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작가의 책을 네 번째로 만났습니다 . <보통의 존재 >를 처음 읽고 문체의 신선함에 끌려 며칠 간격으로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라는 산문집과 <실내인간 >이라는 소설까지 읽었습니다 . 내용이 어렴풋하여 5년 전 썼던 블로그 글을 찾아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 지나치게 솔직한 그의 사생활 이야기가 충격적이기도 했고 , 전직이 가수였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 남의 연애사를 들으며 남자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 제가 알기로는 유일한 소설인 <실내인간 >도 소설가가 주인공인 데다가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것이 좋았습니다 . 그의 책 세 권을 금세 읽고 꽤 오래 기다려 이 책을 만난 셈입니다 . 이 책에서도 등장하지만 전작인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은 읽지 않았는데 다른 책들보다는 덜 흥행했었나봅니다 . 이후 그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며 방황하기도 하고 실제로 몸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 그 책을 다시 찾아 읽고 싶어집니다 .
<2인조>가 출판된 후 많은 블로거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것을 보고 읽고 싶었는데 관내 도서관에 이 책이 단 5권밖에 없다는 것을 보고, 책을 상호대차 할 수 있을까 하여 기다렸습니다. 한 번은 다른 도서관에 책이 대여가능으로 나와 있어 상호대차를 눌렀더니 하필 그 때 이미 다른 도서관에서 두 권의 책을 빌린 상태였습니다. 두 책을 반납한 후에는 이미 다른 분에 의해 대출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항상 책을 만나게 된 계기가 장황한 느낌입니다.
오래 기다려 읽기 시작한 책인데 거의 하루 만에 읽었습니다. 오래 아껴가며 읽고 싶었는데 책의 장수에 비해 한 페이지에 글자 수가 적어 책장이 그냥 막 넘어갔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술술 넘어가는 책’의 목표를 달성한 셈입니다. 게다가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그의 일상을 함께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가 말한 책 읽는 동안 독자와 작가가 2인조가 되는 기쁜 경험을 한 셈입니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진짜 2인조는 내면의 자신과 실제의 나를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 안의 나와 교류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내면의 나 자신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냅니다. 이 책을 통해 나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늘 칭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소심하고, 아픈 것을 지나치게 피하고 싶어 하고, 한 때 옷 사는 일에 골몰한 그의 일상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아니라는 그의 말이 실감납니다. 실제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느낍니다. 어떤 계기로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아이도 있고, 작가의 말처럼 노년에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어른도 있으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작가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어제보다 나은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발버둥 치며, 올바른 것을 위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인간적인 면이 책의 매력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글을 쓰고 지속적으로 수정하듯 우리의 인생도 계속 수정해 나간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할 때가 많습니다. 작가는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의 기준에서 좋으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까지 시간이 참 많이 걸립니다. 저자도 한때 좋아했던 좋은 차나 화려함(어릴 때 더 속물적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 것, 환경에 좋은 것이라면 좌절할지언정 작은 노력을 해 보는 것과 같은 소박한 자신만의 철학이 마음에 듭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생활이 조금씩 줄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그의 말은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인데 실제로 그렇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지만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항상 함께 하는 나 자신이 있으니까요.
--- 본문 내용 ---
- 거절이란 내게 무엇일까. 이십오 년 전 내 정신과 진단서에 ‘경계선 인격 장애’라는 병명이 있긴 했지만 그다지 의미를 두진 않았다. 난 그저 내 병을 크게 우울증으로 이해했으므로 그런데 나중에 그 경계선 인격 장애라는 게 거절과 상실에 유난히 취약한 병이라는 걸 알고는 좀 의외란 생각이 들긴 했었다. 나도 거절당하는 일에 그냥 남들만큼 힘들어하고, 남들도 나만큼은 반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며칠 전엔, 작지만 제법 영향력이 있는 어떤 서점에서 얼마 전 나온 나의 새 책을 유독 큐레이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다. 대중 앞에 선 지 이십오 년. 이런 상황에는 너무 익숙해서, 이런 일이 나한테만 벌어질 리 없고, 누군가 나만 콕 집어 이런다고 느끼는 게, 세상이 나를 그렇게나 신경쓴다고 여기는 게 얼마나 큰 자의식 과잉인지를. 그럼에도 요즘처럼 연달아 거절당하는 일이 쌓이면,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세상이 나를 거부하고 밀어내는 것만 같은 느낌에서 좀처럼 자유롭기 어렵다. (53쪽)
- 뭐든 좋은 다른 일을 하나 더 마련해두는 것은 나 같은 창작자나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회사원에게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언제든, 세상이 나를 파이어하기 전에 다른 보험을 들어 놔야 한다. 항상, 패를 쥐는 쪽은 내가 될 수 있도록. 그래야 덜 불안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의 멘탈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남보다 덜 타격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할 테니까. 잊지 말자. 패는 항상 내가 쥘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패는, 여러 주머니(일)에서 나온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기로는 그렇다. (178쪽)
-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달라서 많은 돈과 권력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고 뒷주머니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탕 하나에 함빡 웃음을 짓는 이도 있을 것이다. 행복은 이처럼 모두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며 나이와 성별, 세대별로도 다른 모습을 띤다. 어릴 적의 행복이 기쁨과 설렘 재미 같은 것들이었다면 어른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주로 감사함과 안도감은 아닐는지. 걱정, 불안, 고통이 없는 상태.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지 않은 대가로 주어지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들. 행복이 이처럼 주관적이라 저마다 다른 모습을 띤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하나 찾는다면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스스로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 만약 행복이란 게 자기 뒷주머니에 꽂혀 있는 줄도 모르고 평생을 보내게 된다면 행복은 먼 데 있지 않다는 말이 다 무슨 소용일까. (192-193쪽)
- 글을 쓸 때 나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체력이 닿는 한 글을 쓰는 사이사이 머리가 방전될 때마다 다른 일을 해주는 게 전부다. 글, 청소, 글, 운동, 글, 밥 짓기, 글, 산책……. 책을 쓴다는 건 몸이 물에 반쯤 잠긴 채 망망대해에 둥둥 떠 있는 상태와도 같다. 수시로 잠겼다가 떠오르길 만 번쯤 반복하면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오늘도 나는 한 번 깊게 가라앉아 이대로 숨이 멎는 줄 알았다가 저녁때 가까스로 떠올랐다. 이렇게 또 원고의 일부를 채운다. 오늘 하루, 아니 주말 내 헛수고를 하지 않은 셈이 되어 안도했다. (207쪽)
- 내가 만든 많은 것들이 그러했듯이 나라는 글 역시 살아 있는 한 계속 다시 쓰여져야 하리라. 책 한 권을 십 년이나 고쳐야 하는 주제이니만큼, 사람인 나를 고치는 일은 평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오늘도 수정은 계속된다. 글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작가로서도. (297쪽)
- 사소한 것이라도 나로 하여금 주눅드는 상황을 자꾸 경험하게 하지 않기. 대신 작고 별것 아닌 것이라도 좋으니 이기는 경험, 인정받는 경험 타인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경험 같은 것들을 자꾸만 하게 해주기. 그뿐 아니다. 좋은 곳에 날 데려가서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훌륭한 예술작품을 감상케 하고 책과 신문을 펼쳐 세상과 타인에 대해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하면 그 모든 순간들은 나와 내 영혼을 살찌우고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부정적인 기억과 상처들은 점점 쪼그라든다. 바로 이게 나의 내면을 살찌우고 내 자존감을 높이는 길이라는 걸, 그게 바로 상처의 보호막이었다는 걸 그동안엔 왜 몰랐을까.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게 다 나를 사랑해주는 방법이었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348쪽) https://www.podty.me/cast/20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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