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앞두고 있어서일까? 늘 집에 있던 책인데 새삼스럽게 처음 본 책처럼 꽂혀있는 게 눈에 띄어 들고 다니며 읽었다. 언제 사 둔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헌책으로 언젠가 구입해 두었다가 잊어버렸었나보다. 그 때도 거제에 한 번 가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구입해 두었는지 모르겠다.
거제는 나에게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여행이라는 걸 별로 해 본 기억이 없는 나에게 여름 엠티는 강렬한 추억으로 아직 남아있다. 몽돌해변에서의 자글자글한 파도소리를 듣던 젊음의 한 페이지를 이 책을 통해 다시 떠올렸다.
글과 그림 작가 서른 다섯 명이 함께 거제로 갔다. 그곳에서 단체 여행을 하며 포로수용소와 대우조선소, 옥포대첩 공원, 몽돌 해수욕장, 지심도 등을 다니며 도다리쑥국을 비롯한 맛난 거제의 음식을 먹고, 창작 레지던시의 후보지를 물색했다. 거제에서 거주 중인 작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거제가 처음인 여행자들이었다. 그들의 글에서는 처음 들은 산뜻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등장한다. 같은 곳에 가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워낙 글재주 있는 분들이어서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개성이 묻어나 있지만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글은 그곳에서 삼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제니 작가의 글이었다. 남들이 잘 모르는 곳을 홀로 걸으며 진짜 거제의 속살을 맛보는 기쁨은 여행자로서는 알 수 없는 거주자의 특권이다.
글뿐 아니라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그림 작품들도 정말 볼만했다. 바닷가이니 파도나 바다를 표현한 작품들도 있지만 오광대나 식물, 바람, 동백꽃도 화폭의 주인공이 되었다. 작가들에게 창작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의 거제시의 배려는 지금쯤 어떤 결실을 맺고 있을지 궁금하다. 올 여름 이 책을 들고 거제를 방문하고 싶다. 작가들이 극찬한 지심도를 거닐어 보고, 스무 살의 추억이 담긴 몽돌 변도 걸어보고 싶다. 작가가 관람한 포로수용소나 옥포대첩 공원도 가 보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제니 작가의 비밀의 숲이 가장 궁금하다.
남의 여행기를 보는 것은 가보기 전에는 손에 잡을 수 없는 피상적인 꿈 같은 여정이나 실제로 다녀온 후에 다시 읽으면 눈에 선하게 다가올 것 같다. 거제를 다녀온 후, 혹은 다니며 이 책에 다시 빠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