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러 갔다가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 헌책방에 들렀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길에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 두 권을 가방에 넣었는데 둘 다 읽고 리뷰까지 쓴 책이었던 것이다. 계속 들고 다니던 연금술사 원서를 꺼내 읽었는데 올 때는 한국어 책이 읽고 싶어 헌책방에 들렀다가 이 책이 눈에 딱 띄었다. 며칠 전 방 구조를 바꾸면서 책을 많이 기증하거나 팔거나 버렸던 터라 예치금이 많이 있어 그걸로 구입했다. 아끼고 덜 쓰는 걸 좋아하는, 그럼에도 가끔은 큰돈을 쓰기도 하는 나는 이 책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연주회장에서부터 읽었는데 오는 길에 반 이상을 읽었다. 제목처럼 내용도 글자도 그리 많거나 크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는 삶은 그녀의 글에서도 드러났다. 이 책을 살까 말까 하며 들춰보던 나는 평범한 미니멀리즘 책인 줄 알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장석주’님의 말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 걸 보고 바로 책을 사기로 결정했다. 책 속 문장들은 정선되었고, 멋스러웠다.
그녀의 삶은 남다르다. 1인 가구인 그녀의 집에는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다. 그 흔한 소파도, 침대도 없다. 이불마저도 사계절 사용 가능한 적당한 두께를 구입했다. 전자레인지도 없고, 얼마 전 믹서기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 집에도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쟁여놓은 물건들이 많다. 이 책을 읽고 의자 하나를 버렸고, 대형 쓰레기봉투도 구입했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기증하거나 버리는 게 낫다.
항상 저렴하고 괜찮은 물건을 찾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보다 심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을 받았다. 디자인보다 질보다 가격을 먼저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자세는 정말 남다르다. 지구를 생각하며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에어컨이 있는데도 켜지 않고 여름을 나고, 적은 재료로 간단히 요리하며 음식쓰레기도 거의 만들지 않는 저자이지만 텀블러나 손수건과 같이 바리바리 가방의 짐을 져야 하는 그녀에게 약간의 타협의 여지는 있다. 간편한 외출은 자신을 위한 작은 사치이기도 하니까.
충동구매를 하지 않고, 불필요한 생활용품을 구입하지 않으며 외식을 즐기지 않아 쌓인 돈으로 그녀는 마음 내키는 대로 훌쩍 떠난다. 짐 또한 아주 가볍다. 며칠이 되었든, 몇 달이 되었든 그녀는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문다. 해야 할 일들도, 챙겨야 할 사람도 많지 않은 그녀가 사실 부럽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의 따스한 정의 많음보다는 깊음을 택했을 것이고, 경제적 부유함보다는 시간의 자유를 선택했다. 여전히 책을 쓰고, 번역을 하며 강의도 한다. 어딘가에 매이지 않은 그녀의 삶이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와 비슷하게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직 먹고 싶은 게 많고, 챙기고 싶은 사람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다. 그렇지만 지구를 생각하고, 구매 이후를 생각해 신중하게 물건을 사며, 훌쩍 떠날 마음의 여유는 꼭 갖고 살고 싶다.
많은 책을 버렸지만 이 책은 옆에 두고 자주 꺼내 읽어보고 싶다. 얇아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좋다. 읽고 또 읽는 책이 몇 권 안 되는데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episode/17420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