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에밀졸라의 책 <결혼, 죽음>을 읽고, 그의 작품들이 궁금해 찾아보다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왔습니다. 두 권으로 되어 있어 다 읽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 세탁장에서 벌어진 스펙터클한 싸움 장면부터 너무 재미있게 그려진 묘사들 때문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제르베즈는 다리를 아주 살짝 절지만 아름답고 부지런한 여성입니다. 술 좋아하던 애인이 자신과 아이를 남기고 여자와 달아나자 노동을 하며 아이를 키웁니다. 그런 그녀에게 나타난 성실해 보이는 지붕 고치는 함석쟁이 쿠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손길로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보필하며,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나갑니다. 딸 나나도 낳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붕에서 떨어진 남편이 앓아눕고, 그녀의 쌈짓돈이 바닥날 즈음 불행의 예감이 다시 엄습해 옵니다.
어떤 이야기책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기도 하는데 이 책은 온통 나쁜 사람 투성이입니다. 그녀를 괴롭히는 애인과 남편, 그녀가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시누이 로리외, 아내를 발로 차 죽이고, 너무나 성실한 착한 딸을 죽도록 채찍질하는 비자르 영감... 술이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의 말과 행동은 독자의 화를 유발합니다. 남편에게 끊임없이 술값으로 돈을 빼앗기면서도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는 제르베즈와 아버지에게 심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는 랄리를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빚진 중에도 호화로운 생일상을 스스로 차린 제르베즈. 당시에는 자신의 처참한 말로를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귀족과 부르주아, 상인과 노당자가 공존했던 당시의 사회상은 지금의 변화 속도와 비길 바는 아니지만 그때로서는 엄청난 변화의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노동을 신성시 하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했으나 정작 부르주아와 삶의 질이 달랐으며, 서서히 기계화 되는 사이 그나마 남아 있던 일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적게 일하고 서로 나눠 가지면 좋은데 실제와 이론이 다를 수밖에 없고, 노동을 장려하는 이들이 정작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윤택한 삶을 누리는 것임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저의 다음 과제인 책입니다.)
노동자들이 힘겨운 하루일과를 끝내고 마시는 한 잔의 술이 위안을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절제 없는 음주는 술이 술을 부르고 결국 파멸로 치달을 수 있음을 이 책에서 처참하게 보여줍니다. 발간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도 수많은 논쟁과 사랑을 동시에 일으키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날것의 말투와 생활상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집필을 위해 파리의 북쪽 외곽 빈민가를 수시로 찾았다는 작가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말로 쓴 그들의 이야기. 화가 나고, 답답하고, 결국 너무나 슬프지만, 적나라한 묘사가, 그 직설적인 묘사들이 오히려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페미니스트나 여성학자들에 의해 지탄 받을 장면이나 묘사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당시를 비추는 거울이므로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됩니다.
유태인 드레퓌스를 옹호하여 나치에 의해 많은 작품이 불에 타 없어지고, 의문의 죽음을 맞았던 에밀졸라는 파리에서 출생하여 법률을 공부하려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출판사에 들어가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남아 있는 작품들 중 자연주의 작가로 인정받았다는 <테레즈 라캥>과 목로주점에 나온 제르베즈의 딸과 같은 이름의 <나나>를 더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국이나 프랑스나 100년 전 여성들의 삶이 비슷하게 힘들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을 살고 있음이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