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 횡성-울진 죽변항 (245km, 3849m)
어제 21시간 자전거를 타고 4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얼굴 붓기가 안 빠진다.
이건 이제 그러려니 한다.
아킬레스 건이 너무 아파 진통제를 먹기 시작했다.
세수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왼손이 굳어서 펴지지 않는다.
뭘 잡거나 누르거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충 씻고 나와 급히 핸들바를 잡아본다.
다행히 핸들바 잡는 모양으로 굳어서 자전거 타는 것은 문제가 없다.
없는 줄 알았다.
오전7시 20분쯤 편의점에서 아침을 먹는데 득심이님이 지나가신다. 며칠만에 다시 봐서 반갑다.
오늘은 강릉까지 황재+태기산, 속사재+싸리재의 푸짐한 업힐을 넘어야 하고 강릉부터는 지옥의 동해안 낙타등이 기다리고 있다.
난 황재를 처음 넘어보는데 앞으로 매우 싫어하게 될 것 같다.
해발 500미터를 올라왔으면 다운힐을 줘야지! 조금이라도!! 황재는 살짝 내려가는 척만 하다 낙타등을 시전하더니 곧 태기산으로 인도한다.
태기산은 어렵지 않다. 물론 정상컨디션일 때 말이다. 고각이 없다지만 길다. 그늘이 있는 구간도 거의 없다.
하지만 올라가야 한다. 이 곳 정상이 CP다.
정상에 올라 인증을 하고 쉴 틈 없이 내려간다. 태기산 다운힐도 조금 내려가다가 다시 조금 올라가야 하니 풀 아우터로 변속하고 내려가다간 큰 봉변을 당할 것이다.
더구나 다운힐 끝지점은 자연스레 합류하는 길이 아니라 도로 끝 삼거리이기 때문에 왼쪽과 오른쪽에서 오는 차들을 조심해야 한다.
속사+싸리재는 대관령 10킬로 다운힐만 생각하며 올랐다.
대관령면 회전교차로에서 보통 왼쪽으로 대관령을 올라가는데 직진하길래 뭔가 했더니 역시나 듣도 보도 못한 군부대 옆길로 대관령 정상까지 가라한다. 가라면 가야하고 까라면 까야하는게 군대나 브레베나 똑같다.
시원한 다운힐을 하고 강릉초입에 오면 랜도너들은 생각한다. 직진하면 강릉 시낸데 왜 업힐을 올라야 할까. 그 답을 찾아 우회전한다.(퍼머넌트114번 강릉 가는 길에서도 우회전 합니다. 직진하면 강릉 시내라 바로 끝나는데 우회전해서 업힐하고 강릉 언덕에 무슨 아파트가 지어졌나 투어까지 한 다음에야 도착지로 보내줍니다.)
CP가 팬션이라길래 대충 예상은 했지만 차량 통행과 어울려 지옥같은 낙타등은 이번 브레베 통틀어 위험한 코스 베스트5안에 들어가도 될 정도다.
CP에 도착해서 마지막날 입고 달릴 2030기념저지를 꺼내고 져지와 빕을 갈아입는다.
앞 뒤 바퀴에 공기만 채우고 얼른 CP를 떠난다. 그 만큼 정신적으로 시간에 쫒기고 있었다.
동해안 코스의 시작은 정동진부터인데 여기까지 오는 길의 낙타등도 만만찮다.
동해안 자전거길의 낙타등을 타고 평지가 나올라치면 자전거길을 빠져나와 산 속으로 들어가 업힐을 시킨다.
코스 설계자는 말하고 있다. “내가 이제부터 빡세게 굴릴건데 어지간하지 않을 거야. 기대하라고“
.
..
길이 있으면 길을 따라 가는 것이 란도너의 숙명이지. 누군가 그랬다. “란도너는 고통속에서 자기의 제일 낮은 모습을 보고 그 속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이다.”
오늘과 내일, 난 아마 나 자신의 가장 낮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강릉 밑의 동해시에서 위협운전을 여러 번 당한다. 그 중 몇몇은 오르막에서 느리게 가는 나에게 창을 열고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난 잠깐 쳐다 보곤 묵묵히 페달을 밟고 오른쪽 인도에선 제이슨이 끌바를 하고 있다.
동해에서 삼척으로 가는 큰 길에 오르자마자 비가 떨어진다. 나무 밑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기다려본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니다. 천둥소리까지 들린다. 얼른 레인자켓을 꺼내입고 실리콘 슈커버를 꺼내 신발에 씌우는데 여간 쉽지가 않다. 낑낑대며 슈커버를 다 씌우고 나니 이미 온 몸은 비에 젖어서 마른 곳이 없다. 물론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푼짱님께 전화해 동해시에 비가 억수로 온다고 전하고 비를 맞으며 조금 더 가니 삼척. 거짓말처럼 비가 멎는다.
어차피 난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삼척CP까지는 처음 가보는 길인데 동해안 자전거 길이란다. 동해안 종주하시는 분들 존경한다. 미음나루고개만한 낙타등의 연속이다.
CP에 도착해서 쌍화차와 사발면 하나로 추운 몸을 좀 녹이면서 푼짱님께 연락을 한다.
푼짱님은 오늘 울진 죽변항에서 주무신다고 한다. 원래 내 계획은 오늘 영덕 강구항까지다.
여기 삼척CP에서 160킬로 떨어진 곳. 현재 시간오후 6시 30분. 무리다.
나도 중간 어디에서 자야한다.
푼짱님의 죽변에서 자고 320킬로만 타면 골이란 말이 떠올라 일단 죽변까지, 시간이 남으면 조금 더. 타임리미트는 12시 자정까지.
이때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같이 간 랜도너가 있었는데 나이와 여친유무까지 물어봐 놓고 정작 이름이나 닉네임을 안 물어봤다.
이 친구도 영덕까지 간다고 해서 길동무가 생겼구나 좋아했는데 계속되는 낙타등에 털렸는지
임원항을 지날 무렵 모텔 불빛에 굴복해 좌회전을 하며 헤어졌다.
안녕, 32살에 여자친구 가족들이 전부 자전거 타서 자전거라면 질색을 하지만 남친은 2030킬로를 자전거로 가겠다고 길 바닥에 나와있는, 여자친구를 가진 랜도너여.
임원 이후부터는 자전거 길이 아니라 자꾸 이상하게 산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 느껴졌는데 보통 이런 느낌을 느끼면 그건 기정사실이 된다.
아무 것도 없는 산중턱에 희한하게 유흥주점이 많은 월천리를 지나고 나면 삼척로란 불빛하나 없고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의 길로 올라가다 보면 드디어 울진이다.
뒤를 돌아보니 엄청 밝고 넓은 지역이 보여서 참 신기하다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한국가스공사삼척기지본부LNG기지였다.
다운힐을 하다 보니 덕구온천2킬로 표지판이 보인다. 불과 두달 전에 저길 놀러왔었는데.. 내려와서 처음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오후 10시 15분.
밥을 먹고 한 시간정도를 더 갈 수 있다고 치면 20여킬로. 와이프한테 전화해 숙소검색을 부탁해본다. 마땅히 없다.
푼짱님께 연락해 예약하신 모텔 이름을 물어보고 어디쯤이신지 물었는데 생각보다 늦으신다.
일단 먼저 숙소에 가서 짐을 풀기로 했다.
오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예약한 모텔에 도착한다. 아마 내가 마지막 예약자였나보다.
모텔에 불이 꺼져있어 찾는데 약간 애를 먹었다.
빨래 및 충전을 마치고 12시쯤 푼짱님께 전화했더니 다운힐에서 펑크가 나서 큰일 날 뻔 했다고 하신다. 정말 다행이다.
그나저나 내일 320킬로를 갈 수 있을까. 몸에게 슬며시 말을 걸어본다. 몸이 비명을 지른다.
못 들은 척 진통제를 삼키고 잠을 청한다.
다음 편은 신나는(...) 낙타등 울진-영덕구간으로 이어지겠군요.b
어우... ㅜㅜ
왜 무얼위해 그리 타세여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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