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 울진 죽변항-부산 (319km, 3501m)
소변이 마려워 자다 깼다. 시간을 보니 오전4시 16분. 카톡이 와 있다.
푼짱님이다.
원래 6시에 만나서 출발하기로 했는데 이러면 더 잘 필요도 잘 수 도 없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세수도 건너뛴다. 아직 덜 마른 빕과 져지를 드라이로 말려서 입고 나갈 채비를 마친다.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울진CP를 향해 달린다. 선선한 아침공기가 지친 몸을 약간이나마 깨워주는 느낌이다.
오전 6시. 울진CP에 도착했다. 아침 해는 아직도 떠오르는 중이다.
울진CP 이후의 자전거 길은 평탄하다. 달릴 맛이 난다. 바람이 도와주진 않지만 적어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가끔 울진엔 이런 벽 같은 업힐이 있다 것을 알려주는 코스 설계자의 배려를 받으며 울진을 요리조리 돌아 영덕 고래불 해변에 도착한 것이 오전8시 30분.
생각보다 편하다. 어제의 지옥같던 업다운에 비하면 거의 평지같은 느낌이다.
1700여 킬로를 자전거로 타고 오니 세상의 기준이 나만의 기준으로 바뀐다.
한마디로 맛이 갔다.
그런데 고래불 해변을 지나서부터 뭔가 조짐이 불길하다. 낙타등의 진폭이 점점 커진다.
600미터, 700미터, 800미터 이상 되는 길이의 고각 업힐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어느 새 왼쪽 아킬레스건은 또다시 통증을 호소한다. 부을 대로 부어 딱딱해진 힘줄을 마음속으로 달래보며 페달링을 계속한다.
설상가상으로 업힐에서 이너로 변경했던 체인링을 다운힐에서 아우터로 변속해야 하는데 손가락이 굳어 안쪽으로 밀지 못해 변속을 할 수 없다.
몇 번을 시도 했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손바닥 전체로 레버를 감싸 쥐고 안 쪽으로 당겨서 변속을 한다.
살짝 대각선이었는지 브레이크가 잡혀 자전거가 휘청한다. 간신히 낙차는 면했다.
상남자의 변속법이라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맛이..갔다.
그렇게 두시간동안 영덕 해안가에서 탈탈 털려 먼지 풀풀 날리며 이제는 령재치로 간다.
청송으로 가기 위해 5킬로짜리 달산고개를 넘는다.
이름은 참 순하고 예쁜데 후반후 경사는 그렇지 못하다.
옥계계곡에 들어왔다. 계곡풍이 마침 역풍이다. 쌍욕을 하면서도 풍경에 감탄한다.
역풍은 행정구역이 청송으로 바뀌어도 여전하다. 지역대통합의 바람이다.
걸레짝 같은 몸으로 성덕댐 옆길로 올라간다.
마지막 CP인 노귀재 업힐만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게 메인인가 10%이상의 고각이 계속된다.
노귀재CP를 인증하고 영천으로 들아가니 배가 고파 저녁을 먹는다.
이게 얼마만에 제대로 된 밥인지 모르겠다.
밥을 먹고 푼짱님께 연락해보니 옥계-청송을 지나신다길래 역풍에 애도를 표했더니 무슨 소리냐며 바람이 하나도 안 분단다.
인생은...타이밍이다.
남은 거리는 100여 킬로미터. 지금 시각이 오후 7시니 평속 20만 내면 5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문제는 아킬레스건 통증이 너무 심해져 속도가 20킬로를 넘지 못하는데 있다.
그럼에도 두자리로 줄어든 남은 거리를 보면, 또 주변 풍경들을 보면 느린 것이 오히려 좋다.
코스 설계자의 배려인지 아니면 지금 내 마음이 그런건지 건천을 지나 보이는 노을지는 경주의 조용한 마을과 모내기를 끝내고 물이 가득 찬 논에 반사되는 달빛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고 이제까지 힘들게 달려온 나를 어루만져 고생했다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끝이라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다. 줄어가는 거리가 아쉽다.
울산에 진입하고 부터는 시내구간이라 어쩔 수 없이 인터벌을 쳐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데 통증으로 불가능하다.
빠른 효과를 위해 마지막 남은 진통제를 씹어 삼킨다.
진통제의 힘으로 울산, 양산을 지나 드디어 부산.
힘이 난다. 아프지 않다. 다리가 미친 듯이 돌아간다. 업힐이든 약 오르막이든 강력하게 올라간다. 끝을 향해 달린다.
진통제와 아드레날린의 콜라보인가. 죽기 전의 회광반조인가. 모르겠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페달만 돌릴 뿐. 5킬로, 4킬로, 3킬로.. 두 명의 랜도너도 지나쳐간다. 파이팅을 외친다.
동시에 눈물이 터진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펑펑 나와 울면서 달리다가 눈물 자국이 말라붙은 얼굴로 피니시를 한다.
6월 9일 금요일 오후 11시25분.
자봉분들의 박수를 받으며 핸들바에 고개를 박고 한참을 있는다.
출발전부터, 달리는 동안 이 순간을 그리며 어떤 모습일까,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었다.
힘든 때에도 이 순간을 생각하며 달렸다.
난 지금 어떤가. 어떤 감정인가. 일단 고개를 들기 전에 눈물자국부터 닦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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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절차를 마치고 완주에 큰 도움을 주신 간큰남자님께 제일 처음 완주소식을 알렸다.(정말 감사했습니다.)
푼짱님께도 완주 소식을 알리고 미처 도착하지 못한 강릉 드랍백을 부탁드리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예매한 새벽 두시 버스를 기다리는데 삼척 임원에서 헤어졌던 ‘32살에 여자친구 가족들이 전부 자전거 타서 자전거라면 질색을 하지만 남친은 2030킬로를 자전거로 가겠다고 길 바닥에 나와있는, 여자친구를 가진 랜도너' 를 다시 만났다.
그도 나와 같은 버스를 예매 했단다. 심지어 옆자리.
우연과 인연이 시간과 공간에 얽혀 추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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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기간은 일요일까지고 203시간이라는 여유가 있는데 왜 이렇게 서두르냐라고 할 지도 모른다.
사실, 대회 일주일 전 둘째가 태어났다.
3일 입원해 있다가 조리원으로 올라갔는데 하필 2주간의 조리원 퇴원 날이 하필이면 6.10 토요일이었다.
못난 남편이 자전거 타고 싶다고 떼를 써도 웃으며 허락해주고 오히려 걱정해준 아내를 웃으며 맞이하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 자전거부터 세차하고 빨래 돌리고 바닥 청소를 한다.
오전 11시. 와이프의 도착 전화를 받고 아파트 문을 나선다.
그렇게, ..인생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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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의 마비가 심해져서 치료를 받느라 후기 마무리가 늦어졌습니다.
달리는 동안 내내 든든한 존재감으로 위로와 용기를 준 푼짱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닉네임 쉬운 걸로 바꿨어요..랜사모 닉네임으로 ㅎㅎㅎ)
코리아 2030K를 기획하시고 고생하신 코리아 랜도너스협회 관계자분들, 자원봉사자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실행력과 수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 고향을 가지신 엄대감님이 부럽네요. 감사합니다.
이번에 지나간 웅치면도 좋았구요 ^^
집 나가면 역시 생각나는 건 가족이네요.
축하드립니다 글 잘 봤어요.
그래서 더욱 토요일 오전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기 몫의 시련을 감당하며 고난의 일주일을 보낸 셈이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진통제 투혼은 정말 이번이 마지막. 담에도 밥먹듯 약 먹고 달리면 내가 약 다 뺏어서 버릴끄야!!
이팡님과 두 아들과 아내분, 모두모두 행복한 여름 보내세요. 다시 한번 축하축하요~👏👏
대기록 달성과 둘째 출산 축하드립니다.
왼손도 빨리 회복하시길.
덕분에 왼손도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감사합니다.
후기까지 완주 축하드립니다.
저도 손회복이 늦어 병원한번 가봐야겠네요.
손저림 치료도 잘받으시고 회복잘하시기 바랍니다.
콩콩님 말씀대로 한의원에서 전기침 치료 받으니 금방 차도가 있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아빠들 화이팅 입니다!
손마비 증상도 빨리 나으시길.
다행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ㅎㅎ
둘째 축하드리고 무사완주 역시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손마비가 걱정이 되는데 얼른 좋아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덕분에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 긴 거리는 달려본 사람만 이해하는 영역이겠죠
이제부터 아내분께 절대 충성충성^^
둘째 잘 키우세요 나중에 아빠따라 같이 자전거 탈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때 순간순간 회생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웠어요.
안장위에서 뵙겠습니다 수고많으셨어요
득남도 축하드립니다. 흔쾌히 기다려준 세상 쿨한 마눌님까지.... 진짜 완벽하네요 ㅎ
몸조리 잘하시고 담에 푼짱님이랑 같이 샤방하게 먹벙 함 가시지요.
안 그래도 푼짱님께 뒷풀이 얘기했는데 바쁘신가봐여 ㅎㅎ
평탄한 스토리는 하나도 없군요. 고생하셨습니다. 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