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전승 기념일 이후의 일본인들
2차대전에서 패전한 유럽 추축국들의 경우, 점령지의 행정을 위하여 연합군은 점령지의 각 지역별로 연합국 출신 담당자들로 구성된 행정단을 파견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에선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을 사용합니다. 맥아더장군(장군이라 쓰고 쇼군이라 읽습니다)이 이끄는 미군정 사령부는 일본의 행정조직을 그대로 남겨두고(심지어는 천황마저도), 사령부의 의사 결정사항이 기존 일본정부를 통하여 전달되고 시행되게끔 조치한 것입니다. 이는 자존심과 위계질서를 지고의 가치로 아는 일본인들의 성격에 부합하여, 아무런 저항과 반대가 없이 미국은 일본을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을 미군정은 해방된 우리나라에도 시행했었는데... 이건 실패로 끝났지요. 과거 관료들이었던 친일파를 다시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려다 인민들의 극렬한 저항을 초래한 건, 미국이 일본을 우리나라랑 비슷하게 보았기 때문에 저지른 실책이 아닐까 합니다. 미국이 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지역 인민위원회와 손을 잡았어야 한다는 브루스 커밍스의 말이 떠오릅니다.)
만일 일부의 미국 식자들 생각대로 미군정이 일본의 기존 통치체제를 뒤엎고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정부를 새로 세웠다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해였을 것이라고 베네딕트는 생각합니다. 장구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민족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부정적으로 적용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 제3세계의 독재정부를 지지하는 것이 그런 케이스. 너희들은 아직 민주주의할 레벨이 안돼~ 하는 그런 생각이 미국의 이러한 행태의 저변에 깔려있겠지요) 그래서 루스는 일본에 있어서 선거를 통한 정치지도자의 선출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일본 사회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말씀. 자민당이 천년만년 해먹는 거도 그렇고 지역구 의원이 세습되는 일본의 실태를 보면 이러한 일본인들의 민족성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면, 일본인들이 가진 불변의 믿음인 천황을 정점으로 한 위계사회라는 기본적인 전제만 지켜진다면, 일본인들은 어떤 행동이라도 -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루스 베네딕트는 이러한 일본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잘못된 것이라 판단될 때 질질 끌지 않고 완전히 다른 대안을 과감히 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빠른 태세전환에 대해 서구인들은 그게 진심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일본인들의 성격을 고려하면 이러한 의구심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참전군인들이 정치세력화하여 이러한 새로운 일본의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지만,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민간 경제를 부양하는데 쓴다면 일본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적절한 위치에서 노력을 다할 것이기에 일본은 다시 강국으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일본인들에게 조언하면서 베네딕트 선생은 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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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부채도사식 해석이기는 합니다. 잘되면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되면 망가질 수도 있고...
빠른 태세전환이 가능하다는 일본의 강점은 약점이기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메이지유신이나 전후 일본의 경제 부흥은 일본의 특성이 긍정적으로 발현된 것이지만, 세계적으로 짱을 먹겠다며 군국주의를 택한 일본의 과오가 앞으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 또한 없겠지요.
책 소개에도 언급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미국사람이 경험하고 수집한 자료를 재차 분석한 것에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죠.
동아시아의 공통된 문화 양식을 일본 문화라고 분석한 부분들을 보면 그 한계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군주에 대한 충이나 효의 개념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유교문화권 특히 동북아 삼국의 공통분모 아닌가 생각했었구요.
역사적으로 일본에서 유교적 충의 개념은 에도 시대에서 이전의 전국시대 사회를 타파하고자 사회 개혁의 도구로 도입된 거라고 하죠.
충효와 인이라는 유교적 미덕간의 우열관계가 일본에서 완전히 전도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 이 책 국화와 칼에서 하이라이트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서구 학자가 서구인들이 보기엔 그게 그거 같은 중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이렇게 예리하게 지적하다니... 하면서 놀랐었지요. 바로 옆에 있어서 오히려 발견하기 힘들던 점들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 준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