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솔로 라이딩이 어때서?: 사물의 밖에서 노니는 즐거움.'보다 훨씬 더 긴 글입니다.
다른 글과 똑 같은, 역시 굼시렁거리는 혼잣말입니다. 그래서 반말입니다.
읽으시다가 재미는 없고, 길기만 하다고, 중간에서 욕하실거면, 처음부터 읽지 마시길.. ㅜㅜ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자전거도 사랑하라.
존2(Zone 2), 심박 139이하를 목표로 삼고 아라뱃길 자도를 달리며,
문득 초등학교 시절 처음 들었던 황희 정승의 일화를 떠올린 날이 있다.
이 사람이 와서 하소연을 하면 "네 말이 옳다" 하고,
저 사람이 와서 정반대의 주장을 펴도 "네 말도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는 이야기.
어린 소견으로 ‘대단한 정승이라던데, 줏대 없고 우유부단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라뱃길 위에서,
비로소 그 이야기의 진정한 '낙처(落處)'를 이해하게 되었다.
황희는 조선의 명정승이다. 아무리 조선이 이 땅의 역사를 말아먹은 왕조라 한들,
그 일화가 줏대 없는 벼슬아치의 약삭빠른 처세일 리 없다.
늦게나마 읽어낸 그 우화의 낙처는 세상을 품어내는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였고,
백성과 만물을 향한 위대한 '대긍정(大肯定)'의 마음이었다.
하루에도 열백 번 뒤집히는 머릿속 잡생각은,
주변을 온전히 인식하고 조화를 이루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조화의 핵심은 '부드러움'이다.
대상과의 엇갈림이나 부딪침이 거칠다면 불협화음과 폭발만 야기할 뿐, 조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조화를 만들어내는 부드러움의 가장 강력한 힘은 대상에 대한 긍정,
상대를 온전히 품고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의 낙처 역시 결국 이 대긍정의 조화에 닿아 있다.
이웃을 향한 마음이 긍정적이지 않은데 어찌 아끼는 마음이 생기겠는가.
하지만 부드러움과 대긍정의 마음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사랑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철벽같은 룰,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가 존재한다.
먼저 내어주어야 받는 것이지, 받고 나서 주는 것은 없다. 사랑이든, 사람이든,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마음을 다해 정성을 쏟아야 비로소 상대도 마음을 연다.
투박한 클릿 슈즈를 신고 페달의 감각과 크랭크의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지난 4년의 겨울 동안 좁은 작업실 평로라 위에서 핸들바와 스템 위로 숱한 땀방울을 쏟아부었다.
처음엔 정성을 바친 만큼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해마다 작업실에 처박혀 홀로 이 짓을 하나" 깊은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짜증은 그날 하루 뿐, 다음 날이면 또 좀이 쑤셔 평로라 위에 자전거를 올리고 헉헉대며 다람쥐 쳇바퀴를 돌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지독하게 안 되던 '니킥+1cm 페달링'이 자연스럽게 구현되기 시작했다.
파워미터의 페달 평활도(PS%) 수치가 20%를 넘어서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뜨거운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랐다.
지독한 몸치인 육신이 마침내 이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을 숫자로 확인한 순간, 홀로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다.
사실 PS% 20%는 중급 이상 동호인들에게 대단한 수치도 아니다. 그저 아마추어의 중간 어디쯤 속하는 기록일 뿐이다.
체인링이 360도 돌아가는 타이밍에,
내 클릿 슈즈의 움직임을 정확히 '동기화'시키면서 원형 페달링이 완성된다.
안장 위에서의 동기화는 먹통이 되면 전원을 껐다 켜서 해결하는 디지털 동기화와 차원이 다르다.
이것은 순도 100%의 '아날로그 동기화'다.
문제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구현하는 것 사이의 아득한 괴리에 있다.
수많은 조언과 영상, 자료로 머릿속은 이미 전문가지만 몸으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안다고 해서 곧바로 목적지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고 또 가고, 하고 또 하다 보면—언제 될지 기약도 없는 숱한 좌절 끝에,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바로 아날로그 동기화다.
누구는 우연이라 하고 누구는 기적이라 하지만, 나는 기적이라고 우기는 축이다.
물론 한 번 몸에 각인되었다고 곧바로 완벽히 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아득한 동기화에 한 번 성공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훨씬 수월해진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스럽고 눈물겨운 위안이다.
그 먼 길을 돌아 원형 페달링의 초입에 들어설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은,
결국 자전거 라이딩을 향한 미련한 '애정' 때문이다.
페달링 스킬이 엘리트 선수들 같지는 않을지라도, 내 자전거의 자존심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로드가 내 자전거의 본령이고, 로드 스킬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페달링이다.
묵직하게 쭉 뻗어나가는 지속주 주행으로 몸에 걸친 라파 저지와 아소스 빕숏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었다.
초보 시절의 이런 꿈을 여전히 품고 있으니, 참으로 소박하고 저렴한 꿈을 꾸는 라이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안장 위에서 깨달은 바로는 그 말은 거짓이다.
'주목하고 집중한 만큼' 보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주목과 집중은 바로 사랑이다.
그러니 ‘아는 만큼 보인다’보다는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가 훨씬 적합한 말이다.
라이딩 6년 차를 돌이켜보면 나름 최선을 다해 자전거를 사랑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주변 지인들은 입에서 자전거의 '자' 자도 꺼내지 말라며 핍박한다.
친구나 친지를 만나 눈치 없이 주구장창 자전거 이야기만 떠들어댄 탓이다. 하지만 지금도 꿋꿋이 그러고 있다.
수십 년을 돌아 깨달았던 황희 정승의 "네 말이 옳다"는 대긍정의 철학을,
요즘 안장 위에서 땀 흘리며 근육으로 새롭게 깨닫는 중이다.
물리도록 달린 아라뱃길에서 몸으로 체득한 '관성 순응(Inertial Adaptation)' 페달링이다.
페달링에 대한 이해가 조금 깊어지면서, -물론 혼자만의 억측일 수도 있지만-
자전거의 크랭크는 억센 의지와 근력으로 짓누르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라이딩은 자전거의 묵묵한 의지와 내 얄팍한 생각이 충돌하는 투기장이 아니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설령 자전거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자전거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긍정해야 할 대상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페달을 내 고집대로 다루려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6년 차가 되어서야 겨우 배웠다.
다리와 발의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며 페달링을 이어갔다.
계단이나 언덕을 오를 때 뒤꿈치를 둔근으로 차올리거나, 큰 보폭으로 천천히 러닝하는 이미지를 수없이 그렸다.
살면서 내 다리와 발바닥의 감촉에 이토록 집중해 본 적이 있었던가.
정성과 관심에 내 다리와 발바닥도 응답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다리와 발바닥의 감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각이 어떻게 보이냐고? 집중해 보시라. 맛도 보이고, 소리도 보이고, 감각도 보인다.
5시 방향에서 시작된 스크래핑의 탄력,
7시부터 10시까지 장요근이 개입하며,
다리가 무중력 상태처럼 끌려 올라가는 감각.
장요근이 길을 열면 둔근이 수축을 시작하고,
11시부터 대퇴사두근이 얹어지며,
발바닥의 감촉이 살갑고 정교하게 반응하며 다가온다.
수없이 듣는 조언이 있다. "부드러운 페달링을 해라!", "선수들의 물 흐르듯 부드러운 궤적을 봐라!"
하지만 그 부드러움은 단순히 발목에 힘을 뺀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궁극의 기술은 기계적 이해를 넘어서는 곳에 있다.
자전거를 사랑한다는 것은 묵묵히 돌아가는 페달의 둥근 궤적과 움직임을 온몸의 감각으로 직시하고,
그 흐름의 의지를 100% 존중하는 것이다.
그 완벽한 관성의 궤적에 함부로 끼어들어 방해하지 않고, 그저 내 다리와 의지를 살며시 '얹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상과 억지로 부딪히지 않고 부드럽게 스며드는 대긍정의 조화.
안장 위에서 마침내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이 바로 진짜 페달링의 시작이다.
물론 라이딩 내내 이런 완벽한 집중과 몰입을 유지하는 라이더는 없다.
하지만 보다 더 자주, 보다 더 간절하게 그 순간을 염원할 수는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 자전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이라고 우긴다.
묵묵한 자전거의 의지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라이더가 되어간다.
그 덕분에 이제는 속도계의 단순한 숫자보다,
페달을 통해 전해오는 훨씬 더 많고 고급스러운 자전거의 언어들을 알아듣고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라뱃길 자도에서 내 자전거와 나누는,
이 깊고 묵직한 대화의 순간이, 참으로 고맙고, 눈물 나게 달콤하다.
긴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라뱃길 자도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