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페터 한트케의 책을 여러 권 읽고 있다. 빌렸다가 읽지 못하고 반납한 것도 있고, 처음 몇 장만 읽다 만 책도 있지만 소망 없는 불행, 어느 작가의 오후, 왼손잡이 여인, 그리고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모두 연이어 두 번 이상 읽었다. 그런 적이 별로 없는데 특별한 줄거리가 있는 게 아닌데도 여러 번 읽게 되는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언어관을 포함한 문장들을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관찰력은 또 어찌나 뛰어난지 그가 묘사하는 내용을 따라 눈으로 보는 듯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빠른 장면 전개나 기발한 사건의 진행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잔잔하지만 심리를 묘사하는 이런 유의 소설임을 알겠다.
이 책을 두 번 읽은 이유는 한 번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독특한 행적 때문이다. 편지를 쓰고 사라진 아내를 찾아 미국에 온 오스트리아 작가인 화자는 미국을 여행하며 아내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사랑도 했을 테지만 서로에 대한 증오를 참을 수 없었던 그들. 이혼하거나 헤어지려거든 조용히 할 일이지 이렇게 요란을 떨며 돈을 펑펑 쓸 필요가 있었을까? 솔직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 가며 아내인 유디트를 찾아다니고 결국 만나게 된 그들은 갑자기 캘리포니아로 가서 한 미국의 영화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끝이 난다. 이 독특하고 황당한 여행을 두 번이나 따라간 것이다. 공포와 적개심 속에서도 소소한 일상을 경험하고 그 와중에 만난 오래 전 친구 클레어와 그녀의 딸과 동행하며 화자는 조금씩 치유되고 성장한다.
이별 여행을 위한 짤막한 편지와 낯선 곳에서의 며칠. 동생을 찾아가지만 멀리서 바라보고 발길을 돌리는 소심함. 미국에 섞이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알고자 하는 작가의 호기심. 이런 복잡다단한 심리가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은 것일까? 다른 이의 소설과는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