 설정이 기발하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가 소설을 구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글이 안 써지면 다른 일에 집중한다. 그가 손톱 깎는 시간, 누워서 쉬는 시간 모두 소설을 쓰는 과정이다. 아마도 누군가와 만나서 나누는 대화, 길 가다 마주치는 장면들 모두가 모자이크처럼 그의 소설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상의 전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유치하다, 야하다, 이상하다, 하며 쓰지 못하는 사람과 쓰고 후회하는 사람의 차이가 범인과 작가를 나누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필사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을 찾기 위해 단편들을 찾아 더 읽어보아야겠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episode/17504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