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어떤 남자들이 있었어요. 그 남자들은 과거의 기술이라며 잊혀지던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 기술을 다시 꺼냈어요. 그 기술로 커다란 헤드폰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1,000달러로 팔아도 아주 잘 나가는 거에요. 그래서 계속 기술 개발하고 물량 투입해서 더욱 더 비싼 헤드폰들을 내놓았어요. 나중에는 무려 4,000달러짜리 헤드폰까지 만들게 되었어요. 기술의 절정에 도달한 남자들은 가까운 미래를 예견했고... 드디어...!
400달러짜리 게이밍 헤드셋을 만들었어요.
...? (대본 읽다가 멈칫)”
오글거리는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왠지 엉뚱한 결말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헤드폰 회사 ‘오디지(Audeze)’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오디지의 남자들은 가상현실 기술이 다시 부상하던 초기부터 3D 오디오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VR 헤드셋용 이어폰을 내놓은 것도 오디지였지요. (*iSINE VR : VR 헤드셋 어댑터가 추가된 iSINE) 오디지는 유난히 엔지니어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고, 그들은 매우 진지한 하이파이 헤드폰을 개발하는 와중에도 3D 사운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미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 기술로 왜곡 없고 해상도 높은 소리를 만들 수 있으니, 필요한 것은 3D 효과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Waves라는 회사와 손을 잡았답니다.
오디지의 게이밍 헤드셋 ‘모비우스(Mobius)’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이 헤드폰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됩니다. 오디지는 물리적인 부분을 만들었고 Waves는 NX 기술을 제공했습니다.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의 플랫 사운드와 방 안에서 라우드 스피커를 듣는 듯한 공간감이 한 대의 헤드폰으로 결합된 것입니다. 즉, 3D 효과를 오디지의 하이파이 사운드로 듣게 된다는 점이 모비우스의 진짜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Waves NX 기술은 이런 사운드에 소리 위치 확인(Sound Localization), 머리 위치 추적(Integrated Head Tracking), 방 안의 울림 효과(Room Emulation)를 더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게임을 위한 실감 사운드’인데, 내면적으로는 ‘스테레오 헤드폰을 라우드 스피커에 가깝게 바꾼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비우스는 헤드 트래킹 방식의 정밀한 3D 기능으로 가상현실 컨텐츠의 사운드 엔지니어링 장비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모비우스 본체만 판매되지만 해외에서는 3D 오디오 소프트웨어와 모비우스를 묶은 크리에이터스 에디션도 판매 중입니다. (모비우스 헤드폰, Waves B360 Ambisonics Encoder, Waves NX Virtual Mix Room을 포함한 패키지) 모비우스는 공간의 개념을 적용한 소리를 재생할 뿐만 아니라 ‘3D 사운드의 제작’에도 사용된다는 뜻입니다.
벌써 머리가 혼란스러운 분도 있을 겁니다. 오디지 모비우스는 그냥 헤드폰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헤드폰인데... 어떤 식으로 특별한지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지식과 사용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모든 것을 제쳐두고 모비우스를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듣기 좋은 3D 효과가 통합된 고해상도 사운드 헤드폰’
게이밍 헤드셋 중에는 드라이버 여러 개를 담은 다채널 제품도 있고, 어떤 제품은 3D 사운드에 원래 최적화됐다고 주장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비우스는 첨단 기술과 발전된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자연스럽고도 생생하여 ‘듣기에 좋은 3D 효과’를 제공합니다. 게다가 오디지의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로 재생하니, 소리의 고해상도가 이미 확보된 셈입니다.
무려 한 달이나 고생하면서 모비우스를 사용해본 저는 그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모비우스는 소리로 귀를 즐겁게 하는 헤드폰이지만, 하도 기능이 많아서 방대한 분석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모비우스를 사용할 여러분에게 미리 조언을 드립니다.
헤드폰의 기능에 너무 집중하지는 마세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을 찾은 후에는 게임, 영화, 음악 모두에서 3D 효과를 즐기며 인생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 기능의 학습은 해봐야 합니다. (...)
이러한 이유로, 오디지 모비우스 감상문을 빙자한 장편의 사용 안내서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비우스를 쓰면서 놓치고 있었던 정보가 나올 수도 있으니 이미 구입하신 분들도 짬을 내어 정독하시길 권합니다.
제품 디자인, 구성품, 그리고 별매품
모비우스는 블랙 바탕에 구리색(카퍼, Copper)과 파랑색(블루, Blue)이 들어간 두 가지 모델로 나뉩니다. 일명 ‘팀 컬러’라는 것인데요. 한국말로 하면 동팀과 청팀이 되겠군요. (기묘한 색상 대립이군) 이 제품의 크라우드 펀딩 시절부터 구리색이 훨씬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저는 파랑색도 마음에 들지 말입니다. 여러분의 취향대로 고르시면 되겠습니다. 존중입니다. 취향해주세요.
제품의 기본 구성은 헤드폰 본체, 탈착식 붐 마이크, 3.5mm 헤드폰 케이블, USB-C to USB-C 케이블, USB-A to USB-C 케이블입니다. 헤드폰하고 붐 마이크하고 케이블 3개가 있다면 다 챙긴 겁니다. 캐링 케이스(6만원)와 헤드폰 스탠드(3.6만원)는 별매입니다.
모비우스의 가격은 상당히 저렴한 편입니다. 많이 팔려고 기획한 제품이라서 가격도 부담 없게 책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격이 PS4 한 대 값이니 게이밍 헤드셋으로는 비싸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습니다. 이 물건은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아니라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의 헤드폰이며, 머리 위치를 감지하는 센서와 3D 효과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첨단 장비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모비우스는 게임 콘솔 한 대 가격으로 사는 게이밍 헤드셋이 아니라, 게임을 포함한 모든 소리에 3D 효과를 더해주는 차세대 헤드폰입니다. 유선 연결도 할 수 있지만 ‘소리 좋고 3D 되는 블루투스 헤드폰’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은 가격이라고 봅니다.
모비우스용 헤드폰 스탠드는 25cm 높이이며 헤드밴드를 걸치는 부분에 가죽 쿠션도 있어서 다른 헤드폰도 쉽게 거치할 수 있습니다. 스탠드의 베이스에 모비우스 로고가 있을 뿐 사실은 범용 헤드폰 스탠드입니다. (대형 헤드폰에는 크기가 작을 수 있음) 간단한 조립이 필요한데 나사 좀 돌려주면 금방 완료됩니다.
그러면 모비우스의 외관을 살펴봅시다. 이어컵과 헤드밴드 외부는 무광택의 실리콘 코팅이 되어 있으며 헤드밴드 쿠션과 이어패드는 메모리폼을 담은 인조 가죽 소재입니다. 오랫동안 착용할 수 있도록 두툼한 쿠션을 넣은 것인데, 대부분의 헤드폰이 그러하듯 귀에 땀이 차는 것은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이어패드가 귓바퀴 전체를 덮어주는 오버이어(Over-ear) 타입이며 휴대용 헤드폰으로는 조금 큰 편이지만 머리에 쓰거나 목에 걸고 돌아다니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헤드폰의 본체 무게는 주방용 저울로 재어보니 360g이 나왔습니다. 오디지 홈페이지에는 350g으로 되어 있는데 구리색과 파랑색 모두 360g으로 나왔으니 대충 그 정도라고 퉁칩시다. 이 정도의 무게는 오디지의 다른 헤드폰들보다도 훨씬 가벼운 것이지만 이어컵 속에 부품과 배터리가 들어 있어서 체감 무게는 제법 묵직합니다.
모비우스는 밀폐형 헤드폰이기는 한데 소음 차단이 아주 강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음악을 틀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나 소음 차단이 되느냐를 판단하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게임이나 영화 감상에서는 계속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라 고요한 구간도 있기 때문에 헤드폰만 머리에 쓰고 있을 때의 소음 차단도 확인해둬야 합니다. 모비우스의 경우는 게임을 하는 도중에 집 밖에서 싱싱한 갈치가 왔다고 외치면 그것이 오징어인지 갈치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뭔가 싱싱하다는 주장은 전달되는 정도의 소음 차단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소음을 절반쯤 차단해준다능) 그리고 미약하지만 이어컵 바깥쪽으로 소리가 조금씩 새어나옵니다. 그러므로 생활용 헤드폰으로는 좋지만 독서실용 헤드폰으로는 권하지 않겠습니다.
일반적인 헤드폰은 드라이버와 하우징만 있고 앰프가 없는 패시브 스피커입니다. 반면 블루투스 헤드폰은 하우징(이어컵) 속에 앰프와 배터리까지 담은 액티브 스피커라고 보시면 됩니다. 모비우스도 이어컵 속에 각종 부품을 담고 있는데 이로 인해 좌우 하우징 내부의 용적이 달라진다면 좌우 채널의 소리 밸런스가 틀어질 수 있습니다. 이 제품을 살펴보면 우측 이어컵에만 총 6개의 구멍이 있는데요. 아마도 좌우 채널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만든 듯 합니다.
버튼을 눌러보시오!!
모비우스는 단순한 블루투스 헤드폰이 아니지만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서 다른 블루투스 헤드폰과 비교해보겠습니다. 블루투스 헤드폰 몇 개를 다뤄봤다면 이어컵의 버튼은 보통 전원 버튼이 페어링을 겸하고, 볼륨 조정 버튼 두 개가 곡 넘기기를 겸하며, 어떤 경우는 페어링 버튼이 따로 있다 - 이 정도로 기억하실 겁니다. 그러나 모비우스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진화된 첨단 장비라서 그렇습니다. 다양한 입력과 기능이 잔뜩 들어 있는데 이것을 모두 버튼으로 다루게 됩니다. 터치 패널보다는 버튼이 직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버튼마다 지정된 기능을 암기해야 하는 불편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비우스는 ‘모든 버튼 눌러보기’가 정말 중요하게 됩니다. 마치 ‘엘더스크롤 5 : 스카이림’에서 길바닥 행인과의 잡담 한 번으로 전대미문의 대형 퀘스트를 시작하게 되는 것처럼, 모비우스의 버튼 사용법 한 개만 익혀도 매우 중요한 기능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버튼 누르는 방법 하나가 헤드폰의 소리를 크게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품의 사용 전에 수입사에서 친히 담아주는 한글 설명서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읽는 분이 꼭 있을 터이니 저도 버튼 설명을 정리해둡니다.
*모든 버튼은 왼쪽 이어컵에 있습니다.
*전원 버튼
- 3초 정도 길게 누르면 헤드폰 전원이 켜집니다.
- 5초 정도 길게 누르고 있으면 전원이 꺼집니다.
- 블루투스 헤드폰으로 쓸 때는 전원 버튼을 더블 클릭하면 수동 페어링이 시작됩니다.
- 블루투스 헤드폰으로 쓰거나 스마트폰에 USB 연결한 상태에서 전원 버튼을 짧게 누르면 음악 일시 정지와 재생이 되며 전화 받기와 끊기가 됩니다.
*마이크 음소거 스위치
- 평소에는 마이크 음소거와 해제를 합니다.
- 펌웨어 업데이트를 할 때는 반드시 음소거 상태로 둬야 합니다. (스위치 내림)
*3D 버튼
- 길게 누르면 ‘3D 매뉴얼 – 3D 오토 – 3D 오프’를 전환합니다.
- 3D 매뉴얼 상태에서 짧게 누르면 머리 위치의 중앙 지점을 설정합니다.
- 더블 클릭하면 ‘USB – Aux – 블루투스’로 입력 전환이 됩니다.
*헤드폰 볼륨 휠
- 그냥 돌리면 헤드폰 자체의 볼륨이 조정됩니다.
- 한 번 누른 후 돌리면 다음 곡, 이전 곡 이동이 됩니다. (USB, 블루투스 입력에서)
- 더블 클릭하면 이전 기기에 페어링합니다. (블루투스 입력에서)
- 3초 정도 길게 누르면 헤드폰 충전이 꺼집니다. (USB 입력에서 주로 활용)
*마이크 볼륨 휠
- 그냥 돌리면 마이크의 볼륨이 조정됩니다.
- 한 번 누른 후 돌리면 사운드 모드(EQ)가 전환됩니다. (매우 중요함!)
- 3초 정도 길게 누르면 사운드 채널의 수와 고해상도 지원 여부가 전환됩니다.
여기까지 보면 진짜 중요한 버튼은 ‘3D 버튼’과 ‘두 개의 볼륨 휠’입니다. 특히 볼륨 휠은 ‘누른 후 돌리기’가 쉽지 않으므로 상당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꾹 누른 다음 즉시 밀어주세요. 연습이 완료되면 모비우스의 진짜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중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