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는 아니지만 평소 AI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AI와 관련된 소식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그런 정보는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업무를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그런 시대를 대비하기 위하여 내가 할 수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알아보는 과정에서 이 책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대니얼 서스킨드라는 영국인으로, 영국 정부에서 총리 전략팀 정책 자문관, 정책팀 정책분석가 등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출판사에선 뉴욕타임스가 ‘대선후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라고 평가하였다고 홍보하더군요.
아무튼 300페이지라는 책을 정리하고, 또 그와중에서 최대한 정보를 빠지지 않고 알려드리려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워드로 대략 10페이지정도 분량) 내용이 너무 많다 생각이 드신분은 더욱더 짧게 요약하였으니 글의 마지막 부분만 보시면 되겠습니다.
대부분 책의 내용을 따오다보니 번역투가 많습니다. 그리고 별로 없지만 ※ 다음은 제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Chapter 1. 기술과 일의 역사
과거 산업혁명 시대에도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거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지난 우리는 아직까지도 기계에게 일을 넘겨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무조건적으로 낙관적으로 봐선 안된다. 이번은 다를 수 있다.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하는 힘 vs 정반대로 노동자를 보완하는 힘으로 대결
노동자를 보완하는 힘은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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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효과 : 인간을 도와 노동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늘려주고 그에 따라 노동 수요를 증가 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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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확대 효과 : 기술 진보에 따라 우리는 과거에 비해 폭발적인 생산을 이뤄냈다. 경제 파이가 커지면서 발생한 노동 수요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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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탈바꿈 효과 : 농업 -> 공업 -> 서비스업 으로 파이의 종류 자체가 달라져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낸다.
지금까지는 노동자를 대체하는 힘과 보완하는 힘의 대결에서 보완하는 힘이 승리하였다.
하지만 신기술은 특이하게도 이는 저숙련, 고숙련 직종에게 특혜를 주었다. (여기서 숙련은 교육수준을 의미한다.)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숙련도가 높을수록 신기술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21세기가 되자 신기술의 혜택은 저, 고숙련자에게만 돌아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ALM (Autor-Levy-Murnane)가설이 나온다.
ALM 가설은 2가지 깨달음을 토대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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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관점에서 노동시장을 보면 현실을 왜곡한다 : 우리가 어떤 일자리가 대체될지를 생각할 때 그 일자리에 대해서 한 가지 특성만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변호사는 ‘변호사 업무’, 기자는 ‘기자 업무’만을 한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사자들은 매우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걸 알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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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숙련 수준이 기계가 그 업무를 수행하기 쉬울지 어려울지를 늘 의미 있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 높은 교육수준이 필요하다고 해서 기계가 익히기 어려운게 아니다. ‘틀에 박힌 일’인지 여부가 기계에겐 오히려 더 중요한 잣대이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 앤 컴퍼니가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2017년 당시 기술로 대체 가능한 직업은 820개중 5퍼센트가 안되었다. 하지만 구성 업무 중 적어도 30퍼센트를 자동화할 수있는 직업은 무려 60퍼센트가 넘었다.
AI는 처음에는 말그대로 인간의 지능을 모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이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는 인공지능 암흑기를 발생 시켰다. 이에 연구자들은 인간의 지능 전부를 모사하기 보단 체스를 둔다던지, 퀴즈를 맞춘다던지 바둑을 둔다던지 등 한 가지 업무에 탁월한 인공지능을 개발한다. 전자를 순수주의, 후자를 실용주의라고 책에선 말하고 있다.
AI연구의 실용주의로 인해 ‘틀에 박힌 일’이라는 기준이 바뀌게 된다. 일례로 운전, 문서 작성들을 경제학자들은 틀에 박한 일이 아니라고 규정했었지만, 지금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일들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업무를 수행하는 방법을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닌 인공지능의 방식대로 수행하여 알맞은 결과를 도출해 낸다면 된다.
Chapter 2 위협
AI의 진보가 인간의 고용에 어떤 영향을 주리라고 예상해야 할까? 지난 날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 있지만 모든 일을 할 수있는 정도는 아니다. 대체하는 힘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한계가 불분명하며 계속 바뀌고 있다.
기계의 새로운 한계를 알아내려고 하였을 때, 기계는 사회 지능이 필요한 과제 (대면접촉, 공감하고 지지해야하는 활동)을 쉽게 하지 못한다.
인간의 능력과 별개로 기계가 수행할 수 있는지를 확인 해보면, 기계가 목적을 설정하기 쉽고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 판단하기가 복잡하지 않고, 배울 데이터가 많다면 그 업무는 자동화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목적이 모호하거나 데이터가 부족한 업무에는 자동화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급변하는 현상에서 언제 그 기준이 바뀔지 모른다. 이를 알아보기보단 큰 추세를 봐야 한다.
사람이 수행했던 업무를 기계가 갈수록 더 많이 맡는 이 큰 추세를 ‘업무 잠식’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이 일에서 사용하는 3가지 능력. 1) 신체 2)인지 3) 정서 능력을 살펴보면 모두 기계의 압박을 받고 있다.
1)신체 능력 : 무인화가 가져올 파장
주로 농업쪽에서 이용되긴 하지만 가장 관심이 집중 된건 무인 자동차와 무인 트럭. 그 중에서도 개인 이동 보단 화물 운송에 큰 집중. 건설 분야 또한 많은 진전이 있었다.
2) 인지 능력 : 알고리즘이 인간을 대체한다.
법조계의 판결. 의료계의 진단. 교육분야. 금융 거래. 기사 작성. 인력 관리 심지어 고해성사까지도 기계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3) 감성 능력 : 인간의 감정에 반응하는 로봇
감정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소셜로봇 분야도 활발히 발전하고 있다.
앞서 사례들을 보면 물론 ‘인공지능의 겨울’ 처럼 위기가 올 수 도있지만, 업무 잠식은 큰 흐름이 될테다. 이미 지난 100년동안 우리가 폭발적인 성장을 거뒀으므로 앞으로는 그런 열매를 다시 거둘 수 없을거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최근의 기술 발전만 보더라도 현실에 맞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기계발전은 지구 전역에 같은 속도로 발전하는 게 아니다. 지역마다 속도 편차가 있다. 첫번째 이유로는 지역마다 일자리의 유형이 다르고 특정기술이 다른 곳에서는 쓸모 없지만 어떤 곳에서는 훨씬 쓸모있게 쓰이는 게 원인이다. 국가별 1인당 GDP와 자동화 위험의 상관관계를 보았을 때, 1인당 GDP가 낮은 나라 일수록 자동화 위험이 높은 추세를 보인다. 이는 국가마다 업무 구성 차이로 보인다. 국가 뿐만 아니라 같은 국가에서도 지역별로 차이가 난다.
두 번째 이유는 비용의 차이이다. 인건비가 지나치게 저렴한 경우 비싼 기계를 도입하는게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다. 하지만 점점 기계는 업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비용또한 감소해가는 추세이다.
세 번째 이유는 규제 및 문화의 차이이다. 대중이 인공지능으로 인한 업무 대체에 대하여 얼마나 호의적인지에 따라 발전 속도가 다르다.
이 3 가지가 가장 극적으로 반영되는 곳을 보자면 중국이다. 중국의 대부분 업무는 자동화에 취약한 업무이고, 인건비는 점점 급격하게 오르고 있으며, 정부는 인공지능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시너지로 중국의 인공지능은 급격하게 발전 중이다.
앞으로 일거리는 있지만 모든 노동자에게 그 기회가 가지 않게 되는 ‘마찰적 기술 실업’이 발생할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이 세가지 마찰은 1) 숙련 기술 2) 정체성 3) 장소 의 불일치이다.
1) 숙련기술의 불일치
선진국 노동시장은 점점 양극화 되고있다.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는 늘어나고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는 넘쳐나게되었다. 하지만 중간의 일자리는 점점 시들어가고있다.
숙련 기술의 수준과 노동자의 숙련도는 경주를 벌였고, 그 격차는 줄어들지 않아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2) 정체성의 불일치
고임금 고숙련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로 몰릴 수 밖에 없게 된다. 학위가 필요없는 패스트푸드점 종사자 중 ⅓ 이 학위가 있는 미국인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로 가느니 아예 실업자가 되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도 늘어나고있다. (한국 이야기도 한다. 대학 졸업생이 70퍼센트이나 실업자의 절반이 대학 졸업생이다는 이야기 언급)
미국의 성인 남성들 중 신기술 때문에 제조업에서 밀려난 이들은 ‘핑크 칼라 (기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일자리의 종사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걸 반영코자 사용한 용어. 유아원 교사, 간호사, 미용사 등을 말한다)’ 직업을 선택하느니 실업자로 남기로 선택했다. 이는 임금 보단 자신의 정체성을 위한 경우가 많다.
3) 장소의 불일치
일자리와 주거지가 일치 하지 않아 실업자로 남는 경우도 존재한다.
(※ 아무래도 국토면적이 넓지 않은 나라에 살다보니 크게 공감가지 않고,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업율도 문제지만 노동참가율 또한 지켜봐야한다. (아예 취업의지가 없는 사람이 증가하고있다) 신기술이 일거리의 양 뿐만 아니라 질 또한 감소 시키고있다.
1. 사람이 몰려 임금 하락 2.일자리의 질 또한 하락 3. 일자리의 지위 변화
단순히 1)기술을 배우고 2)정체성을 바꾸며 3)이사만 가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찰적 기술 실업과 다르게 일자리 자체가 감소하는 일이 발생 할 수도 있다. 이를 ‘구조적’ 기술 실업이라 부른다. 지난 수십년과 다르게 노동자를 밀어내는 힘이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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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하는 힘의 약화
앞서 이야기한 3가지 요인 (생산성, 파이 확대, 파이 탈바꿈)으로 인해 사람이 맡을 일자리는 아직 까진 충분하였다. 하지만 점점 이 3가지 요인 모두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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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효과 : 생산성 효과도 일정부분까지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거지, 기계가 인간 보다 압도적으로 월등하게 된다면 기계입장에선 인간이 전혀 쓸모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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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확대 효과 : 앞으로도 파이는 계속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 커진 파이에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소득 증가가 상품 수요 증가로는 이어졌지만 노동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진 않았다. (농업, 제조업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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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탈바꿈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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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입장 : 우리가 현재로선 예상치 못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생산되겠지만, 여기에도 노동력이 필요할지는 의문이다. (애플 vs AT&T 의 고용력 차이, 소셜미디어같은 신사업 고용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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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 입장 : 기술진보가 바뀌어 새로운 업무가 필요해질 날이 온다. 하지만 무슨 근거로 인간이 가장 유리하다고 가정할 수 있을까? (차가 도입되면서 자리를 잃은 말의 케이스)
(※ 너무 부정적인거 아닌가 싶음.)
일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인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우월성 추정’ 이라고 부른다. 이는 지나치게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게 한다.
우리에게 얼마쯤 남은 업무가 있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몇 안되는 그런 업무에 모든 사람을 고용할 만큼 충분할까?
위에서 다룬 주장들은 노동 총량 분별의 오류 (lump of labour fallacy) 라는 문제를 일으킨다.이 이론은 “일의 총량”은 정해져있기때문에, 노동자 한 사람이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조심해 노동 총량이 전체 노동자에 골고루 얇게 퍼지도록 하는 것이 노동자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이론. 기술 진보에 유익한 측면. 즉, 보완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 저지른다고들 말하는 실수.
우리는 노동의 시대가 어떻게 막을 내릴지 알 수 있다. 일의 세계는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서서히 줄어들 뿐이다.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일정한 속도로 줄어들거라고 생각할 근거도 없다. 어떤 산업은 빠르게 줄어들고 어떤 산업은 다른 영역보다 영향을 덜 받을 것이다. 어떤 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떨어지더라도 처음에는 일의 양이 아니라 일의 성격 (임금, 일자리의 질, 지위)이 먼저 바뀔 것이다.
일이 줄어든 세상이 오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정확히 말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렇지만 시기를 예측할 만한 전반적인 의견 몇 가지는 살펴볼 만 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이 큰 ‘로이 아마라 (Roy Amara)’ 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기술의 단기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장기 영향은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와르르 무너지리라는 두려움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
짧게 볼 때 우리가 걱정할 건 마찰적 기술 실업으로 인한 일부 노동자의 실업이다.
하지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노동수요자체가 충분하지 않은 구조적 기술 실업이 일으킬 위협이다.
기술적 실업의 위협은 말 그대로 예삿일이 아닌 듯 들린다. 하지만 기술적 실업이 일으킬 위협은 이미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떤 문제가 더 극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그 문제는 불평등의 증거다
물론 불평등은 문명만큼이나 오래된 현상이다. 과거 수렵 채집인 시절로 거슬러 가보면, 그 당시는 불평등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농업과 목축이 시작되고 사회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불평등은 커져갔다.
불평등으로 인한 격차는 점점 더 켜졌고, 이제 일어날 수 있는 기술적 실업이 더 큰 위험을 우리 사회에 안겨줄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문제는 누구나 자본을 소유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라며 불평한다. 이건 전통 자본 (땅, 건물, 기계, 주식, 채권, 소프트웨어, 데이터) 같은 말에만 해당된다. 누구나 다른형태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이다. 이를 인적 자본이라고 부른다.
인적자본은 인간을 기계처럼 본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냉혹하고 편협한 시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오히려 냉정하게 인간을 특별하게 보지 않으므로 현상황을 파악하는데 유리하게 해줄 수 도 있다.
앞서 말한 기술적 실업은 인적 자본의 가치가 노동시장에서 크게 떨어지게 만들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적자본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더라도 전통자본을 소유하고있는 자들은 계속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문제는 전통 자본의 소유주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은 인적자본, 전통 자본 모두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해 예측하기 위해선 현재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있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불평등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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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계수 : 선진국의 지니계수는 30-40년 동안 꽤 많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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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경제에서 전체 소득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 살펴 본다면, 1980년 이후 저소득층에서는 소득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최상위 1퍼센트는 엄청나게 상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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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소득 불평등 (top income inequality) : 상위 1퍼센트의 소득 점유율을 보면 미국과 영국에서 30-40년 동안 2 배 이상 늘었다는 걸 알 수있다.
이러한 불평등이 확대되는 요인은 인적 자본 과 전통 자본이 모두 불공평하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자본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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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는 인적자본 말고 자본이 크지 않다. 불평등 연구를 살펴보면 상위층의 임금 소득 점유율이 폭발적으로 늘어 가고 있는 걸 알 수있다. 이는 기술 진보가 원인으로 보인다. 기술 진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명확치 않다. 어떤이는 CEO 또는 금융업자들이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올리고 회사가치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금더 설득력 있는 주장은 생산성의 향상보단 권력의 증가가 임금 불평등을 유발했다고 할 수 있다. 큰 영향력으로 자신에게 후한 연봉과 상여금 수당을 스스로 안겨주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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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만 하더라도 인적 자본과 전통 자본의 소득을 비교하였을 때, 전체 소득 중 2/3을 인적자본이 차지하였다. 인적 자본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어 2015년도엔 ½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생산성은 올라가고 경제의 파이는 커졌는데, 인적 자본의 비중은 줄어들었을까. 미국의 사례를 보면 노동자의 임금은 생산성에 비해 1980년 대 이후 큰 성장이 없다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신기술의 발전과 슈퍼스타 기업의 등장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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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자본 소유자의 소득 증가. 21세기 자본론에서 토마 피케티가 말하듯이 데이터를 확보할 수있는 모든 나라와 모든 시기에 거쳐 전통 자본의 소득은 증가하고있다. 이는 전통 자본 자체가 역사적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되어있는 상태가 원인이다.
Chapter 3 대응
기술적 실업에 대하여 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보이는 반응은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는 숙련 기술의 문제로 사람들에게 적합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선 이러한 해결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논해본다.
교육이 노동자의 기술 진보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지난 경험에서 비롯된다. 18-19세기가 전통 자본의 시대 였다면, 20세기는 인적 자본의 시대였다. 아직까지도 교육은 우리들이 인적자본을 확장하기 위해 선택할 수있는 우선적인 방법이다. (미국의 대졸자와 고졸자의 급여차이등을 통해 확인 가능)
실제 세계의 정부는 더 많은 교육을 늘리려고 노력해왔다. 점점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국민의 학력은 높아졌다. 지금까진 이러한 방법이 통했다. 하지만 나날이 능력이 향상되는 기계 앞에서 ‘더 많은 교육’은 변화를 꾀어야 한다. 그 변화는 3가지 1) 무엇을 가르칠지 2) 어떻게 가르칠지 3) 언제 가르칠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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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르칠까: 혹은 가르치지 않을 것인가
지난 몇 년간 자동화의 위협에 대한 제안 아래에는 한가지 원칙이 깔려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기계가 못하는 일을 잘하게 할 숙련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이다. 이는 곧 틀에 박힌 업무는 기계가 인간을 앞서고 있으므로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노동자가 기계와 겨루어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을 것이다.
하지만 더 먼 미래에는 기계가 틀에 박힌 업무라는 틀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기계는 창의성, 판단력, 공감 같은 능력이 필요했을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기계의 손이 닿지 않을 업무는 불확실성 속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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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르칠까: 적응형 및 개별화 학습
몇 백년 전 교실의 수업 풍경과 현재 수업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많이 닮아있다. 기술 진보는 점점 더 개별 학생에게 맞는 학습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MOOC 과 같은 서비스가 제공 되며 공간의 제약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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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르칠까: 평생 학습 받아들이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육이란 삶의 초창기에 받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몇 년 안에 이런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끊임없이 기술의 진보로 재교육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교육의 가치를 의심하는 눈초리가 급격히 켜졌다. 특히 현재 대학 과정이 주목 받고 있다. 대학 교육은 거품이고 학비가 너무 비싸다는 주장도 늘어나며, 학비를 충분히 보상 받지 못한다는 의견도 늘어가고있다. 애초에 대학이 개인의 능력을 키워줘서 생산적인 노동자를 만든게 아닌 대학을 간 개인 자체가 능력이 뛰어나 생산적인 노동자로 성장 되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주장이 과장 되었더라도 교육을 전반적으로 의심한 태도 자체는 중요하다.
현재 교육의 문제는 2가지 문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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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1 : 숙련 기술은 그림의 떡
더 많은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인이 더 많은 교육을 실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울지를 그다지 심사숙고 하지 않는다. 교육은 고되고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타고난 성향 차이로 재교육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런던의 택시기사에게 다시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라고 하는 건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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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2: 부족한 수요
교육이 기껏해야 문제의 작은 부분, 일자리는 있지만 그 일을 해낼 숙련 기술이 부족한 상황만을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정체성, 장소 불일치로 일어나는 실업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구조적 기술 실업. 즉 사람들이 교육 받는 일의 수요 자체가 충분하지 않을 때이다.
결국 사람이 맡을 일이 부족해지는 세상이 다가오고있다. 오랜 대응 방식인 ‘더 많은 교육’ 또한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기 어려워 보인다. 저자는 그 동안 너무 ‘일’이라는 문제에 집중했다는 생각을 하였고, 더 근본 적인 문제인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어떻게 나눌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일을 통해서’ 경제적 번영을 나누었다. 하지만 이는 미래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분배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시장을 대체할 ‘큰 정부 (Big State)’ 가 필요하다.
지난 세기에 경제를 둘러싼 가장 큰 논쟁은 정부가 경제활동을 얼마나 관리 할지와 시장에서 움직이는 개인의 활동을 어디까지 내버려 둬야 할지 였다. 소련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논쟁은 결국 소련이 붕괴되고 미국이 승리하며 일단락 되어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큰 정부가 분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큰 정부는 20세기의 계획경제와는 다르다. 정부를 이용해 파이를 키우는 것이 아닌 정부를 이용해 모든 사람이 파이를 나눠 갖도록 보장하자는 것이다. 일이 부족한 세상에서 자유 시장이 멋대로 돌아가게 만든다면 노동시장이 분배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혹자는 지금 복지국가가 있지 않나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이미 세계 곳곳에서 소득 부양 제도와 정책을 적용하고 있으니 이를 보충하면 되지 않냐고도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복지국가는 일시적인 실직자들이 다시 새로운 일에 맞는 훈련을 받을 때까지만 지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실업이 일시적인 문제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땜질만 하는 기존 복지국가 제도가 아닌 조금 더 큰 정부의 역할 2가지가 필요하다. 이는 1) 가차 있는 자산과 소득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크게 매겨야 한다. 2) 그렇게 모은 돈을 자산과 소득이 없는 사람과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조세 제도가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장치가 될 것이다. 소득에 비례하여 세금을 매겨야 한다. 소득은 현재 추세로 볼 때 다음 3가지에 쌓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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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매기는 세금 : 기술적 실업은 한 번에 모든 직역에 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기계의 업무 잠식으로부터 벗어나있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매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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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매기는 세금 : 경제학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모델들은 전통 자본에 가장 적합한 세율은 0퍼센트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은 바뀌어야 한다. 더 큰 어려움은 전통 자본에 세금을 매긴다는 개념이 훨씬 모호하다는 것이다. 로봇세 같은 게 제시 되었지만 많은 논쟁이 있었다. 전통 자본에 세금을 매기기 위해선 자본이 어디에 쌓여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누가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상속세 또한 증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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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매기는 세금 : 우리는 갈수록 많은 산업 분야에서 소수의 기업이 지배하는 현실을 보았다. 대기업의 지배력이 커지면 노동자 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이 기업들의 수익이 커진다. 하지만 지난 기간 동안 이런 기업들의 실효 세율은 낮아져 간 걸 볼 수있다.
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보편적 기본 소득 이라는 발상에 크게 환호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이 방안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비켜선다.
보편적 기본 소득을 향한 폭넓은 지지는 이 발상의 핵심 세부 사항이 불확실성과 의견 충돌에 휘둘리기 쉽다는 사실을 가려 버린다. (예를 들면, 어떻게 지급해야할지, 얼마를 줘야 할지, 지원금을 주는 조건은 무엇일지)
저자는 이에 반해 조건적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만 받고 분명한 자격조건이 따르는 기본소득
1) 구성원 승인 정책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사회의 구성원에게 준다’ 라는 말에서 구성원의 정의가 모호하다. 그리고 기존 구성원들은 자신의 기본소득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여 새로운 구성원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할 것이다.
2) 수급 자격 요건
보편적 기본소득은 1. 부자에게 지원금이 가더라도 불공정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2. 수급자격 조건을 구분하는 데에 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효율적이다. 3. 수급자에게 낙인을 찍지 않는 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동료 시민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이바지한다고 느끼게 보장해야 하는 기여 문제는 무시한다. 만약 기본 소득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조건에 붙인다면 이런 문제는 줄어들 것이다.
3) 다양성 문제
민족 구성이 다양할 수록 공공재에 쓰는 비용이 적다는 연구가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그런 문제를 지적 받는다. 경제 격차의 골이 깊은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막을 유일한 길이 구성원의 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 사회 연대를 강화하는 것 뿐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큰 정부의 주요 역할은 소득에서 세금을 거둬 분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 연대를 구축하고자 경제활동과 상관없는 자격 요건을 새로 추가할 것이다. 또 다른 큰 정부의 역할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애초에 소득이 생기는 출처, 즉 가치 있는 자본 자체를 분배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기본 소득이 아닌 기본 재산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정부 입장에서 2가지 이유로 매력적이다. 1. 정부가 맡는 소득 분배 역할을 줄일 수있다. 2. 사회의 경제적 분열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역할을 20세기에도 정부는 이미 했었다. 대표적인 게 대중교육이다. 인적자본을 분배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앞으로 인적 자본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감소할 것이므로 전통자본을 나누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시민을 대신해 정부가 펀드에 투자하는 시민 자산펀드 (노르웨이나 알래스카의 국부 펀드) 와 같은 예가 있다.
앞으로 더욱더 소수의 기업이 사회의 소득을 차지해 갈 것이다. 이는 불평등을 위시한 경제적 위협 뿐만 아니라 정치적 위협도 우리 사회에 가한다. 이들 기업이 추구하는 특정 가치가 사회에 강요 될 수있다. 이러한 미래를 막기 위해선 큰 정부는 이들을 감시할 감독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한다. 바로 삶의 의미와 목적.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일이 중요한 이유는 소득을 제공한다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기술적 실업은 경제 영역을 넘어서는 사안이다. 즉 일자리는 소득 뿐 아니라 삶의 의미와 목적, 방향도 알려주는 원천이다. 기술적 실업은 사람에게서 소득 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까지도 앗아 갈 수 있다.
일은 프로이트가 보기에는 사회 질서의 원천 이었고, 베버가 보기에는 사람들에게 더 원대한 목적을 제공하였으며, 야호다가 보기에는 삶의 체계와 방향을 제시 하였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능력주의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든다. 일 자리가 있는 사람에게 긍정적 감정을 주는게 아닌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심어주는 것이다.
일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신성화 되었을까? 오늘날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일을 수행하는 지를 살펴보라. 누가 봐도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삶의 심오한 의미나 성취감을 안기는 구실을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일이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든 아니든 앞으로 일이 크게 줄어들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정확히 무엇을 할까’라는 물음을 해결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 흔히들 내놓는 답은 잘사는 부유층을 길잡이로 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부유층 대다수는 일을 통해 소득을 얻어야 할 걱정없이 살았다. 하지만 잘사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들여다봐도 특별히 중요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일상이 지나치게 미화되곤하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는 일이 없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지 답을 내놓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여가 정책이 필요하다.
1) 교육 재검토하기 : 오늘날 대다수 교육 기관의 우선 순위는 사람들이 일의 세계에 대비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정치인, 학자, 정책 연구자들이 학교에서 ‘개성’과 ‘삶의 기술’을 가르 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날이 갈수록 목소리를 높인다.
2) 여가 형식 결정하기 : 정부는 우리가 특정 활동을 선택하고 다른 활동을 그만두도록 은근히 부추기는 것을 볼 수있다. 또한 연금제도는 여가가 인생의 황혼기에 하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만든다. 자원봉사제도 또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이 현재에도 이미 다양한 ‘여가 정책’ 이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훨씬 더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체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기술적 실업의 세상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고귀한 일’을 시도하고 싶어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유급노동이 줄어든 세상을 이야기 하였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 일할 가치가 전혀 없더라도 계속 일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 ‘일’이라고하는 직무를 찾아 나설 것이다. 일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면, 일에서 생산성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추구한다면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는 걱정은 잘못이다.
유급 노동이 줄어든 세상에선 일과 여가의 구분선이 희미해질 것이다.
일이 줄어든 세상에서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빈둥거리거나, 무보수로 일하며 모든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사회가 몇 곳 안될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 했다가는 어느 사회든 무너지고 말터이기 때문이다. 유급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적어도 어느 정도 시간을 써서 경제와 상관없는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에 이바지 해야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조건적 기본 소득’ 이 이에 적합하다. 이에 따라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가 가치있게 여기는 것, 한 사회로서 우리가 기꺼이 지갑을 열려고 하는 대상들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엄청나게 값진 가치가 있으면서도 임금 사다리에서는 상위권에 있지 않은 모든 활동을 재검토 하는 것이다.’
정부는 여가 정책과 조건적 기본 소득과 같은 개입 방안을 이용해, 일의 자리를 메꿀 삶의 의미를 채워줄 원천들을 관리해야 한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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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호들갑 떠는 것처럼 당장 대부분의 인간 일자리가 기계에 대체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AI는 ‘인공지능 겨울’을 지나 실용주의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폭발적으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 성장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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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이 도입되면서, 개인과 노동시장의 성격 불일치로 인한 ‘마찰적 기술실업’ 과 인간 노동 수요 자체가 감소하는 ‘구조적 기술실업’이 확대 될 것이다. 결국 언제라고 말할 순 없지만 대부분의 노동은 기계에 대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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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엔 전통 자본 (주식, 데이터, 생산기계, 토지 등)과 인적자본 (개인의 노동력)으로 나눌 수있다. 앞으로 인적자본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전통 자본을 갖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간에 불평등은 더욱더 확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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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와 내용의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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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적 기술실업에선 교육마저 무의미하다. 이를 위해선 큰 정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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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부는 지금보다 더욱더 적극적으로 자본과 대기업에 세금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닌 조건적 기본소득을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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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잃은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줄 수있다는 점과 사회적 분열등을 막는 다는 점에서 조건적 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에 비해 유리하다.
감상평
인공 지능 시대를 대비하여 개인이 할 수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이 책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이 무엇을 준비해야할지보단 정부의 역할에 더욱더 집중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이야기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행동하여 미래에 대응 한다기 보단 일을 잃은 개인을 생각해주는 선한 정부를 바란다는 건,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듯 하다. 그래도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 볼 수있다는 점이 이 책을 읽은 수확이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파악한바로는 개인이 전통자본 획득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미 전통자본의 격차가 매우 크고, 개인이 갖고 있는 전통자본은 소량이여서 전통자본을 대량 갖고 있는 기업과 경쟁에서 이길 수없어서 그런지 명확히는 모르게씁니다.
책에서는 딱히 뭘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안해줘서 조금 답답하더라구요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인한 불평등이 제일 문제고
그 보완책으로 인공지능세 데이터세 로봇세 등 조세 정책과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이에 덧붙여 정부(국민연금 같은)에서 재생에너지에 많이 투자해서 고용창출과 수익금으로
일자리 및 기본소득 재원 문제에 연구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게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일이죠. 일이 없으면 기회도 없죠.
그런데 이 기회를 결정할 권력을 가진 소수에게 집중되고 부를 독점하는 것이 인간 문명에서 되풀이되는 현상입니다.
결국 소수가 제 욕심을 한 껏 부리다 사회를 국가를 무너뜨리는 일이 반복되었죠.
흥망성쇠는 인간과 국가의 운명일까요?
아마도 AI가 그 시험에 들게 할겁니다.
또한 인공지능이 필요로하는 상위 계층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대응해야 될 겁니다.
문제는 개인이 사회인으로써 그러한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는 점이지요. 개인의 자원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정부-혹은 집단의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같은 인구 대국들은 앞으로 뭘로 먹고 살아야 할지...
인력이 이제는 자원조차 되지 못하네요.
"칼의 발명은 과학이나
그 칼을 누가 쥐고 누구에게 향하는가는 정치"라고..
일찌기 새로운 기술혁명은 그 사회와 국가의 정치에 책무를 던집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노동의 시대가 끝났다는것은 기술혁명의 결과이나.
현상이 사회에서 끼치는 영향은 정치에 따라
그 방향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노동의 "종말" 이 될런지
- 부정적 (디스토피아) - 실업자 논리
노동의 "해방"
- 긍정적 (모두가 유한계급) : 기본소득 + 로봇세 논리
이 될지는 정치(권력체계) 가 결정합니다.
성원의 선택(정치 투표)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동의 해방쪽에 한표 줄랍니다. 기원을 담아서.
(다만 그 과도기엔 진통이 없을 순 없겠지만요.)
기본소득 이슈는 먼미래가 아닌 코앞으로 다가온듯 합니다.
문제는 그 노조 마저도 없으며 진입장벽 조차 낮은 단순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죠.
사각지대 이것 또한 엄청나구요
유벌하라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A.I 는 인간의 인지적 능력을 대체한다. 신경공학과 행동경제학의 도움으로 인간의 '직관' 은 뉴런과 시냅스의 생화화적 반응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각 개인의 역량의 총합이 A.I 통합 네트웍크와 비교 될 때 그 위상은 더욱 초라하다.
더 이상 노동자는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무관심을 대상일 뿐이다. "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우리 애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런지 걱정이 되는 요즘입니다.
딸 하나 키우고 있지만, 이런 이유로도 와이프한테 애 낳지 말자고 5년 동안 설득했는데 실패 했습니다. :)
더 낳아 괴로움을 증가시키는 걸 예방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낳아 키우는 자식은 책임을 다 해 키워야죠. 제가 남긴 말은 앞으로 더 낳지는 않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와이프도 몇 년 키워보더니 자기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책임이 많은 일이라고, 셋 낳겠다는 생각이 쑥 들어갔습니다. ㅎ
다른 내용들도 공감하지만, 자본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지적이 특히 와닿습니다. 가깝게는 부동산 보유세가 있겠습니다.
금융자본에 대한 과세, 데이터(=자본)에 대한 과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더욱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금융자본의 경우에는 한 국가에서 과세를 강화하면 다른 국가로 유출될 수 있고, 데이터의 경우에도 혁신 경쟁에 장애가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러우니까요.
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지금 현재 입시위주의 교육은 정말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과거의 성공법칙이 좁은문을 통과하는 만능키라고 믿는 부모들과 가시적인 대안이 없는 상황이 이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만, 이 책에서도 역시 탁월한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좀 아쉽네요.
정신차리고 분배를 중점으로 두는 정책을 펼치도록 그런 정치인을 지지해야 합니다.
한심하게 부동산이나 지지하지 말고요.
현재흐름처럼 불공정이 가속화되면 어차피 못따라갑니다. 회사 때려치고 주식과 부동산에 몰빵해도...
시장은 정보가 양방향으로 공정하게 흐르고 지속적으로 공급이 창출될 수 있을때나 공정하게 가는 겁니다.
정보와 정책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놔두면 개미는 어차피 개미일뿐입니다.
다른나라도 다 그렇다는 둥
자본주의가 그렇다는 둥
헛소리하지 말고 우리나라라도 제대로 돌려야 합니다.
다른나라 분배정책들 열심히 참조하면서...
임대료 상승 금지, 최상위 자본 이윤에 대한 지속적인 증세, 자산에 따른 벌금액 증액 등 해야될 거 많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저는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노동의 종말과 출산률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노동을 하지 않는 인간은 후세를 낳으려고 할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은 혼자서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고 또 그것과는 별개로 현재 자신의 삶이 우선인 가치관을 가지는 세대들이 늘어남에 따라 기존 결혼 제도의 유지력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노동의 소멸이 이 현상을 가속화할지 아니면 중단 시키고 회복시킬지 감이 안옵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제가 생각하는 이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50년까지 전 세계 인구는 90억으로 증가할 것으로 pew research 에서 전망합니다.
교육,수입수준이 높은 동아시아나 유럽국가에서는 출산율이 계속 줄어들 전망이고, 그렇기 못한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 인구 증가의 대부분이 일어날 것으로 보더군요.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높은 교육 수준과 삶의 질이 자연이 현재의 삶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자손을 퍼뜨리는 전통적인 유전적 성질조차 바꾸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오래오래 건강하고 재미있게 산다면 자손이라는 의미가 없어진다라는 공식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추측하신 것이 인구변화 연구분석인데, 수입과 교육 수준은 자녀 수와 반비례 하는데 (대체로)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도 자녀 수가 계속 줄어 2018년 기준 2.04 명입니다.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438186/fertility-rate-in-bangladesh/
그런데 라이프스타일 향상, 교육이 번식욕구도 오버라이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번식을 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 억년에 걸쳐 형성된 번식본능이 특별한 이벤트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
감상평 감사해요~!
스크랩 하였습니다.
어찌됐던 개인의 노동력은 갈수로 평가 절하되겠군요...ㅜ_ㅜ
그런데 산업화 시대 이후로 혹은 그 이전에도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대체할 도구를
끊임없이 만들어왔죠
그렇다고 인간이 필요없어지진 않죠
새로운 노동꺼리는 계속 또 만들겠죠
문제는...
노동에 대한 임금편차가 너무 심해지고 있다는거
80년대 후반이후 더욱 심해진다는거
해결법은...
임금의 편차를 줄여야되겠죠
모두가 자본가(ex,건물주)되라는 말은 헛소리죠
세계최고의 교육열을 가진 한국에서도 교육으로 이를 해소할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은 생물입니다. 그리고 유전자는 일정부분 오류를 일으켜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여 환경변화에 대응 합니다. 하지만 세대간의 사소한 변화도 수 십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AI라는 생태계의 파괴자가 머지 않은 미래에 도래할 것 같습니다. 그게 디스토피아가 될지 유토피아가 될지 의견이 분분하죠.
엘런 머스크도 AI의 위험성을 한참 떠들고 다니더니 이젠 AI의 도래를 막을 수 없다고 보고 오히려 인간과 기계의 인터페이스가 융합한 사이버펑크 기술을 열심히 연구하죠.
아마도 인간은 일이 벌어져야 그때서 적응을 할 수 있을 뿐이겠지요.
인간의 수명 보다 기술의 세대 교체가 빠르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술에 짓눌려 있습니다.
거기에 유전자기술의 발달로 영생 이야기도 나오고 있죠.
이재용이 백년후 천년 후에도 이재용으로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뉴로맨서 이후 얼터드카본과 같은 사이버 펑크 시대가 등장 할 수도 있죠.
한국인은 스스로 종의 종말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출산율을 보며 생각합니다. 물론 환경에 적응한 최적의 누군가는 살아 남겠죠.
사실 그것은 현세대가 제어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강AI는 도래할 겁니다. 공존할지 도태할지는 결국 그때 결판 나겠죠. 섯부르게 디스토피아를 예측하는 것도 맞지 않고 유토피아를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디스토피아를 예측하는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의미이지 종의 종말을 원하는 것은 아니죠.
인간은 인간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투표입니다.
민주주의가 태동하고 수많은 시간동안 우리는
자본가들과 짬짜미 해먹는 수많은 가짜 민주주의자들을 봐왔고
진짜 민주주의자들의 모랄해저드를 목격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대다수의 나라에서 유지되고 있죠.
인류는 어쩌면 이순간을 위해
민주주의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빈부의 격차를 사회의 불합리로 수도 없이 얘기해왔지만
이제는 인간의 노동 자체가 거의 불필요한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사실상 거의 눈앞이죠.
이제 더 이상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착취할 노동력도 자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거대 자본가들과 그 외의 인간들만 남게 되는데
자본가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거둬들이고
이것을 아래서부터 분배하면 됩니다.
만약 자본가들이 이를 거부한다면.
지금처럼 돈을 무한대로 찍어서 아래서 부터 분배하면 됩니다.
그렇게 할 정당과 지도자를 뽑으면 될일입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다면,
자본가들이 사업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다 같이 펑펑 쓰면서 놀지 않을까요?
미래에 사람들이 사업과 일을 그만두고 로봇과 컴퓨터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로봇과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요? 또는 로봇과 컴퓨터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면요?
노는 것만 할 줄 알고 무능력해진 미래의 인류가 그 문제를 고치지 못하면 어쩌죠? 인류가 영원히 지구를 지배하지는 못할텐데요.
자본가든 사업가든 그 사람들이 큰 수익을 내는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자본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수의 사람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혜택을 받죠. 그럼 그 소수의 사람들은 그에 걸맞는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들의 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전통적인 부자들은 벌써부터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자고 했었는데..
그때보다 기울기가 훨씬 심합니다.
심지어 자본가들이 더이상 노동자들에게 가져올 돈조차 없어지는것이죠.
물건을 만들어도 사갈 사람이 없다는것이죠.
그밖에도 기술의 발전으로 생길 혼돈은 많습니다.
금융쪽을 생각해 보시면, 이게 숫자 놀음인데 디지털의 접근성이 가장 직접적이죠.
영화에서도 나오는 얘기지만
고도화된 ai가 트레이딩을 마스터 해버리면 금융 시장은 대혼란에 빠지게 되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자는 것과
돈을 무한대로 찍어서 아래서 부터 분배하자는 것은 매우 다르게 들립니다.
시건을 두고 숙독해야겠습니다.
국가가 어느정도 생산과 소비에 부스트를 달아줘야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은 확실합니다.
요약 잘 봤습니다.
이 부분이 핵심이군요.
https://www.crowdworks.kr/ 태깅알바의 분류수준은 이미 한참 넘었습니다. 1차원적의 개, 고양이 이런구분은
이미 아르바이트에서 조차 없습니다. 현재는 음성과 상황, 인간인지쪽으로 벌써 가 있습니다.
분류수준이 한참 올라 가 있습니다.
할수도 있고, 추후 인도나 아프리카쪽 실업이 어마어마해질것같은데요.
1. AI 윈터를 지나 성장중이라 하지만, 봄이 온적조차 없습니다
지능이 아니라 영상 인식분야만 성장했습니다. 그외에는 합성, 생성필터 분야가 성장중입니다.
2. 노동의 대체
노동이 대체되긴 합니다. 지금도 대체되고 있다고 말들하지만, 대체될수 있는 것들만 대체되는 중입니다.
쉬운건 이미 대체되었고 대체되지만, 어려운 건 아직도 멀었습니다.
섬유공장에서 섬유의 올이 나간것을 눈으로 찾는 직업이 있습니다. 아, 이건 영상처리로 할수 있어 라고
보이지만, 섬유 이동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대체불가능합니다.
쉬운 것만 대체되는 겁니다. 일반인이 얼핏 보기에 쉬워보이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럼 무엇이 어려운 것인가? 자동화공정에 서있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 작업들이 기계가 하기 어려운 것
들입니다. 현재도 사람이 하고 있는 일들이 전부 대체하기 어려운 작업들입니다.
3. 전통자본과 인적자본
개인의 인적자본에는 정신노동도 있습니다. 데이터가 충분히 쌓일수 있다면, 그나마도 계속 변형되기
때문에 예를 들어 데이터의 레이블링 작업과 같은 정신노동이 계속해서 필요할 거라 예상합니다.
4. AI 때문에 일자리를 뺏기는 건 간단한 정신노동이 수반되는 육체노동일 가능성이 큽니다.
간단하지만 몸이 힘든 일은 없어집니다.
청소의 경우, 복잡한 정신노동이 요구되므로 끝까지 남을 겁니다.
운전의 경우, 정신노동이 중급이지만 거대 플랫폼사업과 결합하여 초기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돈이 되는 큰 사업들부터 플랫폼사업화하여 사라지게 될겁니다..
인식을 떠나 판단분야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제 예상입니다..ㅜㅜ
AI 관련 종사자이신가요? 맞으시다면 저도 댓글 달아 주신부분에 대하여 궁금한게 있어 문의드립니다.
1. 제가 요약에선 담지 못하였지마 본문에서 말씀드렸듯이 기계에 인간의 지능 자체를 담으려는 행위는 아직도 크게 발전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인공지능 실용주의, 즉 인간의 지능을 모사하는 것보단 어떤 행위 (예를 들면, 바둑, 운전) 만 잘하게 만드는건 과거와 달리 크게 발전한거 아닌가 생각이듭니다.
그리고 영상 인식분야만 성장을 하였다고 회의적인 의견을 표해주셨는데 기계가 영상을 인식하여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 거 자체가 인공지능의 가장 큰 목표여서 그런건 아닌건가 싶습니다. 그리고 자연어 처리 등은 아직도 성장하지 않았는지도 궁금합니다.
2. AI로 인해서 빼앗기는 게 정신노동이 수반되는 육체노동이라고 언급해주셨는데, 오히려 전 텍스트 기반의 정보를 수집하여 판단하는 업무가 오히려 대체되기 쉽지 않을까 싶은데 혹시 다르게 생각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예를들자면 바둑의 경우에도 육체에 중점이 있는 행위라기보단 정신적 행위에 집중된 거라 생각하는데 이제 기계가 인간보다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는 걸 보고 또 요새 주식 트레이드 시장에서도 인간 트레이더가 컴퓨터에게 자리를 내줬다는 이야기도 들리고해서 여쭤봅니다.
육체노동의 경우 로봇이라는 기술의 성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육체노동이 거의 필요없는 정신노동이 그래서 더욱더 대체되기 쉽지 않나라는 생각이듭니다.
1. 지난 십여년간 영상인식분야는 압도적 성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식된 결과를 판단하여 활용하는 분야는 여전히 애매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얼굴인지, 사람인지, 삼각형인지를 찾아내는 인식은 발전했지만,
창문밖에 사람이 보이면 내얼굴이 비친 것인지 도둑놈인지 상황을 해석하여 판단하는 부분은 여전히 비슷한 수준에 있습니다.
알파고의 엄청난 성과에도 자조적인 것은, 이게 하나의 플랫폼내의 지능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단하게 플랫폼을 게임의 룰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일상생활의 별일아닌 듯한 행위들도 플랫폼화하기 어렵습니다.
아침에는 식사하고 닦고 정리하고 외출하고 등의 간단해보이는 일상이지만 학습의 공간을 한정화하여 표현해내거나
무한히 늘어나는 공간으로도 학습해나가기 어렵습니다. 인식을 포함하여 판단할 대상을 지능화해나아가는 것이
많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자연어의 경우에, 재작년에 구글이 전체데이터를 이용해서 한계를 넘어가서 99%를
찍은 사례가 있습니다. 대단한 성과중 하나이지만, 실용화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2. 바둑의 경우에는 플랫폼이 정해져있어서, 이론적으로 최대 공간이 정해져있습니다. 메타화하여 공간을 줄인
것이 알파고의 최대교훈이었습니다. 바둑은 대단한 정신노동이지만, 일상처럼 열린 공간은 아닙니다.
텍스트 중심의 작업은 말씀하신 대로, 비교적 간단한 정신노동입니다. 컨텍스트가 필요한 부분은 여전히 플랫폼
의 크기를 줄여서 판단을 녹여넣고 있는 중입니다만, 그러다 보니 여전히 결과가 부정적인 사례가 생겨납니다.
테슬라가 레벨 몇의 자율주행을 하던간에, 하늘에서 드론이 떨어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면 피하지 못합니다.
우리 일상은 새로운 물체가 계속 생기고 있어서 입출력이 정해진 플랫폼으로 한정화하기 많이 어렵습니다.
기술적으로 이런 부분은 아직은 메롱 상태라고 개인적 의견 드리겠습니다.
일자리의 감소가 필연이 되는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책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데...
논점을 잘 정리해서 제시하고 주장하는 것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관련 영상이 딱!! 떠서 링크 걸어 봅니다.
알쓸신잡에서 사라지는 직업과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한 영상입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꼼꼼한 정리 감사합니다.
내가 자신의 일상생활 동선을 제공하는 댓가로 돈을 받습니다. 이건 노동일까요? 아닐까요?
문득 드는 생각이
거대 정부가 필요.(피게티)
자본주의가 정점에 다다랐을때 공산주의와 비슷
그렇다면 전체 주의?
파시즘은?
종교
사이비는?
만일 큰정부가 사이비 교주에 의해 장악 된다면?
집단 이성이 오류를 범한다면?
등입니다
월드뱅크에서 좀 더 찾아보니 3명 이상 낳는 나라는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네요.
브라질, 태국도 2명 미만인 건 흥미롭습니다. 푸에르토 리코도 한국이랑 비슷해서 1명인데, 국가 경제가 망가져서 타국으로 이주를 많이 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군요. 세계인구는 최근 UN estimate 에 따르면 97억 정도에서 피크를 보이고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네요. 아, 정말 상상만 해도 눈과 기관지가 따가워지려고 합니다. ㅎㅎ
글을 읽고 생각을 몇자 적어 보자면 러다이트 운동 이후의 세계는 그 노동자들의 생각처럼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위에 알쓸신잡 유시민 작가의 말씀에서 소비와 소득을 배제한 생산의 극대화를 언급하셨지만 지난 20세기를 돌아보면 기계의 발전으로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노동으로 얻은 소득이 다시 소비를 일으켰었습니다.
20세기 초기에는 지금처럼 소비와 생산을 거시적 담론으로 논의하지도 못했는데 경제는 폭발적으로 확장을 했습니다.
20세기 후기 기술의 발전도 일자리의 감소 우려를 낳았지만 실상은 그 기술 발전 자체가 새로운 일자리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던 것 같습니다.
기계로 대변되는 기술의 발전이 어떤 노동의 분야에서는 노동의 종말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새로운 분야의 일자리를 그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만큼의 양으로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사회 전체의 총량 개념으로 생각해 보면 노동의 양이나 강도의 측면에서 인류가 원시적인 수렵채집을 할 때의 노동의 양이나 강도는 농업시대에서의 노동 강도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더욱이 농업시대의 노동은 산업시대의 노동의 양과 강도에는 비교할 수 없게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정보 통신 혁명의 시대인 20세기 노동의 양과 강도는 이전 보다 더 엄청나게 증가하였습니다.
AI시대가 온다 해도 인류사회 전체의 노동의 총량이나 강도는 이전의 발전에서처럼 어쩌면 그보다 더욱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 같습니다.
AI가 어떤 식으로든 이전의 많은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 것은 분명하지만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일자리의 분배나 기본소득의 담론들 보다도 더 포괄적인 범위로 확장시킨 인간이 인간 스스로가 규정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발전을 이루는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