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안장 위에서의 서핑: 세상은 즐기는 자의 것이다.'보다 긴 글입니다.
역시 굼시렁거리는 혼잣말입니다. 그래서 반말입니다.
읽으시다가 재미는 없고, 길기만 하다고, 중간에서 욕하실거면, 처음부터 읽지 마시길.. ㅜㅜ
솔로 라이딩이 어때서?: 사물의 밖에서 노니는 즐거움
“좌측으로 지나갑니다!”. “죄송합니다! 3대 더 지나갑니다!”
자전거 도로에서 동호인 팩이 추월하며 외치는 이 구두신호가 듣기 좋았다면, 당신은 자덕이다.
추월 당하는 라이더가 이 구두신호를 위압적으로 듣지 않았다면, 추월한 당신은 진정한 자덕이다.
자전거 도로에 나가면 일사불란하게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달리는 동호인 팩(Pack)과 흔히 마주친다.
화려한 저지와 최상급 기함 자전거의 행렬은 멋지고 역동적이다.
주변에서 종종 묻는다. 왜 주야장창 혼자 달리냐고. 심심하지 않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무리 지어 달리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
기함급 자전거를 들이거나 화려한 신상 액세서리로 치장하는 일에도 덤덤하다.
이런 것들이 라이딩의 큰 즐거움이라는 것도 알지만, 내게는 라이딩의 재미를 거드는 ‘조연’일 뿐이다.
혼자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자전거라는 무던한 친구에 기대어, 스스로와 나누는 대화를 애정해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페달을 밟는 ‘나’와, 그 고통스럽고도 짜릿한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보는 또 다른 ‘나’.
이 둘 사이의 말 없이 주고받는 격전 같은 내면의 실랑이야말로, 내 라이딩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이 재미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안장 위의 명상’이다.
이렇게 말하니, 대단한 철학적 사유나 그 어렵다는 마음공부에 대해 읊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라이딩은 세계의 섭리나, 인생의 진리를 논하는 거창한 사유(思惟)의 향연이 아니다.
오직 쫀득한 체인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쉼 없이 쏟아내는, 지극히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나를 향한 질책이 전부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부드럽게! 왜 그렇게 급하냐?!"
허덕이는 숨에 몰려 페달을 짓이기려는 찰나, 내 안의 내가 가차없이 핀잔을 날린다.
머리로는 항상 초연함을 읊지만, 잠시 방심하면 몸은 1초라도 앞서나가려는 조급함에 멱살잡힌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마다 터져 나오는 ‘내가 나에게 넌즈시 던지는 야박한 지적’이 내 페달링의 진언(Mantra)이다.
누군가를 이기려는 욕심을 덜어내고, 성급한 에고(Ego)를 달래어 다시 체인텐션의 궤적을 그리려는 치열한 조율.
남들은 모르는 이 쉼 없는 내면의 싸움 덕에, 혼자 달려도 지루할 틈이 없다.
이 고요하고도 맹렬한 독대를 방해받지 않으려 '3시간 무정차 라이딩'을 종종 즐긴다.
‘부암동-성산대교-행주대교-아라뱃길-CU편의점’을 찍고 돌아오는 왕복 코스다. (실제로는 3시간 30분 내외로 걸린다.)
멈춤 없는 이 유희를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다. '안장 위 보급'이다.
행주대교를 건너 언덕 위 아라갑문을 지나고 나면, 속도계는 어김없이 ‘라이딩 50분’을 알린다.
초보 시절, 안장 위에서 보급식을 챙겨 먹는 일은 언감생심 묘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평로라 위에서 미련하게 달리고 달리며, 끊기지 않는 '체인텐션'을 체득하고 나서는,
핸들바에서 손을 떼고 등 뒤로 손을 뻗어 딸기쨈 스틱을 꺼내 드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만세!
(여담이지만, 휴대와 섭취가 간편하고 가성비까지 좋은 보급식으로 오뚜기 스틱형 딸기쨈을 꼭 챙긴다.
수년 전 ‘따라쟁이 너구리’ 유튜브 채널에서 배운 팁이다. 이글 귀퉁이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지금도 에너지바, 양갱과 함께 장거리 라이딩의 필수 3대장이다.)
상체를 세우고 두 손을 핸들바에서 떼는 순간, 끊기지 않고 360도로 이어지는 체인텐션이,
펄떡이는 자전거를 대지에 단단히 붙들어 맨다. 완벽한 균형… 아니다. 흐트러질듯 이어가는 그 위태로운 균형 속에서,
쨈 스틱을 입에 물고 쭉 짜 넣었을 때 목을 넘어가는 부드러운 단맛은 단순한 탄수화물 보충이 아니다.
지난한 훈련 끝에, 자전거가 내달리는 궤적을 오직 페달링과 몸의 균형만으로 통제하게 되면서 누리는 '절대 자유'의 맛이다.
(두 손 놓고 보급하는 하찮은 기술을, 나같은 몸치는 대단한 기술이라고 이렇게 우긴다.)
체인텐션을 두고 페달링하는 ‘나’와, 그걸 지켜보는 ‘나”가 옥신각신하면서 부터 자전거를 대하는 생각이 바뀌었다.
가벼운 자전거, 항속 좋은 휠, 전동 변속기, 유용한 신상 액세서리 같은 것들에서 관심이 멀어졌다.
(신상인 가민 바리아 뷰는 예외다. 쓰고있는 바리아 515가 너무 사랑스운 탓에, 사악한 가격에도 계속 눈길이 간다.)
속도계에 찍히는 파워와 속도, 거리와 시간의 압박에서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런 숫자들이 아예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보다는 체인텐션을 팽팽히 이어가는 유희에 더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로드 자전거를 타면서부터, 소동파(蘇東坡)의 산문 『초연대기(超然臺記)』를 곁에 두고 자주 읽는다.
이미 백독(百讀)은 했다. 그리고 앞으로 천독(千讀)도 거뜬 할 산문이다.
대표작 『적벽부』만큼이나 묵직한 울림을 주는데도, 널리 읽히지 않아 아쉽다.
내가 라이딩을 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천 년 전의 인물인 소동파가 앞서 글로 썼다.
당근마켓에서 나눔하듯, 『초연대기』의 핵심을 간추려 올린다.
"만물은 모두 볼 만한 것이 있다.
진실로 볼 만한 것이 있다면, 모두 즐거울 만한 것이 있는 것이니,
굳이 괴이하거나 빼어날 필요는 없다.
지게미를 먹거나 맑은 술을 먹거나 간에, 모두 취할 수 있고,
과일이나 채소나 초목도 먹으면 다 배부를 수 있는 것이니,
이런 것을 미루어 보건대, 우리들이 어디를 간들 즐겁지 않으리오.
복을 빌고 화를 멀리하는 이유는, 복은 기쁜 일이고 화는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바라는 것은 한이 없는데, 내 욕심을 충족시켜줄 사물은 한계가 있다.
좋고 나쁜 분별이 안에서 다투고, 버리고 취하는 선택이 눈앞에서 벌어지면,
즐거울 만한 것은 언제나 적고, 슬플 만한 것은 언제나 많은 법이다.
이것은 도리어 화를 빌고, 복을 멀리한다고 할 수 있다.
화를 구하고 복을 멀리하는 것이, 어찌 사람의 진정이겠는가?
물욕에 가리워서다. 사물의 안에서 노닐고, 사물의 밖에 나와 보지 못해서다.
사물은 크고 적음에 차이가 없으나, 사물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높고 크지 않은 것이 없다.
-사물의 안에서 보면- 저 높고 큰 물체가 나에게 다가섬에,
나는 항상 어지럽게 반복하여 틈 속의 싸움을 관찰하듯이 하니,
승부가 있는 곳을 어찌 알겠는가?
이러므로 좋고 싫음이 생겨나고, 근심과 즐거움이 나오는 것이니,
매우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내가 어디를 가나 즐거움은, 사물의 밖에서 노닐기 때문임을 밝힌다."
안장 위에서도, 끊임없이 화(禍)를 구하고 복(福)을 멀리하려 애쓰는 이들이 많다.
더 가볍고 화려한 프레임, 더 값비싼 구동계, 더 빠른 라이딩 속도...
이런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 분별과, 하지 않아도 그만인 경쟁에 갇히면,
즐거울 일은 적어지고 슬플 일만 많아진다.
유혹에 눈이 가려 '사물의 안(內)'에 갇힌 채 그 '밖(外)'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초연대기』의 일침을 자전거에 빗대자면 이렇다.
명품 브랜드의 기함급 자전거에 목매고 살다 보면(사물의 안에 갇히면),
정작 그것이 뭐 하는 물건인지, 왜 사려했는지, 왜 샀는지,
그 본질을(사물의 밖으로 나와 보지 못해서) 까맣게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다.
솔로 라이딩은 관계의 단절이나 고립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경쟁심, 그로 인한 의상, 장비 등..
욕심이라는 '사물의 안'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노니는, '초연(超然)'의 세계다.
번쩍이는 기함이 아니어도 두 다리의 텐션만으로 맞바람을 가르고,
값비싼 카페에 들르지 않아도, 달리며 짜 먹는 딸기쨈 스틱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듯 배부를 수 있다.
물론 다른 라이더들처럼 라이딩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마다하는 것도 아니다.
라이딩 중 마주치는 카페의 에스프레소 한 잔, 단단한 케이크 한 조각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간다.
한강 서쪽 최고의 평지 훈련 코스인 행주대교-아라뱃길을 달린 후,
행주산성 원조국수집에서 흡입하는 잔치, 비빔국수도 격하게 애정한다.
(예전엔 '세숫대야’만 한 그릇에 주더니, 언젠가부터 냉면 그릇만 한 ‘종지’로 바뀌어서 실망스럽긴 하지만.)
사설이 길어졌다. 내 라이딩의 즐거움은 이 한 줄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쉼 없이 구르고 나아가는 페달링의 충만한 궤적.'
스스로 빚어내는 이 팽팽한 체인텐션 위에서라면,
나와 자전거가 어디를 간들 즐겁지 않으리오. 그러니 당당하게 묻는다.
‘솔로 라이딩이 어때서?’
긴글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행주산성 원조국수집 만세! ㅎ
자기만의 페이스로 다니니까 다른사람 신경쓸필요없이 편하고 좋아요..
백퍼 넘게 공감되고 제가 글솜씨가 있다면 쓰고싶던글 입니다..
혼라라서 더 멋진곳, 지방은 못가지만
근처 왔다갔다로 장거리 자주다니는데
늘 가는길에서도 그때마다의 모든게 다르기 때문에
페달 구르는것만으로 자유로움을 느끼며
좋은글 감사한 글에 장마의 우울함을 비껴갑니다.
댓글 달고 싶은맘에 5년만에 로그인 했어요~^^~
이 댓글로 비오는 오늘 밤, 소주 한병 마실겁니다. 당연히 혼술입니다. ^^
방송 글로 먹고사는 나름 '쟁이'입니다. 최고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ㅎ
-쓰신 댓글 보고서.. 3시간쯤 지난 상황에서 이어 갑니다.-
대댓글을 쓰고서 혼술을 하던 중에 생각나서 대덧글을 붙입니다.
글 솜씨를 부러워 할 필요 절대 없습니다.
글은 쟁이들, 요즘 표현으로 전문가의 영역입니다.
'글은 이성으로 쓰지만, 말은 직관으로 한다.'라는 어떤 시인의 말이 있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절대로 이성으로 단어나 맞춤법, 글의 전개..
뭐 이런 것들로 구체화시키지 마시고..
느낀 그대로.. 있는 그대로 쓰려고 하시면 됩니다.
요즘은 글을 말하듯 쓰는, 말글의 시대입니다.
포가차르.. DNF로 안타까운 빙에가르.. 댈토로.. 피드 콕..
저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릅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들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재산, 학식, 유명세 혹은 도덕성이 아닙니다..
자전거 모뉴먼트에서 영상으로 보는 '라이더로서 스타일' 때문입니다.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저처럼 길게 쓰실 생각마시고요. 짧게 그냥 편하게 쓰세요. 내 스타일.. 그러니까 내 쓰고 싶은대로.
단 유념하실 부분은.. 정말로 쓰고 싶은 생각, 이미지, 감정..등을 쓰시면 됩니다..
내 생각, 이미지, 감정..등을 그에 맞는 문자로 표현하려 마시고,
내게 떠오르는 단어로 소박하게 쓰시길..
그렇게 쓰시면.. 계속 쓰시다보면.. 저절로 알아서,
자신의 스타일로 쓰시게 됩니다..
내향인이라 그런가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싶은 시간이 있는데, 안장 위는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너무 좋은 곳인거 같습니다.
저는 따릉이 타는 여성분들을 보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저
보다 더 즐겁게 타더라구요. 저보다 더 몰입해서 타더라구요.
자도를 좌우로 휘저으며 타는 따릉이는 십중 팔구 여성분입니다.
그런데 추월하면서 얼굴 표정들을 보세요.
평안, 혹은 미소.. 그렇게 집중을 넘어 몰입해서 타는 것에 한때는 짜증도 냈지만,
지금은 늘 '리스펙트'를 날립니다. ㅎ
그리고, 두 손 놓고 보급하는 대단한 기술 보유자신데요... 전 겁나서 시도도 못한 고난이도 기술입니다. 부럽습니다. 저는 보급은 반드시 자전거 세워놓고 합니다.
둘이 타는 자전거는 대부분 빌려타야 합니다. 한강 자도에 네명 이상이 타는 자전거도 있기는 합니다. ㅎ
‘자전거의 가장 큰 매력이 자유로움’이란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자전거의 그 자유로움에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앞서 대댓글에도 잠깐 쓴 이야기입니다.
한강 자도 따릉이를 타는 라이더의 60~70퍼센트는 여성들입니다.
한때는 따릉이 여성라이더를 보면 멀리 피해다녔습니다.
어느날, 마주오는 따릉이 여성라이더의 얼굴 표정을 보고서는, 이제는 더 멀리 피해 달립니다.
제가 본 한강자도 따릉이 여성 라이더들의 표정은, 미소, 행복함, 즐거움, 무념무상..
구름 위를 떠다니는 소녀의 표정 같았습니다.
아, 저분들이 자전거를 정말 즐기시는구나..
그 뒤로는, 따릉이 여성 라이더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될 수 있는 한 크게 돌아 추월합니다.
-따릉이 남성 라이더들 한테는, 핸들바에 설치한 아날로그 벨을 세차게 세번쯤 땡깁니다.ㅎ -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자유로움’, 저도 그 감정이 시작이었습니다.
글고, 두 손 놓고 보급하는 기술은...... 평로라 타세요. 금방 배우실겁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