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당시 로저 매리스(왼쪽)와 샐 듀란트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뉴욕 양키스 애런 저지의 홈런 행진이 가장 큰 화제입니다. 올 시즌 현재 60개를 쳐낸 저지는 조만간 역시 양키스의 로저 매리스가 1961년에 세운 아메리칸 리그 기록 61개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매리스는 1927년 베이브 루스가 세운 시즌 60개 기록을 깼죠. 이제 매리스가 61년에 61개로 세운 기록을 61년 만에 저지가 넘어서기 직전인 거죠.
매리스가 61번째 홈런으로 쳐낸 공에 얽힌 훈훈한 뒷 얘기가 있습니다.
당시 관중석에서 이 공을 잡은 사람은 샐 듀란트라는 19세의 트럭 기사였습니다. 빈털털이였던 듀란트는 그날 여자 친구에게 10달러를 빌려 입장권 4장을 샀습니다. 그리고 친구 커플과 함께 더블 데이트 겸 야구 구경을 갔다가 역사적인 공을 잡는 행운을 잡았죠.
메이저리그 구장에서는 보통 이렇게 기념할 만한 홈런 공이 나오면 구장 직원들이 그 공을 잡은 사람에게 가서 해당 선수의 서명이 든 기념품과 교환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 공을 선수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서죠. 물론 공을 잡은 사람이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매리스의 홈런 공을 잡은 듀란트는 공을 달라고 온 구장 직원에게 본인이 직접 매리스를 만나 주고 싶다고 했답니다. 직원들의 안내로 매리스를 만난 듀란트는 공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매리스는 "그 공을 그대로 갖고 가서 경매에 부치게. 그러면 누군가 큰 돈을 내고 그 공을 살 걸세. 그 공을 산 사람은 며칠 있다가 나에게 도로 갖다줄걸세."라고 했답니다.
결국 그 공은 캘리포니아에서 식당을 하던 샘 고든이라는 사람이 5천달러를 주고 사서 매리스에게 주었다네요. 그 당시 5천달러의 현재 가치는 약 5만달러 정도 된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식당 주인 고든은 그 뒤 듀란트가 10달러를 빌려준 여자친구와 결혼할 때 신혼여행 비용까지 다 대주었답니다.
엄청난 대기록의 증거인 홈런 공을 아무런 대가 없이 선수에게 돌려주려한 야구 팬이나, 그 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공을 받지 않고 조언을 한 매리스, 거금을 주고 공을 산 뒤 매리스에게 돌려주고 '착한' 듀란트의 신혼여행 비용까지 대준 식당 주인 고든까지 61호 홈런 공에 엮인 사람들은 모두 대인이었네요.
<사족 1>
현재 메이저리그의 공식 한 시즌 홈런 기록은 배리 본즈의 73개(2001년)입니다. 그리고 마크 머과이어가 70개(1998년), 65개(1999년)로 두 번, 새미 소사가 66개(1998년), 64개(2001년), 63개(1999년)로 세 번, 매리스의 61개보다 더 많은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들은 모두 내셔널 리그 팀 소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활약할 당시는 금지 약물 복용이 횡행하던 시절이었고 세 사람 모두 약물 복용이 확인됐거나 의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약물 문제로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릴 정도였죠. 그래서 많은 야구 팬들이 이들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거나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지의 올 시즌 홈런 행진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족 2>
로저 매리스는 기록을 세운 1961년 시즌 내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타 구단에서 영입된 '굴러온 돌' 매리스가 양키스에서 데뷔해 최고 스타가 된 미키 맨틀과 홈런 기록에서 각축을 벌이다 시즌 막판에 앞서자 일부 양키스 팬들은 이를 못마땅해 했답니다. 또 양키스 팬들에겐 영원한 전설인 루스의 기록이 깨지길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당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였던 포드 프릭은 154 경기 시즌에 세운 루스의 기록과 162 경기 시즌에 세운 매리스의 기록은 같은 조건의 기록으로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매리스는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고, 탈모를 겪을 정도로 스트레스와 공포를 겪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