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많이 들어왔던 이 작품을 이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그 원조가 되는 책이라는 소개를 보고 도서관에서 바로 빌려와 주말 하루종일 앉아 읽었습니다. 코로나로 외출이 적은 요즘, 괴롭고 불편하지만 책 읽기는 좋습니다.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시작부터 살벌합니다. 잉태 능력을 상실한 채 태어나는 인간들, 병 속에서 배양되어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잠자는 동안 자신의 인성과 취향을 세뇌 당하며 자라 어른이 된 미래 런던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 주어진 신분과 지위, 그리고 신체 능력에 따라 불만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원래 그런 것이 당연한 것인 양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의문을 갖지 않고 일하고, 쉬고, 즐깁니다. 기분이 다운되면 증세에 따라 소마라는 알약을 양을 조절하여 먹습니다. 때로는 마약처럼, 또는 수면제처럼 사용됩니다. 소마 없이 사는 삶은 그들에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소마를 얻기 위해 줄을 서는 노동자들을 보며,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돈이 바로 소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알파나 베타계급뿐 아니라 최하층 계급을 일부러 만들어 바보로 키우는 비인간적인 독재자의 모습이 소름끼칩니다.
하나의 난자에 자극을 가해 천 명이 넘는 아기를 잉태하는 기술을 가진 시대, 아이를 생산하여 돌보는 곳에서 일하는 헨리포스터와 레니나, 그리고 버나드와 헬름홀츠는 같은 체제에 대해 조금씩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혀 의문도 갖지 않는 헨리, 아무나와 사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몇 남자들에 관심이 있는 레니나, 신분에 비해 나약한 육체를 가지고 우울감과 체제에 대한 의문을 지닌 버나드, 신체나 지적으로 완벽함에도 전체주의적 체제에 회의감을 가진 헬름홀츠, 그리고 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엄청난 파장을 지닌 원주민 지역에서 온 존. 이들을 통해 과학기술이 최고조로 발달한 세상의 장단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932년 작이라는 이 책은 엄청난 상상의 산물입니다. 어떻게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인지 놀랍기만 합니다. 세균도, 심지어 파리도 없는 완벽하게 깨끗한 세상이지만 신분에 따라 노동자의 계급도 존재합니다. 얼굴이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나 몇 종류의 얼굴로 나뉘는 사람들을 본 존은 그들을 구더기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가족의 의미도, 부부의 세계도 없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세상, 세계 인구의 수는 임의로 조절 가능하며, 나이가 들어도 늙지는 않지만 갑자기 죽음에 이르는, 이상적으로 보이는 세상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에게 바보들의 천국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의 존엄은 지켜지길 바랍니다.
앞부분이 몹시 흥미롭고, 원주민의 세계는 충격적이며, 뒤로 갈수록 도대체 어떻게 끝을 맺으려 하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하루 만에 읽은 이 책을 가족에게도 권하고 싶어 구입했습니다. 세계 명작으로 알려진 소설들이 따분할 거라는 선입견을 깬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