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님의 책은 자전거 여행을 제외하곤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이 책이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인데 도서관에서 빌려 이제야 읽게 되었다. 김훈님의 문장을 좋아하는 것은 건조함 속에 숨어 있는 찡한 감동이다. 이 책에서도 정말 많이 등장한다. 울컥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할 길 없이 혼자 울음을 삭히며 읽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나이가 들어 이상해진 것인지, 작가의 능력이 특출난 것인지 모르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똥에 관한 아주 긴 성찰과 이순신 장군에 대한 부분이다. 말하기도 꺼려하는 똥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이야기하는지 할말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을 정도였다. 소설을 쓰느라 수없는 시간 동안 조사작업을 했을 이순신의 생애와 우륵, 그리고 축구에 대한 열정과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 책 읽는 동안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순신이 자신의 부대 내 악인들을 벌하는 장면은 반 아이들에게 읽어 주며 반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이야기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도 했다. 내가 존경하는 이순신은 심지어 참수로 처형하기도 했다. 얼마 안 되는 부하들을 그렇게 대하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하지만 대의를 위해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의 마지막이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제 나이 70줄어 접어들어 산신령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는 작가의 하루하루를 응원하고 싶다. 앞으로도 건강하여 좋은 글귀들을 계속 생산하시길 바란다. 갑자기 작가가 걸었던 호수공원을 산책하고 싶어진다. 이번 연휴 동안 한 번 다녀와야겠다.
--- 본문 내용 ---
- 며칠 전 밤에 호수공원을 산책하다가 개똥을 밟았다. 나는 신발을 벗어서 개똥을 찬찬힌 들여다보았다. 똥의 양이 많았고 자루가 굵어서, 덩치가 큰 개의 똥이 분명했다. 물기가 축축하고 끈기가 살아 있었다. 싼 지 얼마 안 된 생똥이었다. 이 개똥의 구린내는 사람의 똥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구리내의 계통도 사람의 똥과 같았다. 산과 들과 물속의 온갖 것을 다 집어먹고 내지른, 종합적이고 공격적인 구린내였다. (38쪽)
- 언어와 삶 사이의 직접성의 관계는 사투리에서 강력하고 건강하게 드러난다. 사투리는 생활이며, 인간의 몸의 반영이다. 가실왕의 시대에는 산골마을마다 사투리들이 와글와글했는데, 왕은 이 삶의 현실이 음악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우륵을 가르쳤다. 여러 고을의 사투리들은 제자리에서 천 년 이상 공동체 생활의 토대가 되었다. (147쪽)
- 일산 호수공원은 물이 맑고 숲이 우거져서 사람들이 의지할 만한데, 스토리는 매우 빈약하다. 일산에 신도시가 들어서는 동안에 일산소방서 소속 소방관 3명이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분들의 작은 흉상을 만들어서 호수공원에 모셨으면 좋겠다. 이 동네가 뜨내기들이 살다 가는 신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의 마을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또 겨울새들이 돌아오는 날 호수공원에서 작은 잔치를 열어서 새를 귀하게 여기고 기쁨으로 맞이하는 마음들을 넓혀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타향 위에 고향을 건설해야 한다. 순직한 일산소방대원 3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형성 소방위(2012년 12월 31일 순직)
*조동환 소방위(2008년 2월 25일 순직)
*김상민 상방(의무소방대원, 2012년 12월 29일 순직)
- 크게 출세한 사람은 없지만, 대기업에 말단사원으로 들어가서 임원까지 승진했거나, 지방 소도시에서 통닭 가게 서너 개를 벌여놓았거나, 종합상사가 해외로 진출하던 시절에 유럽 주재원으로 가서 베를릴, 비엔나, 파리를 돌아다니면서 한국산 가발, 죽세품, 비닐우산을 팔았거나, 임금이 싸고 환경 규제가 허술하고 노조가 없는 먼 나라에 공장을 차려놓고 한 장에 2달러 미만의 티셔츠를 팔아서 처자식을 건사해온 가장들이었다. 다들 얼굴이 쭈그러들었고, 머리털에 먼지가 낀 듯했고, 눈동자에 쏘는 힘이 빠져 헐렁해 보였다. '이젠 술도 다부지게 못 먹네. 앞으로는 모이면 우유로 하자. 사이다로 하든지.' (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