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완도-군산 (348km, 2041m)
아침부터 비가 온다.6시에 편의점에서 만나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완도CP를 인증하고 다음을 향해 나아간다.
푼짱님은 전날 밤에 고질적인 앞드사망으로 이너로만 가셔야 하기 때문에 20여킬로쯤 동행하다가 자연스레 헤어졌다.
나도 마음이 급하다. 원래는 오늘 300킬로를 달려 군산까지 가려던 계획은 첫 날, 둘째 날 가불한 몸의 편안함과 의지의 나약함의 댓가로 350여 킬로로 늘어나 있었고..미루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아예 포기하게 될까 두려움이 한차례 온몸을 휘감았다.그래선 안된다. 이렇게 해선 안된다 어떻게든 오늘 계획했던 군산까지 간다. 언덕이 많지 않은 이 구간에서 최대한 거리를 뽑아야 한다.
해남을 벗어나니 이제부턴 거의 평지다. 독천,나주,함평,장성을 지나 갈재를 넘으면 정읍.
여기까지 오면서 중간중간 푼짱님과 통화하며 상황을 물었다.
두시간 정도의 텀으로 꾼준히 뒤따라 오고 계신다. 이너로만 200킬로째 달리고 계신다.
난 상상도 못할 일이다. 기재트러블이 난 상태에서 어ᄄᅠᇂ게든 계속 진행하다니..
역시 랜도너중에 정상은 없다.
정읍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갈재를 넘어 정읍에 도착한 건 오후6시쯤. 모텔을 빌려 잡은 CP라 지원이 빵빵하다. 여기서 이른 잠을 주무시고 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마이크(미케닉)에게 스램 앞드레일러 정비가능한지 물어보고 푼짱님께 전화드렸더니 이미 마이크랑 톡으로 얘기 다 끝내놓으셨단다.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정읍을 떠났다. 가는 길에 자전거샵이 보여 만약을 대비해 푼짱님께 알려드리고 부안을 향해 간다.
월요일 국도변 식당들은 거의 다 문을 닫았고 허기가 지니 해 떨어진 해안가길의 추위는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꾸역꾸역 낙타등을 넘어 격포로 가던 중 문 연 냉면집이 있어 들어갔다.
너무 추웠지만 추위보단 배고픔이 더 했고 격포까지 남은 18킬로를 갈 힘이 없었다.
격포에 도착한 건 오후 9시 10분 전. 푼짱님께 전화드렸더니 자기는 격포에서 주무신다며 밤에 새만금 넘는 건 무리가 아니겠냐고 그냥 자기랑 격포에서 자고 넘어가자고 하신다.
하루종일 쏠로잉과 추운 바닷바람에 털릴대로 털려 있는 나에겐 너무나도 매력적인 제안이었고 순간 넘어갈 뻔 했으나 마음을 다 잡고 군산까지 가기로 한다.
이제 군산까지 61킬로. 변산반도로 들어가는 낙타등 다운힐 길에 도로 공사하는 곳이 세곳이 있었는데 아무런 표지판이 없어서 세 번 다 그대로 그래블 도로로 진입했다. 버텨준 타이어에 무한한 감사를 하며 푼짱님께 내일 조심하라고 리포트를 하고 변산반도를 지나 드디어 새만금길.
저 멀리 군산간척지의 공장 불빛이 보인다. 난 그곳을 향해 달린다. 가로등 없는 도로는 시커멓다.
아무리 달려도 저 공장의 환한 불빛은 제자리에서 빛나기만 할뿐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싸이클링 컴퓨터의 화면을 본다. 바다 가운데 난 길을 나 혼자 달리고 있다.
엉덩이가 아프다. 그래, 이제 천킬로쯤 탔으니 아플만 하지. 양쪽 무릎도 번갈아가며 사이좋게 아프다. 내 몸끼리 사이가 좋으니 나도 좋다. 왼쪽 아킬레스건도 당기지만 이건 미미한 통증이다. 아무도 없는 칠흑의 직선길을 달리면서 외로워진 나는 내 몸이 하는 얘기를 듣는다.
모든 건 끝이 있고 이 빌어먹을 새만금길도 드디어 끝이 났다. 저 화려하게 빛나는 공장들 옆을 지나다 보니 어라 카본 원사 만드는 토레이 공장이 군산에 있었다.
나만의 내적친밀감을 다진 채 군산 시내로 들어와 서천으로 넘어가는 동백대교 앞에도착한 것이 오후11시 30분. 모텔을 검색하고 있는데 창백한 얼굴의 외국인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제이슨이다.
매년 코리아 랜도너스 마일리지 1,2위를 다투는 엄청난 괴물인데 2030 시작하자마자 무릎을 다쳐서 모든 업힐을 끌바로 넘어 잠도 줄여가며 군산까지 온 것이다. 역시 랜도너중엔 정상은 없다.
제이슨에게 굿럭을 외치고 찾아들어온 모텔에서 옷을 홀랑 벗고 빨래하기 전에 잠깐 누으려고 이불을 걷는 순간 진드기가 날 향해 엉덩이를 흔든다. 곤충은 머리 가슴 배 라지만 그 순간 나에겐 그건 엉덩이였다.
프론트에 전화해서 방을 바꾸고 벗었던 옷을 입고 장구류를 주섬주섬 챙기고 바꿔준 방으로 이동한다.
불안하다. 한번 나왔으면 또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진드기와 동침한 남자로 소문나고 싶진 않다.
슬며시 이불을 걷어본다. 없다. 배게를 들어본다. 있다.
땀에 쩔어 잘 들어가지 않는 빕을 억지로 껴입고 환불받고 다른 숙소를 찾아 들어간다.
새로운 숙소의 침대를 전수조사하고 빨래하고 충전하고 침대에 누운 시간 오전2시 30분.
오늘 350킬로를 17시간만에 왔는데 잠자리 문제로 3시간을 날렸다. 외로움을 견뎌가며 달린 결과가 이거라니.. 푼짱님께 톡을 남겼다. 내일 군산들어오시면 연락달라 같이가자고.
지금은 꼭 누구랑 같이 가야만 한다. 그래서 곁에서 함께 달리는 그에게서 힘을 얻어야 한다.
아침에 올 푼짱님의 연락을 기다리며 잠을 청한다.
이말 왤케 웃겨요..
'역시 랜도너중에 정상은 없다.'
공감합니다. 다들 초인들이신듯
너무 재밌습니다
yo
진드기? 벼룩? 암튼 벌레 나오는 숙소는 충격적이네요. 문민정부 시절 MT 숙소 이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늘 진중하고 우직한 줄만 알았던 ZaOric님이 이런 개그캐였다니, 뭔가 새롭습니다. :)
저에겐 1200이 미지의 세계라 너무 궁금해요!
따릉이, 스레빠, 브롬톤, 크록스...이런 걸로 도전하시는 분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상..? ㅌㅌㅌ
생각보다 힘드네요.
작년 여름에 처음 같이 라이딩 했을 때부터 정상이 아님을 강력하게 체험했습니다.
역시 자당분들은 후기까지 확실하시네요.. 저는 후기령은 넘지않는걸로...(글재주도 없고 사진도 없고 ㅋ)
남은 후기도 기대하고있습니다. 회복잘하시고 다음에 기회되면 인사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회복 잘 하시고 완주 축하드립니다!
저에게 초상권이란 없습니다 ㅎㅎㅎ
남은후기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후기령 정복까지 화이팅 입니다.
여기가 요단강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었죠ㅋㅋㅋㅋㅋ
역시 란도너들은 정상이 없어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