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과 똑같은, 역시 굼시렁거리는 혼잣말입니다. 그래서 반말입니다.
쓰고나니 재미는 없고, 이 글 역시 잘난 척하는 글로 읽히기도 하네요.
하지만 그런 의도는 절대 없습니다. 저의 솔로 라이딩 예찬입니다.
읽으시다가 재미는 없고, 길기만 하다고, 중간에서 욕하실거면, 처음부터 읽지 마시길.. ㅜㅜ
[솔로 라이더. 그 자유와 고독... ]
'재즈'와 '블루스'의 명곡 플레이리스트를 유튜브에 올린 지 어느덧 6년째다.
수많은 곡을 들어온 내가, 자전거 안장에 오를 때마다 '솔로 라이더의 주제가'라고 우기는 곡이 있다.
재즈 보컬리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인 ‘니나 시몬(Nina Simone)’의 <Feeling Good>이다.
90년대와 2010년대 자동차 CF 음악으로 널리 쓰였고,
영화 <조커>에 '마이클 부블레'의 목소리로 삽입됐던 곡이다.
그녀의 까칠한 감성과 압도적인 보컬로,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파고드는 노래다.
‘높이 나는 새들아, 내 기분 알잖아.
하늘의 태양이여, 내 기분 알잖아.
살랑이는 산들바람, 내 기분 알잖아.
새로운 새벽이야, 새로운 날이야.
내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어.
별들이 빛날 때, 소나무 향기가 흩날릴 때, 내 마음 알잖아.
오, 자유는 내 거야. 기분이 참 좋아.’
동이 터오는 자전거 도로를 홀로 달릴 때,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며 내 마음을 다독여 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들을 때마다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벅찬 감정을 안겨주는 이 곡 뒤에는,
한 인간의 처절한 서사가 숨어있었다.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그녀의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 올라와서 보던 중이었다.
폭력적인 남편의 그늘 아래서 멍들어가던 그녀가 인터뷰 도중 툭 내뱉은 한마디,
그 말이 내 가슴에 날아와 깊숙이 박혔다.
"무대에 서면 두려움이 사라져요. 난 무대 위에서 자유를 느낍니다."
자유란 무엇인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날뛰는 방종이 아니다.
'니나 시몬'은 담담한 목소리로 자유의 본질이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고 선언했다.
그녀의 날 것 같은 고백을 듣는 순간,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묘비명으로 삼았던 서늘하고도 장쾌한 세 문장이 퍼뜩 떠올랐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유명한 묘비명으로 마음에 끌리던 글귀라 백독(百讀)을 훌쩍 넘긴 문장이다.
그런데 그토록 여러 번 읽으면서도 제각각 분절된 의미로 다가오던 세 문장이,
하나의 호흡으로 꿰뚫어 읽혔다.
바라는 것 없이 마음을 비우면 욕심이 사라진다.
욕심이 없으니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두려울 것이 없으면 내 앞에 거칠 것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이 곧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니나 시몬. 두 거장이 자신의 삶을 바쳐 증명해 낸 자유의 정의다.
'두려움 없음'.
니나 시몬에게 피아노가 놓인 무대가 그러했듯,
내게는 쉼 없이 구르는 두 바퀴 위의 안장이 두려움 없는 해방의 공간이다.
무리를 지어 달리는 즐거움과 안락함을 거부하고,
홀로 길을 나서는 내 솔로 라이딩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체인 텐션'을 팽팽하게 이어가며 빚어내는 세계와의 조율이자 조화다. -쓰고 나니 구라가 너무 심한듯..-
안장 위에 올라 페달을 굴리는 동안, 일상의 번잡한 고민과 불안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완벽하게 차단된다.
모든 감각의 촉수를 열어두고, 오직 발끝으로 전해지는 단 한 번의 페달링 사이클에만 집중하다 보면,
끊기지 않는 체인텐션과 함께 깊은 몰입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내가 자전거를 돌리는 것인지, 자전거가 나를 태우고 달리는 것인지 그 경계조차 아득해지는,
현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완벽한 ‘물아일체’의 경지다. - 이 문장도 구라가.. 뭐 종종 그렇다는 의미다.-
완벽한 원을 그렸다는 만족감이 들어도, 엇박자가 났다는 아쉬움이 스쳐도,
그건 그저 찰나의 성취와 실패일 뿐이다.
마음에 찌꺼기를 남겨두지 않고 지체 없이 다가오는 다음 페달링의 궤적에 다시 몸을 던진다.
이 숨 막히는 몰입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나(Ego)'라고 굳게 믿었던 알량한 자의식이 마침내 바스라져 내린다.
안장 위에는 그저 말없는 '바라봄', 서늘한 '지켜봄(觀)'만이 남게 된다.
핸들바 위 와후(Wahoo) 볼트2 속도 섹터의 숫자가 34km를 넘어 치닫고,
심박 LED가 핏빛 붉은색으로 물들면, 내 안에서 아등바등하던 '에고'는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든다.
그 극한의 한계점에서는 체인텐션을 부여잡는 본능적인 페달링과,
폐부를 찢을 듯 짧고 깊게 내쉬는 짐승 같은 호흡만이 길 위에 남는다.
에고가 소멸해 버린 안장 위의 육신에,
세상에 바라는 얄팍한 욕심 따위가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길 위의 어떤 돌발 변수도, 사나운 맞바람도 두렵지 않다.
오직 바퀴의 회전 관성을 타고 춤을 추는 듯한 유려한 움직임만 남는다.
이마에서 선글라스 안으로 떨어지는 땀과 함께,
춤사위같은 페달링의 펄떡임만이 유일한 실재(實在)다.
예고 없이 후려치는 맞바람, 날카롭게 굽이치는 코너, 갓 포장된 아스팔트의 매끄러움.
그 찰나마다 들이닥치는 외부의 변수들에,
내 몸과 자전거가 끊임없이 반응하고, 끈적하게 조율해 나가는 것이 나의 라이딩이다.
돌아보면 우리의 인생 또한 이런 라이딩과 다를바 없다.
세상사란 나 홀로 옹졸하게 헤쳐 가는 것이 아니다.
곁을 내어주는 사람, 숨을 들이마시는 대기, 목을 축이는 물과 밥, 사랑, 돈... 그리고 절절한 기도까지.
삶이란 이 수많은 관계망 속에서 매 순간을 기민하게 조율하며 빚어가는 과정이다.
길 위에서 비로소 독대하게 되는, 하나이면서 둘인 '나와 내 안의 나'와 함께.
거친 숨을 토해내며 앞으로 뻗어 나가는 솔로 라이딩은 세상과의 단절이나 소외가 아니다.
오히려 바람과 중력, 길의 질감을 온몸으로 부딪쳐 안으며,
내가 이 세계와 완벽하게 톱니바퀴처럼 물려있음을,
그들과 온전히 하나임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뜨거운 의식이다.
나라고 우기던 에고를 내려놓고,
자연이라는 변화와 세계라는 과정에 기꺼이 뛰어드는 기적 같은 여정이다.
하여 나는 두려움 사라진 안장 위에서, 소박하지만 그 무엇보다 벅찬 ‘자유’를 찾아냈다.
긴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솔라.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