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간 없는 인연이라 해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는 전라도 남원에 발 들인건, 내 마음 속 아로새겨진 광양에서 시작된 자전거 주행에 얽힌 추억 덕이다.
혹한이 채 가시지 않은 2016년의 춘삼월, 광양행 버스에 의탁한 끝에 치룬 첫 한국 란도너스 경장거리 주행기는, 내 7년차 두바퀴 이야기의 첫 줄에 올라있다.
새벽 칼바람의 시샘에 얼어붙은 물통을 부여잡고 여봉선님의 뒤를 힘겹게 쫓아 비지땀을 흘리며 내리 달린 섬진강길에서 목격한 매화꽃길 풍경은 결코 잊혀 지지 않는 내 30대 시절 초상 중 하나다.
광양과 남원을 멋들어지게 이어냈지만 탄생 1년만에 여러 사정으로 사장된 이 경로를 어떻게든 되 살려보자는 발상은, 매화꽃 그리고 섬진강길에 진한 추억과 위로를 빚진 내 숙명이자 의무였는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때가 맞아 뜻을 같이 한 여러분 덕에, 남원과 광양을 잇는 섬진강길을 매화꽃으로 수 놓은 한국 란도너스 퍼머넌트 104번 “흐르는 매화강처럼”으로 부활했다.
매화가 들녘에 만발할 3월 전에는 반드시 둘러봐야 한다는 조급함 그리고 부활의 불씨를 놓은 장본인으로서의 도의적 책임감은 설날 연휴를 목전에 두고 3시간 넘는 거리의 생면부지 남원으로 향하게 했다.
1. 첫번째 기준점 “CU광양매화점”
당일 최고 기온 16도 예보를 믿고 일찌감치 새벽 단잠에서 깨어 미리 정리해 둔 장비를 챙겨 착용한다. 모텔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외부 기온이 일전에 고흥에서 마주했던 것과 달리 사뭇 포근함에 위안을 삼는다.
마음씨 좋은 주인 할머님의 배웅을 뒤로 하고 미리 봐 둔 남원 시청 공영 주차장에 주차 후 자전거를 서둘러 조립, 출발 지점인 남원고속버스터미널을 곧이어 마주 한다. 이른 새벽부터 자리를 털고 기침하신 한국 란도너스 얀 회장님의 격려 그리고 안전 주행 관련 당부 말씀에 화답한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새벽 5시 영상 1도의 날씨에도 추위는 참을만 했다. 고흥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온실 수준.
짧은 주행 끝에 남원 시내를 벗어나 칠흑 같은 어둠에 가려진 고요한 730번 외곽 도로에 오른다. 암흑 속 유일한 벗이자 든든한 동지인 전조등 2개 그리고 뒷전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를 위안 삼아, 가로등은 고사하고 달빛 조차 없는 마치 암실을 연상케 하는 낡은 도로를 내달려 첫번째 오르막인 밤재옛길을 찾는다.
기상과 동시에 섭취한 빵과 커피의 힘으로 3km가 채 안되는 밤재옛길의 차마도를 기세 좋게 훌쩍 넘고 밝은 불빛으로 가득한 밤재 터널을 가로질러 구례로 향하는 길고긴 내리막 하지만 신식 도로가 아닌 구 도로에 몸을 맡긴다.
세월의 무게에 곳곳이 파손된 도로에서 피어 오르는 엄청난 진동에 잠시 흐트러졌던 집중력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하강하며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신식 도로를 이용함으로 경로를 조정하겠다 마음 먹는다.
기나긴 내리막 끝에 구례군으로 뻗은 19번 도로를 기세 좋게 올라타고 다시 속도를 붙인다. 첫번째 기준점까지는 매우 완만한 내리막이기에 힘을 덜 들여도 기대 이상의 가속 효과를 볼 수 있어 주머니 속 간식을 틈나는대로 즐기거나 밤재옛길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얻은 긴장감을 완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리막 그리고 뒷바람의 도움으로 오전 6시를 조금 넘겨 도착한 구례군은 인기척 하나 없이 적막감만 가득하다. 설날 당일이기에 새벽 제사나 귀성객들의 발길로 사람 한 둘 정도는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다. 코로나 확산 예방 차원에서 전라도청에서 내 건 4인 이하 작은 명절 보내기 현수막만이 간혹 지리산을 타고 불어치는 바람에 을씨년스럽게 간간히 나부낄 뿐이다.
왠지 모를 우울감에 남쪽으로 내리 깔린 섬진강 자전거 종주길 입장 전 구례에서 중간 보급을 하자는 계획을 접고 종주길 초입에 잠시 서서 숨을 돌린다. 한국 란도너스 광주-부산-광주 600km때 구례에서 광주 입성 전 여러분들과 둘러 앉아 정신 없이 맛 봤던 뜨끈한 짜장면 한그릇에 얽힌 구수한 추억을 잠시 곰씹어 본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광양으로 향하는 섬진강 자전거길의 시작 지점. 6년전 이 길을 거꾸로 타고 구례로 진입, 초입에 위치한 중화요리 집에서 따끈한 짜장면으로 저녁을 해결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구례에서 광양 동쪽까지 장장 50km에 걸친 섬진강 자전거길은 바짝 마른 매화나무 가지만이 무성하다. 아무리 동장군이 힘을 잃었다지만 아직 활짝 핀 매화꽃의 향과 미를 만끽하기엔 이른 시기임을 알기에, 본 주행의 목적이 경로 탐사이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본연의 임무에 집중한다. 어느덧 산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르며 어둠을 걷어내고 사방 천지를 빛으로 밝힌다. 기온이 오르고 사방 시야 확보가 쉬워짐을 의미하며, 더불어 칼바람으로부터 열 손가락을 막아준 두꺼운 장갑과의 이별과 이젠 주행 중 틈틈히 사진을 남겨야 함을 알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산 너머 동 터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가급적이면 자전거를 멈추고 싶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윽했다.
매화향 대신, 이 짧지 않은 길을 달리는 내내 과거의 무수한 쓰고 단 추억들에 젖어든다. 난데없이 졸음이 온다고 호소하는 smileman을 어떻게든 데려가 보려고 채근했던 일, 피로와 통증에 찌든 참가자들이 시종일관 탄식처럼 내뱉던 이런 저런 잡담들, 우호적이기도 또는 적대적이기도 했던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던 매화 구경 나온 사륜 차량들에 얽힌 이야기들, 힘껏 밟아도 밟아도 요지부동인 기대 이하였던 속도와 주행거리에 푸념했던 일, 어디선가 얼음포대를 구입해서 구세주처럼 깜짝 등장했던 아톰님, 채 마르지 않은 시멘트 위를 달린 탓에 smileman과 엉망이 된 자전거를 급하게 휴지로 닦아냈던 일 등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머릿 속을 주마등처럼 스친다. 인간은 다 지나갔던 일에 얽힌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가 없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섬진강이 바닥만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수면에 비친 아침해의 잔상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을테다. 여전히 달리기 좋은 섬진강길이다.
전체 경로 60km 구간부터 가장 볼만하다는 섬진강 자전거길은 안타깝게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터였다. 작년 한반도를 강타한 수마水魔로 인한 여파인지, 섬진강바닥의 메마른 바닥이 흉물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길은 무너져 내리고 파손 되어 마른 진흙과 모래 그리고 자갈만이 무성하다. 간혹 폭우로부터 온전히 보전된 구간을 제한적으로 달렸을 뿐, 대부분이 그 자취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졌다. 보수를 서두르겠다는 전라도청의 안내 현수막 조차도 겨우내 추위와 풍랑에 더럽혀지고 무너졌으니, 거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그간의 박한 사정을 굳이 캐보지 않아도 알만 하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세상 보기 좋은 경로가 작년 침수 피해로 인하여 사실상 폐쇄된 상태. 결국엔 우측에 위치한 공도를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수마로 인해 상처 입은 섬진강길은 그래도 꾸준히 자전거 나그네의 상실감을 위로해 줄만한 풍광을 연출해줬다. 아쉬움과 경의로움이 동시에 피어오르는 광경.
전쟁으로 인해 마치 폐허가 된 듯한 구례-광양간 섬진강 자전거길 주행 잔혹사는, 과거 한 때 줄 지어 서서 여러 사람들을 호객했던 상업 단지의 폐업 팻말을 마지막으로 잔인하게 갈음 되었다. 이로 인해 중간 보급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 주머니에 넣어둔 젤리와 파워젤을 임시방편으로 맹고불고불길을 거쳐 얼마 남지 않은 첫번째 기준점까지 주행을 이어간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맹고불고불길에 접어드니 남해 바다의 상쾌한 바람과 더불어 짠내가 반겨준다. 남도의 풍경은 언제나 푸근하다.
첫번째 기준점인 CU광양매화점이 위치한 작디 작은 마을 옥곡을 널리 알린 전통 장터는 코로나 사태로 잠정 폐쇄, 설날 당일이라서인지 식당들도 대부분 휴업 상태다. 제사를 마치고 아침 한 술 뜨려는 한 식당 바깥 주인의 무전취식 호의를 정중히 사양하고, 밝은 미소로 새해 덕담과 응원을 남겨준 첫번째 기준점 점주의 호의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도시락으로 늦은 아침, 이른 점심을 해결한다.
2. 두번째 기준점 “구례구역”
어느새 중천에 떠오른 햇살을 머리에 이고 복장을 가볍게 채비 후, 창녕조씨 가문의 배움의 터로 잘 알려진 죽림재 그리고 그 역사와 기운을 받아 이 날까지 그 고연함을 품은 하운마을로 향하는 길에 오른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보기 좋은 풍광을 혼자 볼 때 간혹 외로움이 오르지만, 그 못지 않게 혼자 사색에 잠겨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도심 생활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
외곽 도로인 관계로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까진 좋았으나, 도로 상태가 썩 양호치 않고 외길인 관계로 설날 연휴 휴가나 가족과의 상봉을 위해 길을 나선 차량과의 동행이 죽림재 오르막까지 줄기차게 이어진다.
광양 200km때 물통이 꽁꽁 어는 진귀한 광경을 목격했던 865번 국도를 거쳐, 봉강 터널 그리고 황전 터널이 위치한 봉강 오르막을 맞상대 한다. 바구산과 계족산을 이웃으로 둔 봉강 오르막을 맹추위와 부족한 체력에 기진맥진 했던 광양 200km때 잊고 싶은 기억이 떠 오른다. 그때 보다 훨씬 나은 환경 그리고 상태라지만 여전히 이 길고 지리한 오르막은 상대하게 버겁고 힘겹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경사도는 평이하지만 꽤 길고 묵직하게 느껴지는 봉강 오르막. 과거 여길 한참 오르면서 세상 천지 이런 오르막이 다 있나 싶었다.
smileman과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언제쯤 이 오르막이 끝나려나 푸념했던 추억이 머리 속을 떠날 때 즈음, 마침내 봉강 터널과 황전 터널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낸다. 터널을 지날때마다 듣게 되는 사륜차의 굉음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다. 앞인지 뒤인지 알 수 없는 그 굉음의 울림이 커지면 커질수록 두려움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이율배반적인 묘한 상황이 연출 된다.
터널을 벗어나 시원하게 뻗은 내리막길에서 남도의 푸른 들판과 크고 작은 산들이 눈에 든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 높디 높은 경로를 오른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직 한반도에는 내가 미처 가보지 못했거나 알지 못하는 숨겨진 명소가 많음을 재차 자각하는 귀중한 배움의 순간이기도 하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여느 곳과 달리 남도는 높과 낮음의 경계가 분명하지만 어느 한 쪽 모두 과하지 않고 조화롭게 오밀조밀 모여있다는 느낌이 든다.
섬진강 줄기와 이어지는 회룡천을 옆구리에 끼고 두번째 기준점인 구례구역까지 가는 길은 매우 평화롭고 고즈넉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골길의 풍경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들녘에 푸르름의 싹이 돋아오르고 올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이들의 조심스러운 준비물이 곳곳에 놓여있다. 모든 이들의 염원대로 올 한해 모든 것이 무탈하고 과거의 일상처럼 매끄럽게 돌아가길 바라며, 편의점에서 사 든 음료를 음미한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가족 간의 우애 다지기를 위해 모인 성묘객들이 들판에 자리 깔고 간단한 다과를 함께 하는 푸근한 광경을 흐뭇하게 한편으론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도착한 구례구역에서 대략적인 완주 시간을 점쳐본다. 이 기세라면 빠르면 오후 2시에 늦게는 오후 3시쯤 남원으로 복귀 함이 가능해 보인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할 생각을 이내 접고, 미리 사둔 젤리와 마지막 남은 이온 음료로 소모된 체력을 달래곤 세번째 기준점을 향한 여정을 채근한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항상 급하게 지나쳤던 구례구역. 최신식 역사를 통해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이 심심찮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3. 세번째 기준점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 표지판”
구례구역을 벗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원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자전거길과 마주한다. 큰 오르막은 없지만, 완주점까지 꾸준히 고도가 오르는 지형이라 체력 관리가 매우 중하고 보급지가 박함을 재차 인지한다.
역시나 매화꽃을 기대하기엔 너무 이른 상황임을 자전거 우선 도로 겸 사륜차 주행로 옆에 빼곡히 도열한 매화나무 가지들이 증명한다. 서쪽 방면에 줄지어 배치된 여러 식당들은 코로나 사태 그리고 섬진강길의 수해 피해로 영업을 중단하거나 또는 폐업을 선언한 상태다. 아무리 설날이라지만 이토록 화창한 날, 인파로 그득했을 강길이 을씨년스럽게 방치 되었음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한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우리네 조상님들이 다녔을 강변길은 시간이 흘러도 영원하다. 단지 시대상에 맞게 재단되고 유지될 뿐.
지금 달리는 길 반대편 길 위에서 6년전, 대략 100m 간격을 두고 여봉선님의 뒤를 힘겹게 추격했던 추억이 떠 오른다. 가민에서 20km 주행 완료 신호음이 울릴 때마다 가쁜 숨으로 가득 찬 입 안에 주머니에 채워 둔 초코바를 하나씩 힘겹게 밀어넣고 내달리며 스스로를 채찍질 했던 1인칭 시점의 광경이 눈 앞에 선하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매화꽃이 피었더라면 더 없이 보기 좋았을 풍경. 앙상한 나뭇가지가 아직 동장군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잠시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자 여봉선님 그리고 smileman과 한 숨 돌렸던 공용 화장실이 세월의 흐름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한 직후부터, 자전거가 요란한 진동음과 함께 모래 먼지에 파묻힌다. 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나름의 고전적 풍취를 품었던 섬진강 옛 자전거길이 수해로 인해 곳곳이 파손되고 유실되었음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전남도청마저도 아직 이 곳의 피해 상황 파악이나 복구 계획을 제대로 세워놓지 못한 듯 싶을 정도로 상황이 최악 그 자체다. 덕분에, 파손된 도로를 강행 돌파하거나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위험 지역을 미리 파악하고 대처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진다. 더불어, 줄 이은 진동이 몸에 가하는 충격파로 이마에서 진땀이 흐르고 온 몸 곳곳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예상 시각에 도착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다. 그나마 지대가 높고 물길이 얕은 길은 온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간간히 쉬어가며 숨을 돌리고 사진 촬영으로 경로 보강 증거를 남겨본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메마른 상류 그리고 수해로 인해 발생한 토사물 흔적.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보는 내내 착찹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탁 트인 농로길로 접어들어 쉼 없이 달리다 보니 다행히 세번째 기준점으로 지정한 표지판이 작년 수마의 마수로부터 온전히 보전 되었음을 확인한다.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세번째 기준점을 인근 시내로 정하거나 또는 다른 지형지물을 찾았어야 했을게다.
4. 네번째 기준점 “향가 자전거길 인증 센터”
세번째 기준점을 막 벗어나고 나서야 내 기억 속 섬진강과 갈대 그리고 이름 모를 자연 속 생명체들이 살아 숨쉬었던 자전거길도 완전히 초토화 되었음을 확인한다. 어째서 김영삼님이 이 길을 제쳐두고 세상 볼 것 없는 일반 공도를 경로로 추천했는지 재차 절감한다.
자전거길 상태가 조금 나아보여 올라타면 이에 질세라 폭우에 초토화 된 자전거길이 이래도 덤빌테냐는 기세로 버티고 섰다. 강행 돌파하기엔 메마르고 굳은 토사물과 크고 작은 바위덩이 그리고 자갈들의 기세가 자못 예리하다. 형체를 간신히 유지한 길은 심약해진 지반 상황에 자칫 무너질까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수마로부터 가까스로 형체를 유지한 일부 구간. 그저 그대로 흐르게 두는 것이 자연의 섭리임을 알면서도 미련이 남는다.
아울러, 그간의 고행 덕분인지 나름 질기고 두껍다는 비토리아 루비노 프로 타이어의 옆구리가 산전수전을 겪었을 날카로운 돌날에 베였음도 알게 된다. 마침 예비 타이어를 챙겼으나, 슈발베 프로로 이 쟁쟁한 무리들을 상대했다간 주행 답사를 제때 마치지 못하거나 또는 중도 포기를 해야할 수도 있기에 조신하게 공도를 타고 부지런히 주행을 재개한다.
이처럼 엉망이 된 섬진강길 주행 중 드문 드문 만나게 된, 각양각색의 마스크로 무장한 자전거 여행가들 그리고 산책 중인 이들을 보며 언제쯤 세상을 집어 삼킨 이 혼란이 종식될까 싶다. 마스크 너머로 지금 이 순간의 여흥을 만끽하고 있을테지만,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끔 지탱하는 젖줄이라 할 수 있는 호흡의 자유 정도는 언젠가 반드시 돌려 받을 수 있기를 거듭 기원해본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그래블, MTB가 와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길. 강행 돌파는 둘째치고 안전상의 문제로 어느정도 복구 되기 전까진 얼씬도 말아야 할 듯.
남도 주행 중 꼭 한번 만나게 되는 그리운 네번째 기준점에서 인증 도장을 획득하고 마침 영업 중인 매점에서 물과 음료를 감사히 보충한다. 남원으로의 무사 복귀를 꾀 할 시간이다.
5. 완주점 “남원 고속 버스 터미널”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이었더라면 두 팔 벌려 환영했을, 하지만 지금은 음침함과 더불어 차디찬 바람을 머금은 불청객인 향가 터널을 빠르게 통과하여 농로 형태의 자전거길로 다시금 올라선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순창으로 향하는 그 길. 남도의 브레베 중 심심찮게 들렀던 경로다. 그저 풍광을 보기만 해도 과거의 얼큰한 기억 한 조각이 피어오른다.
드문 인적, 하지만 꾸밈 없는 자연의 풍광과 소리를 만끽하며 이른 봄날의 싱그러움을 홀로 독차지 할 수 있음에 참으로 손에 쥐기 어려운 기회를 눈과 귀로 한껏 만끽한다.
광양 200km과 광주-부산-광주 600km 중 쌓은 과거의 추억을 반추하는 재미와 그나마 나은 환경의 주행로를 시원스레 달리는 쾌청함을 안고 남원을 끝으로 한 본 정찰 주행의 무사 완주 의지를 다진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수홍재 초입. 도로 우측이 토사 붕괴로 주저 앉은 듯 싶었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의 도보 그리고 버스 정류장이 송두리채 사라졌다.
고추장으로 일반에 잘 알려진 순창과 남원을 오랜 세월 이어온 길목, 하지만 여지없이 수해로 인해 군데 군데 심하게 파손된 수홍재와 이씨 할머니와 남원 양씨 종가의 얽힌 고사에 등장하는 드높은 비홍재를 넘어서니 마침내 남원시의 전경이 눈 앞에 희미하게 펼쳐진다.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비홍재를 오르던 중 내려다 본 순창. 사진이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그윽한 풍광의 미는 내 기억의 또 다른 잔상으로 남는다.
여정 내내 과거 목도하고 경험했던 섬진강길의 아늑하고 풍성한 경관을 당분간 찾아보기 어렵겠다는 비관적 현실에 주행 내내 심히 좌절하고 또한 분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금 여러 사람들 그리고 자전거 여행가들의 발길을 잇고 찾게 하는 남도의 명소로 부활하고 재건되리라 믿고 염원한다. 그 때까지 힘 닫는데까지 이 경로를 관리하고 유지하겠다 다짐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지 않던가.
잘못된 형식의 이미지 링크입니다.비홍재 정상. 남원까지 남은 거리는 채 10km가 안된다. 시원한 내리막에서 체력과 힘을 재정비할 시간이다. 남도에서의 마지막 사진 촬영.
차량으로 4시간에 걸쳐 서울로 복귀하는 또 다른 장도를 곧 앞두고 소진된 체력과 당분으로 뒤덮힌 미각을, 남원에서 우연찮게 찾은 수제 모밀 국수집에서 달래고 위로할 생각에 완주점인 남원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발 끝에 자연스레 힘이 모아진다.
내 인생의 빛나는 여러 순간의 궤를 잇는 광양 그리고 남원에서 짧지만 의미있는 여정이 막을 내리려 한다.
6. 맺음말
설날 당일 단독 정찰을 떠나겠다는 폭탄 선언을 너그럽게 받아준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본 경로 부활에 관심과 힘을 보태고 아끼지 않은 조승현님 (현님), 김영삼님 (고르비님), 얀 분스트라 한국 란도너스 회장님의 배려와 지원에 감사합니다.
본 주행에 얽힌 과거의 추억을 더듬고 곰씹을 수 있는 더 없이 소중한 기회를 주신 한국 란도너스 회원님 그리고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합니다.
추신. 사전 동행 의사를 밝혀주셨던 남산님 그리고 소한재님를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함께 모시지 못하여 송구합니다~
-글구 광양 앞바다는 남해입니다. ㅎㅎㅎ
고생하셨어요~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도장 쿡 찍어 둡니다.
글만큼 평소에 이 코스에 대해 애정을 갖고 계셨을줄은 코로나 터진거 만큼 몰랏네여ㄷ ㄷ ㄷ
다음에 같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