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진 수 백권의 책 중에서 손에 꼽을만큼 애정하는 책 중에 하나입니다. 한번 완독하고 책장으로 돌려보내는게 아니고 늘 책상위에 두어 아무때고 집어들어 읽는 책이기도 합니다.
제작년인가 여름에 우리나라에서 현생 현대미술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한여름에 무려 두시간 정도를 기다렸다가 입장을 했었는데, 사진으로만 보던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두시간이 아니라 열두시간을 기다렸어도 후회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라고 느끼고 돌아왔더랬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가 궁금해서 책을 찾아봤는데, <다시, 그림이다>라는 책이 눈에 들어와서 구입을 했었지요. 그 책은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라는 미술평론가의 대담을 담았던 책인데, 호크니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대로 흥미있었지만 마틴 게이퍼드의 이야기들은 비전문가인 제게는 조금 더 쉽게, 더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다시, 그림이다>와 비슷한 포맷, 비슷한 디자인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번에는 마틴 게이퍼드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 '필립 몬테벨로'와의 대화를 담은 책이 있었다는 걸 알고 주저없이 또 구입했던 책이었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글인데, 누군가 움베르토 에코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에코 선생님은 예술작품 속 인물 중에서 같이 한번 저녁식사를 하고 싶은 여인이 누구입니까? " 움베르토 에코는 "우타 후작부인"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우타 후작부인은 인물에 대해 알려진 바도 없고 역사적 의미도 제로인, 독일 나움부르크 대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한 부부 동상 중 일부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조각으로 유명하며, 저도 그때 사진을 검색해보고 아름다움에 감탄했었고, 솔직히 저도 그림이나 조각을 은근히 본 편인데, 제가 봤던 작품의 주인공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찾아가서 실제로 보고싶다고 나만의 리스트에 올려 놓았었습니다.
그러고 세월이 좀 흘러서 <예술이 되는 순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 책의 머릿말에 "딱!"하고 나타나서 저도 "뜨악!"하고 놀랐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님의 마음 속 첫사랑이었다니요! 이러하니 이 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몬테벨로 관장님이 마치 제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이 책이 다른 미술책들과 구별되어지는 점은, 장황한 작품설명 보다는 순수하게 관람자의 입장에서 제목 그대로 "예술이 되는 순간"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는 점입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다녀보신 분들이라면 그런 경험이 있으실겁니다. 그냥 보통 그림이나 조각인데 유심히 보다가 그 어떤 순간에 '딱' "와!"하고 예술로 강림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몬테벨로와 게이퍼드는 전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 박물관, 성당 등을 돌아다니며 작품과 그 장소와 그 느낌에 대해 대화를 나눕니다. 서술하거나 가르쳐주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미술관을 거닐면서 작품에 대한 의견교환도 하고, 주변 분위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면서 잡담을 하기도 하고, 미술관에 걸린 포스터나 현수막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이는 제가 직접 두 사람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제 미술관과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착각 비스무리한 느낌도 줍니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지 않고,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작품보다는 마이너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기 때문에, 미술에 대해 쌩초보님들보다는 미술사나 미술작품에 책을 한두권 이상 읽어보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마틴 게이퍼드의 또 다른 책, 예술과 풍경이라는 책이 몇 달전에 나왔는데, 곧 읽어보려 합니다.
구매해서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