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도서관에 갔다가 신미경 작가의 책이 좋아 도서관에 있는 그녀의 책들을 모조리 빌려왔다. 이 책도 그중 하나이다. 메모에 관한 책에서 그녀의 비우는 생활 습관이 언급되어 있었는데 이 책에는 구체적으로 실천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 거나 닥치는 대로 먹고, 돈이 생기는대로 옷이나 신발을 사서 채우던 그녀는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과연 이렇게 바쁘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시간에 쫓기며 인스턴트나 편의점 음식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한 그녀는 그때까지의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기로 마음먹고, 기록과 함께 제대로 된 식사와 비움을 실천해오고 있다.
나도 왕년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맥시멀리스트였다. 옷이 옷장에 가득해도 옷을 또 사고, 신발과 가방도 종류대로 갖춰놓았다. 책은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천여 권정도까지 보유했던 적이 있다. 아깝다는 이유로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책을 통해 그런 습관이 결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정기적으로 비움에 관한 책을 읽고 대대적으로 정리한다. 정신없이 달려온 학기가 끝나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여름과 겨울을 주로 노리므로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식구가 많은 우리 집은 내가 구입하지 않은 물건도 사명을 다하거나 혹은 쓸모를 잃고 쓰레기로 굴러다닌다. 재활용품은 버려도 버려도 계속 쌓인다. 그렇다고 안 먹고 안 쓰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1인 가구인 저자에 비하면 기본적으로 비움의 생활이 몇 배로 어렵다는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필요 없는 물건은 사면 안 된다, 아까워도 용도를 다한 물건은 버려야 한다, 이런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지 않으면 어느새 집은 물건들로 가득 차게 된다. 무심코 샀던 물건이 애물단지가 된다는 걸 경험한 나는 지금은 물건을 함부로 사들이지 않는다. 특히 부피가 큰 가구나 가전제품은 특별한 일 없이는 새로 사지 않는다.
한동안 책이 우리 집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주로 빌려 읽지만 순간적으로 마음이 동하는 책이거나 누군가가 대출 중이어서 바로 빌리기 어렵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너무 좋아 다시 읽고 싶은 경우 무조건 헌책이라도 구입부터 한다. 그렇게 사 두고 다시 읽은 경우도 있지만 사실 손에 꼽을 정도이다. 1년 전엔가 큰 책장 세 개를 버리며 대대적인 정리를 했는데도 여길 봐도 책, 저길 봐도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산 책도 있다. 아무리 비움에 대한 책을 읽어도 나는 책에 대해서만은 관대한 편이다. 굴러다니던 책이 어느 순간 가족 중 누군가의 눈에 띄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옷이나 신발, 가방을 한동안 계속 사들이다가 요즘은 좀 뜸한 편이다. 옷 입는 스타일이 바뀌기도 해 많이 버렸고, 그렇게 좋아하던 가방과 신발은 이제 가볍고 무난한 것 위주로 몇 개만 주로 들고 다니게 되어 이번 여름에도 많이 버릴 것 같다. 사지 않은지도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화장품! 저자의 화장대를 보며 복잡다단한 나의 화장대를 떠올렸다. 이 책에는 씻는 용도로는 비누 하나, 화장품도 한두 개만 쓰신다고 나오는데 솔직히 그렇게까지 할 자신이 없다. 사실 비누는 책에 소개된 순비누를 사서 잘 쓰고 있긴 한데 그걸로 머리를 감았다가 머리가 달라붙고 찝찝해 바로 샴푸로 돌아왔습니다. 얼굴도 다시 늘 쓰던 튜브에 든 세안용품을 쓴다. 하지만 샤워할 때는 비누가 정말 좋아 계속 쓸 생각이다. 결국 책을 읽고 비누까지 하나가 더 는 셈인데 앞으로 바디용품을 적게 쓴다면 환경을 지키는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것이라 위안한다.
책의 표지에 나오는 나무 옷걸이. 여러 책에서 언급된 물건이고, 실천하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아직 사지 못한 물건이다. 작은 드레스룸에 나와 남편의 옷을 모두 걸어 놓기에는 아무리 옷 수를 줄여도 나무 옷걸이는 감당이 안될 것 같다. 여전히 내 옷장은 세탁소에서 준 옷걸이로 가득 차 있다. 궁극적으로 조금 더 비워야 할 곳이 옷장인 셈이다. 아까워서 아직 버리지 못한 신발들도 한번 정리해야겠다.
글을 쓰며 둘러보니 예전에 비하면 짐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정리하고 버려야 할 것이 보인다. 미루지 말고 책에 있는 것처럼 ‘차근차근 하나씩’ 정리하자. 더운 날씨에 쾌적하게 정리된 곳에서 생활하는 것도 피서다.
얼마 전 자동차 수리를 하러 갔다 왔다. 며칠 전에 갑자기 들어온 엔진 경고등 때문이었는데 카센터에서는 엔진은 이상이 없고, 배기가스 나오는 곳에 있는 두 개의 센서 중 하나가 상태가 안 좋다고 나오니 더 타다가 시간이 날 때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내친김에 가서 바로 고쳤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 하는 것도 일종의 비움이 아닐까? 나의 할 일 목록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지우는 일. 그것도 삶의 비움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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