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가들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성장소설과 종교소설을 주로 썼다고 하는데 이 책은 60대가 된 작가가 자신의 10살 시절을 회상하며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인기 많은 소녀를 둘러싼 남자아이들 간의 미묘한 갈등, 아버지와 떨어져 엄마와 살면서 어부들의 삶을 엿보며 빨리 자라기를 바라는 어린 소년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50년 전의 일들을 이렇게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의 어린 시절을 쓴다면 이렇게 구체적일 수 있을지.
누구에게나 있었을 어린 시절의 풋사랑 이야기.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말년에 다시 떠오르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 곱씹을 추억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책 속에 파묻혀 지내며 책과 친했던 작가였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어떤 소재든 아름다운 문장으로 맛있게 요리해야 하는 법이니까.
--- 본문 내용 ---
- 유년시절의 나는 내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나를 돌보는 보모가 사용하는 작은 방이 있었는데, 나는 그 방에 성처럼 쌓인 아버지의 책 밑에서 잠을 자곤 했다. 쌓인 책은 천장까지 닿았다. 그것들은 수직으로 놓인 체스판의 룩이었고 기사였고 졸이었다. 밤이면 책에 쌓인 먼지가 꿈속으로 들어왔다. 책 밑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나는 눈물을 알지 못했다. 나는 어린 병사였다. 좁은 보초소 안에서 흥분과 우울이 교차하는 하루를 보내곤 했다. (14쪽)
- 지금 나는 50년 전과 똑같은 눈물을 흘린다. 오랜 여행을 하고 난 뒤 온 세상 사람들의 눈을 한 바퀴 다 돌고 난 뒤 눈물이 내 눈으로 다시 돌아왔다.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자 눈물이 났다. 그래서 예전처럼 눈물을 흘렸다.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