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창 자전거 타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초보입니다. 아니 초보로 부족하고 초초초보 정도...
본디 운동 이란 걸 영 좋아하 질 않아서 건강만 축나고 있던 차에, 그나마 덜 답답한 운동으로 자꾸만 하고 싶어지는 게 유일하게 자전거 타기입니다. 이런저런 좋은 자전거가 많지만 당근에서 구해온 MTB 한 대가 제 인생에선 (아직까진) 제일 좋은 자전거라 열심히 타고 있습니다. 국종구간 쪼개어서 스탬프 찍는 재미도 있고, 라이딩 경로를 직접짜고 달려보는 재미도 느껴가는 중입니다. 이번에 속도계도 GPX를 제대로 지원하는 기종으로 바꾼 김에 야심찬(?) 라이딩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집이 수지인데요. 매일 탄천만 타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요런 경로를 한번 짜봤습니다. 양갱도 챙기고, 물이랑 얼린 이온음료도 챙기고, 시작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늘 평속 20km인데 하류 방향이라 24km 정도 찍으면서 신나게 달렸습니다.

양재천은 처음이라 가다가 사진도 찍고요. 사실 오늘 미세먼지가 많았습니다만... 내일은 비가 올수도 있으니까요. 평생을 그닥 건강하게 살아오지 않았는데, 미세먼지 많은 날 뭐 하루 운동한다고 큰일날까 싶어 나섰습니다. 탄천에서 양재천 들어설 때 양갱하나 섭취(1시간에 1개는 꼭 먹어야 하는거죠?) 하는데, 동일 장소에서 쉬는 아저씨들이 담배를 너무 태우시는 바람에... 얼른 먹고 또 달렸습니다.

안양천 진입 할 때 또 양갱 하나 먹으면서 사진 한장.
요즘 열심히 자전거를 탔더니 체력이 좋아졌구나,
패드 있는 속바지를 입었더니 엉덩이가 아프질 않구나 역시 잘 샀다.
속도계도 네비게이션이 딱딱 잘 되는구나. 역시 잘 바꿨다.
스스로를 대견해 하면서 그렇게 안양을 거쳐 판교쪽으로 들어섰고, 약 오르막(5% 정도?)을 열심히 기어 털어가며 올랐는데...
올게 오고 말았습니다.

하오고개.
하오고개 하오고개 말만 많이 들었죠. 하여말 말여하 말만 많이 들었습니다.
쫄아든 마음으로 스쳐간 아이유 고개는 저의 최대 심박을 갱신 했을 뿐, 뭐 이정도면 업힐이란게 기어 털면 다 오를 수 있구나 생각했던 저. 얼마나 오만했던가요.
이미 48km를 (수많은 고수, 굇수, 초보자덕이 님 같은 분들은 준비운동 수준이겠지만 저는 거진 한계를 넘고 있던 중이죠) 달린 상황에서 마주친 하오고개, 10% 경사도가 넘는 업힐다운 업힐. -_- (사실 시작부터 여기만 달렸어도 무정차 통과했을지 아닐지 모르겠는...)
일단 겁없이 시작했는데, 얼마 오르지도 않아서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호흡과 심박이 제어가 안됩니다. 어 이거 숨이 너무 찬데 싶어서 자전거에서 내리고 숨을 고르는데, 숨이 안 골라 집니다? 물을 마시는데 위장이 거부합니다? 자전거 타면서 숨은 찰지언정 다리가 아픈적이 없었는데 근육도 뭔가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잠시 쪼그려 앉았더니 좀 나아졌나 싶어 일어서는데...
귀가 멍멍해지고 눈앞이 하얗게 돕니다. 옆에 나무를 짚고 섰는데 이게 일어서 있을 수준이 아니네요. 속은 뒤집어져서 토할 것 같고 갑자기 변의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토할까? 지리나? 싶어 뒤를 보니 동네 아버님 어머님 두분이 차분히 걸어올라오는 모습이 보이고, 교양있는 현대인으로서 마지막 양심이 저의 신체를 다잡습니다. (가오가 신체를 지배! -_-) 지나가신 후에 헛구역질을 하는데 다행히 뭘 먹은게 없어 올라오는 건 없습니다.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봉크. 저혈당쇼크 그거구나. 인정하니 편해집니다. 버티려고 하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습니다. 누울까 했는데 하필 멈춘눕기에가 눕기에는 좀 위험하고 지저분하네요. 그렇다고 움직일수도 없었습니다. 숨을 좀 고르고 구역질도 가라앉고 나서 봉크의 대처방법을 검색해 봅니다.
'오면 이미 늦었다'
'오늘 운동은 끝난 것이다'
'집에 안전하게 돌아가는 방법을 강구해라'
...
주변에 사는 지인들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XX이가 오늘 집에 있으려나? YY씨 차에 내 자전거가 실릴까? 어제 자전거 타기의 좋은 점을 열심히 전파했던 ZZ 선배님께 안면몰수 연락해볼까?
다시 봉크를 검색해봅니다. 원래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찾는게 검색 맞지요? 제가 원하는 답을 하나 찾았습니다.
'뭔가 먹고, 에너지가 될때까지 기다려라'
다행히 오늘 아침에 양갱을 3개를 챙겼습니다. 평소 같으면 2개 챙겼을 텐데 오늘따라 3개를 챙겼습니다. 양갱을 억지로 입에 넣습니다. 오전에 먹었던 양갱은 먹었는데 지금은 정말 쑤셔 넣었습니다. 맛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넘어가지도 않는 걸 억지로 넘겼습니다. 물도 다먹었네요. 물은 다 먹어치우고 얼음만 남는 이온음료... 얼음을 가드레일에 쳐서 마구 부숩니다. 잘 안부서지는 건 용기째로 주물러서 얼음도 입안에 털어 넣었습니다. 윽, 얼음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머리가 띵합니다. 손오공의 선두인양 억지로 억지로 얼음을 씹어 먹고 다시 좀 더 앉아 쉽니다.
그렇게 약 30분을 보내고 끌바로 올라갑니다. 어랍쇼. 100m도 안끌었는데 하오고개(역방향) 끝나네요. 전기가 안들어오는 냉동창고에서 얼어죽었다는 (사실은 그런일이 없었다던가요?) 이야기, 원효대사 해골물, 여러가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에 평지라서 걱정이 없네요. 그렇게 평소보다는 훨씬 느리게 집에 도착합니다.

간신히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봉크가 무엇인지 몸으로 경험을 하게 되네요.
사후 분석을 해보면 아침을 안먹고 출발한게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20km/한시간 정도 라이딩 할때는 그냥 공복에 타곤 하는데... 코스를 짜고도 코스에 무지한 죄로 이런 좋은(?) 경험을 하게 되네요. 앞으론 에너지는 늘 빵빵하게 채우고 다니겠습니다. 긴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봉크 조심하세요~'
제가 겪어본 봉크 증상입니다.
심지어 15km자퇴하는 길에. ㄷㄷ
이후로는 퇴근전에도 꼭 간단한거라도 주입합니다
연료입니다
안양/의왕 쪽에서 올라가는 하오고개는 쉽지 않지요. 다음에 재도전하시면 한결 수월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