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몇 년간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색다른(?) 내용이었고, 가장 많이 웃게 했던 소설이었습니다. 새벽에 혼자 미친놈처럼 책을 끌어안고 1분 동안 ㅋㅋㅋ 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꼭 읽어보세요!!'할 수 있냐고 하면 흠....그런 느낌입니다. "나는 정말 좋았는데... 나는 정말 웃기고 재미있었는데, 글쎄다...너한테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일생에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에는 한계가 있고, 나는 이미 나이를 꽤 먹어 책을 읽을 시간이 막상 그닥 많지 않다는걸 문득 깨달으며 이곳저곳의 '100대 필독리스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별로 인기없는 이 책이 의외로 거의 모든 필독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는 걸 봅니다. 물론 예전에도 이 책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지만, '전쟁'과 '미친다'라는 두개의 키워드는 엉뚱하게도 감우성이 주연했던 <알포인트>라는 영화를 연상시켜 주곤 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정신이 피폐해지며, 전쟁이란건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해 싸우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제정신이 아닌 듯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한 공군부대 안 군인들의 비정상적인 삶을 통해 반영시켜보는 소설입니다. 1961년에 출간된 소설이고, 베트남 전쟁 특수(?)로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렸던 책입니다.
장소나 시대배경에 대한 일말의 설명 없이 매우 불친절하게 시작합니다. 군데군데의 고유명사로 시대 배경은 2차 세계대전임을 눈치챕니다. 상황 설명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알 수 없는 인물들 간에 파악불가능한 대화들이 나열됩니다. 1권의 절반을 읽어나갈 때까지도 그러한 난감함이 지속됩니다. 수십~수백개의 짧막한 Scene들이 시간순서도 무시한 채 무슨 RPG게임의 퍼즐이나 수수께끼마냥 출몰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복잡하던 파편들이 머리 속에 대략의 얼개로 조합되고 눈동자가 번쩍이며 감탄했습니다. 이 책은 촘촘하고 견고하게 엮은 방충망같은 소설이었습니다. 뜬금없던 모든 장면과 대화는 결국 각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1권 초반 어디선가 사소하게 쓱 지나갔던 뜬금 한마디가 2권 중반에 왜 그 말이 나왔는지 밝혀지는, 그런 식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독자에게는 고성능의 기억력과 눈썰미가 장착되어야 합니다. 이건 좀 부담스러운 요소입니다.
이 책 말미의 작품설명이나 인터넷상의 리뷰들에서 '캐치-22'라는 용어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조셉 헬러가 이 책에서 지어내어, 현재는 영미권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관용어가 된 표현으로, '모순으로 인해 어찌할 수 없는'상황을 의미합니다. 가장 쉬운 예가 이번에 졸업하는 신입사원을 뽑는데 업계경력이 필수조건이라던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접 만나서 먼저 약속을 해야한다던지 하는, 말도 안되는 모순적 상황입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Catch-22 조항은 '전역을 하고 귀향을 하려면 정신이상이 되어야 한다'인데 자신이 정신이상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은 정신이상이 아니라 제정신이라는 이야기이므로 전역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이 답답한 느낌은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에게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들과 결합되어 전쟁으로 파괴된 삶과 공간으로부터 세기말적 음울함으로 전개됩니다. 다소 난해했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내용은 충분히 공감되고 납득할만 하며, 예상외로 경쾌하게 결말지어집니다.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반전(反戰)과 휴머니즘의 중요성을, 좁게 보면 개인에게 국가와 조직의 가치, 그리고 본인의 삶의 가치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결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조셉 헬러가 쓴 작품은 오직 이 작품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그렇게 재미가 없나?하고 의구심을 가져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요사리안과 몇몇 인물이 등장하는 후속격인 작품도 있다고 하는데, 판권을 어디가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출간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사족 1. 번역을 소설가 안정효님이 하셨는데, 읽어가면서 확실히 소설가 번역 그 특유의 의역과 자의적인 표현이 많음이 느껴집니다. 원문에 가까운 직역은 과연 어떨지, 혹시 비록 보잘 것 없는 영어실력이지만 원서를 한번 읽어볼까? 하는 충동이 생겼습니다.
사족 2. 개인적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불만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많은 책의 작가사진을 거의 대부분 노년 즉, 할아버지 할머니때의 사진을 쓴다는 점입니다. 오래전부터 이 책을 책등과 표지 뒷면에 있는 할아버지가 쓴 책인 줄 알고 있었는데, 조셉 헬러가 서른 남짓에 썼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의 젊은 모습은 정말 쉬크한 훈남 그 자체였고, 그 사진이 표지에 있었다면 더 일찍 읽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