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라이딩 예찬'만큼 긴 혼잣말입니다. 그래서 역시 반말입니다.
읽으시다가 길다고 중간에서 욕하실거면, 처음부터 읽지 마시길.. ㅜㅜ
평로라의 한계를 아십니까?
'왜 자전거를 타는가?' 질문을 던지면 저마다 다양한 답을 내놓지만,
결국 가리키는 방향은 한 곳으로 모인다. 재미, 혹은 즐거움이다.
그런데 그 재미와 즐거움의 형태는 라이더의 경력과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한다.
초보 라이더의 첫 목표는 대개 '거리'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를 꿈꾸며 안장에 오른다.
100km 이상의 장거리 라이딩을 완주했을 때 성취감은 엄청나다.
하지만 이내 '속도'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길 위에서 나를 훌쩍 추월해 가는 수많은 라이더들의 등판을 망연자실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엔진을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속도계와 심박계, 파워미터에 눈을 뜨고, 스트라바(Strava)에 가입하는 것도 이 시기 쯤이다.
거리의 성취를 넘어 속도를 탐하기 시작했다면,
'중급 라이더'의 문턱을 두드리고 있다고 감히 단언한다.
그런데 중급의 문턱을 넘어서려면, 평속 30km/h 이상을 기록하는, 지속주 능력이 필요하다.
이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 사이클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리는데,
여기서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허들'을 마주하게 된다.
타데이 포가차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도 시합 전 반드시 오르는,
라이더라면 숙명처럼 거쳐야 하는, 좁고 위태로운 쳇바퀴. '평로라(Roller)'다.
독학으로 라이딩 기량을 올리고 싶은 라이더라면 더우기 로라를 피해 갈 수 없다.
파워 훈련을 원하면 '고정 로라', 라이딩 스킬을 높이고 싶으면 '평로라'라가 정해진 공식이다.
최근에는 실제 라이딩 환경을 연출해 주는 스마트로라가 큰 인기지만,
아카데미 코치나 강호의 고수들에게 훈련용으로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하면 십중팔구 '평로라'를 꼽는다.
(스마트로라는 너무 비싸서 애초에 추천 항목에서 빠졌다는 슬픈 현실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사실 평로라는 라이딩 스킬뿐만 아니라 파워 훈련에도 절대적으로 유용하다.
파워는 개별 근육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고관절 주변의 큰 근육들이 완벽한 협업을 이룰 때 비로소 폭발한다.
코치들은 입을 모아 "자전거는 다리가 아니라 둔근과 코어로 탄다"고 강조한다.
나는 평로라 위에서 5번의 겨울을 보내고 나서야,
이 말이 결국 '고관절이 주도하는 주변 근육의 힘으로 페달링을 하라'는 뜻임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내가 얼마나 지독한 몸치였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ㅜ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지루한 평로라 위에서의 페달링은
역설적이게도 라이딩 기술 향상에 가장 확실한 도움을 준다.
시시각각 변하는 필드의 환경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정교한 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라이딩 환경이 고정되어 있으니 미세한 자세 교정이 가능하고,
모든 감각을 오직 페달링과 밸런스 유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
동일한 스타일의 페달링을 고정된 자세로 무한 반복하는 이 훈련은,
필드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정교함을 선물한다.
그런데 문제는 라이딩 기술을 확실하게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이 훈련이,
자전거 훈련 중 가장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점이다.
상급 라이더나 엘리트 선수들에게 평로라 훈련은 세끼 밥 먹듯 해야 하는 일상이지만,
그 쳇바퀴 굴리는 듯한 단조로움에, 성과를 보기도 전에 백기를 드는 동호인들이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평로라 위에서 필드 라이딩 같은 다이내믹한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방법은 있다. 그런데 쉽지 않다.
몸은 마음먹은 대로 제법 움직여주지만, 마음은 몸이 움직인다고 해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하고,
고급스럽게 말하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평로라를 그저 체력 증진을 위한 '운동'이나 기술 습득을 위한 '훈련'으로 여긴다면 곧 한계에 부딪힌다.
그 한계를 부수고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이 과정을 훈련 너머의 '수련(修鍊)'으로 승격시키는 것이다.
훈련의 목적이 효율과 성과에 있다면, 수련의 목표는 그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끝없는 반복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궁극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평로라를 단순한 균형 감각 도구가 아니라 '동적 명상'을 위한 도구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훈련의 지루함을 완전히 떨쳐내고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수련이란 본디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지속해 나가려면 명확한 목표가 필요하다.
나의 화두는 '원형 페달링의 마스터'였다.
양발에 각각 1.5kg짜리 모래주머니를 차고 두 번의 겨울을 무식하게 버텨내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지만, 나는 그 훈련을 밀어붙였고, 나중에 알게됐다.
이는 고관절 부위의 장요근을 각성시켜 원형 페달링을 빠르게 체득하게 하는 나름의 비법?이었다.
일주일에 200km를 목표로 평로라 위를 달렸다.
수없이 바닥에 팽개쳐지며, 다리와 몸통에 십여 군데의 멍 자국을 훈장처럼 달았다.
아우터와 이너 기어를 오가며 한 손 놓고 타기, 두 손 놓고 타기, 외발 페달링까지 거친 후,
마침내 궁극의 미션에 돌입했다.
평로라 위에서 앞바퀴가 좌우 5cm 이상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 삼창 평로라 악세서리 중 하나인 '센터라인'폭이 50mm인 이유를,
지난 겨울 평로라 훈련을 하며 알아 챘다.-
자전거가 허공에 고정된 것처럼 묵묵히 굴러가는 이 훈련을 성공하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평로라 위에서 버텼을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동양 고전에 사기?를 당한 덕분이다.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오래도록 꾸준히 계속한다'는 의미의 능구(能久)다.
옛사람들은 100번을 하거나 100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능구’고,
그렇게 하다보면 몸에 체화되어 제2의 천성이라 불리는 ‘습관’이 된다고 했다.
"그래, 속는 셈 치고 딱 100번만 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평로라 훈련은 겨우내 생활 루틴이 되었고,
나중에는 로라를 타지 않으면 온몸이 쑤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순한 반복 같았던 훈련 속에서
어제의 페달링과 오늘의 페달링이 미세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며,
매일 새로운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페달링을 하며, 4번의 겨울을 났다.
그리고 맞이한 5번째 겨울.
드디어 원형 페달링이 몸에 익숙해지자, 체인텐션이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평로라에서 들리던 소리가 달라졌다.
-초보시절, 나를 추월해가던 상급 라이더의 자전거에서 들었던 공명음 같은-
자전거는 평로라 중앙에 깊숙이 고정된 듯 미끄러졌다.
필드에서의 라이딩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다.
파워가 상승한 수준이 아니라, 페달에 내 파워를 '싣는' 기술을 엉겁결에 터득한 것이다.
온몸의 힘을 쥐어 짜며 오르던 북악 업힐의 풍경도 달라졌다.
여전히 숨은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기를 쓰며 억지로 페달을 짓누르는 대신
돌아가는 페달의 둥근 흐름에 내 체중과 힘을 부드럽게 얹는 페달링을 구사하게 되었다.
따로 연습한 적 없던 댄싱이 자연스레 이어졌고,
자전거가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컨트롤에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생각지도 않은 선물이 찾아왔다. 바로 집중을 넘어선 '몰입'이다.
방송 작가로 살아오며 원고를 쓸 때마다, 고도의 집중을 넘어 몰입을 갈망했다.
의식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알량한 지식과,
그 파편들이 엉켜 만들어내는 영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몰입이기 때문이다.
안장 위에서 경험한 몰입은 책상 앞에서의 그것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잡념을 끊어내고, 나를 잊는 지경에 도달해야만 운 좋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이 몰입이었다.
그런데 페달링이라는 이 단순한 동작의 끊임없는 반복은,
나를 쉽고 간결하게 깊은 몰입으로 이끌었다.
몰입에 빠지는 순간에는 '좋다 싫다', '크다 작다', '빠르다 느리다' 등의 이원적인 분별과
옭매여있던 사물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에서 자연스럽게 해방된다.
'나'라는 에고(Ego)가 증발해 버린 무아(無我)의 상태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완전히 비워낸 그 상태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가장 ‘나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선가나 동양철학에서 호연지기, 평상심, 무념무상, 혹은 '밑 빠진 장독같이 뻥 뚫린 마음' 등
저마다 다른 언어로 부르던 그 궁극의 상태를 평로라 위, 땀방울 속에서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무언가에 가위눌려 있다면,
근심과 걱정을 도무지 떨쳐낼 수 없다면 당장 평로라에 올라보자.
"근심과 걱정이 그래도 사라지지 않으면 어떻하지?" 따위의 자문은 하지 마시라.
나처럼 양옆에 안전 손잡이조차 없는 평로라 위에서는,
딴생각을 품는 그 찰나의 순간 여지없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진다.
살기 위해서라도 번뇌를 지워야만 한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페달을 굴리다 보면 -당연히 밸런스를 맞출 수 있어야 죽기살기로 페달을 굴릴 수 있다.ㅜ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어느새 무념무상의 몰입 상태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평로라 위에서의 훈련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몰입으로 돌입하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졌다.
문득 어린 시절의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늦은 밤, 귀가하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묵묵히 뜨개질을 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
철없던 시절에는 단순하고 지루하게만 보이는 뜨개질을
왜 저리도 정성 들여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제법 들어서야 깨달았다. 그 시절 어머니에게 뜨개질이란,
팍팍한 삶의 시름과 숱한 걱정들을 한 땀 한 땀 엮어서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최상의 명상 기술이었음을.
오늘도 좁은 평로라 위에서 거친 숨을 헐떡이며 굴려내는 나의 이 둥근 페달링은,
그 옛날, 밤 늦도록 이어지던 어머니의 뜨개질과 다르지 않다.
- 긴글, 읽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평로라 만세!!! ㅎ
참조 하세요 ^^
아빠가 햄스터야? 라는 따님의 불만과 웅웅웅 타이어 소리(아래집도 아닌 윗집 수험생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옴) 떄문에 접었습니다. ㅠㅠ
처음으로 두손놓고 타게 되었을 때의 그 기쁨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ㅎ
훈련과 더불어 피팅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퇴골과 경골의 길이가 좌우가 다를 수 있고 이를 맞춰주기 위해 클릿에 패드를 덧대는 피팅을 하고 나니 페달링시에 밸런스가 잘 맞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