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혁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소설 ‘P의 도시’라는 책으로 먼저 만났다. 두껍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고, 재미있기도 해서 순식간에 읽고, 그가 쓴 다른 소설을 검색하다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단순하면서도 뒤가 궁금했던 처음 읽은 작품과 이 작품은 같은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스타일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더 좋았다. 공부 잘하지만 사회의 때가 덜 묻은 어리숙하면서도 바른 주인공의 이름은 바로 작가의 이름 ‘문지혁’이다. 그의 동생 지혜는 실명 인지도 모르겠다. 소설과 실제 사이의 거리는 작가만이 알겠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닌 그는 유학 경험을 살려 이 책을 썼다. 뒤에 보니 이 책을 약 두 달 동안(중간에 허리가 아파 쉬었던 때를 빼면) 스터디 카페에서 썼다고 한다. 공교롭게 나는 이 책을 스터디 카페에서 읽고 이 그을 쓰고 있다. 학창시절 독서실 다닌 이후 도서관 열람실을 제외하고 이런 곳은 처음인데 작가가 여기에서 소설을 쓴 이유를 알 것 같다. 책상에 앉아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이 책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써 내려갔을 작가를 상상해 본다. 장편 소설을 두 달만에 썼다면 아마도 빨리 쓴 것이겠지?
책은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장은 1부터 98까지의 번호를 단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짧게는 세 줄부터 길게는 어러 페이지에 걸쳐 있기도 한 하나하나의 글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유머러스하며, 재미가 있다. 웃기는 장면들에서는 스터디 카페에서 숨을 죽이고 어깨를 들썩여 가며 오래 웃었다. 어리숙한 그의 행동과 말, 그리고 우리말을 처음 배우는 귀여운 외국인들, 혹은 한국인 3세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말을 가르치는 그의 말을 통해 한국어를 객관적으로 느껴보기도 했다.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 생활을 했던 책 속 문지혁을 보며 나의 짧았던 호주 생활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떻게든 섞여보려 했지만 거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외국 생활. 아마 작가에게도 그런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취업비자를 받았다면 한국에 오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마지막에 그는 한국행을 택한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시는 곳이니까. 그런 어머니가 아프니까.
책에는 한국인 유학생이 느끼는 고뇌와 갈등, 그리고 설렘과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법 빠른 출세라 생각했던 대학원 졸업 후 한국어 강사 자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고,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이이지만 이민가방 둘을 남기고 모두 처분한 다음에는 서로 안녕이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안녕’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평화’로 번역했던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간절히 바라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안녕하고, 안녕히 계시고, 안녕하 가시길 바라는 우리들은 다른 이의 평화를 늘 염원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소설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 짧은 일기 같은 글들이 하나의 주제로 엮일 때 장편소설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앞으로 소설을 쓰게 될 때 이런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작가가 자신을 따라 했다고 기분 나빠할까?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 책 보다 잘 쓰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작가의 말 맨 마지막에 썼듯 여기에 무엇을 더할 수 있겠는가? 이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