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2016년, 갓 돌 지난 꼬맹이와 처가 식구들과 함께 떠났던 오키나와 이후로 3년 만에 떠난 여행이었거든요. 그동안 공항조차 몇 번 가지 못했는데 여행을 떠나러 공항에 발을 딛는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대만은 두 번째 여행입니다. 20년도 전에 갔던 생애 첫 해외 여행지가 바로 대만이었거든요.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제주도에 가는 줄 알았는데,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대만행이라는 걸 알았다죠. 유황온천, 옥, 원주민 공연 같은 이런저런 기억들이 조금씩 생각나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희미할 뿐입니다. 게다가 최근 접했던 대만 여행기나 정보들과 기억들을 비교했을 때 전혀 공통분모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대만행을 ‘첫 여행’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리부트).
아무튼 우리는 오전 9시 30분 대한민국을 떠나 대만으로 향했습니다. 목적지까지 비행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긴 시간은 아니지만 혹시나 지겹거나 힘들어할 아이를 위해 와이프는 작은 연습장과 색연필, 카봇을 비롯한 각종 인기가요(=만화OST)를 준비했습니다. 와이프 덕분에 아이는 지루하지 않게 비행을 마쳤네요.
공항에 도착하니 후덥지근한 기운이 온몸을 덮었습니다. 온도가 높기도 했지만 습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온몸이 축축해졌습니다. 비행까지는 무탈했는데 입국 수속이 문제였네요. 미로처럼 대기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대만이 인기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더군요.
슬슬 몸이 근질거리던 아들은 줄을 안내하는 안내봉을 볼 때마다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작은 아들에게는 수많은 사람의 다리와 엉덩이만 보였을 테니 얼마나 지루하기 짝이 없었을까, 그 심정이 이해됐습니다. 하지만 몇 번을 그러다가 우리 이동속도를 못 맞추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결국 저와 와이프는 아들을 강제 연행해야 했죠.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무사히 짐을 찾고 공항 입국장을 통과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여느 나라가 그렇듯 타오위안 공항도 도심지에서 떨어져 있는데요. 열차나 버스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해 중심지로 이동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버스보단 열차가 직관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지가 정확히 표시돼 있고 시간도 정확한 편 일 테니.
교통카드 역할을 하는 이지카드를 살까 싶었지만 준비가 부실했던 관계로 그냥 코인을 구매했습니다. 카드를 찍는 곳에 이 코인을 대면 개찰구가 열리는 식이죠. 1회용으로 나갈 때는 개찰구에 있는 반납 구멍에 넣으면 됩니다.
급행열차라 3-4 정거장만 이동하면(3~40분 정도 소요) 타이베이 중앙역까지 갈 수 있습니다. 가는 동안 창문 너머로 대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산이 나왔다가 시골 같은 풍경이 나왔다가 도심지가 나왔다가를 반복합니다. 우리네 공항철도 풍경과 비슷할까 싶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공항철도를 타 본 기억이 없더군요.
숙소는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시먼딩 역입니다. 중앙역답게 공항철도와 일반 지하철과는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더군요. 여러 라인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기도 해서 인포메이션에 몇 번을 물어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가는 동안 마주친 아케이드는 화려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보던 먹거리들이 자주 보입니다. 대만에는 일본 문화가 익숙하다더니 초밥집, 빵집, 도시락집 등 일본풍 아니면 실제 일본 브랜드가 들어와 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지하철 코인 락커도 일본의 그것과 닮아 보이기도 해구요.
약간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시먼딩에 도착해 역을 나왔습니다. ‘타이베이의 명동’이라는 표현이 정확해 보이더군요. 역 주변으로 대만의 청춘남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가이드북을 들거나 선물 꾸러미를 잔뜩 짊어진 관광객들도 가득했습니다. 역 앞 큰 공터에서는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숙소로 향했습니다. 지난 오키나와 때의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에어비앤비를 예약했습니다. 가격이나 시설 등을 고려했을 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거든요. 숙소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길이 좁고 사람이 많아 이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손에 캐리어 다른 한손엔 지루한 아이를 끌고 움직였습니다. 숙소는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사진을 절묘하게(?) 찍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대체적으로 무난했습니다. 복층, 작은 마루가 있어서 아들이 놀기에 딱 좋았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놓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첫 날 일정이 가장 멀었기 때문이죠. 목적지는 고양이 마을 ‘호우통’과 풍등으로 유명한 ‘스펀’. 대만여행의 필수 코스라는 ‘예스진지’는 피하려고 했습니다. 대만 여행기의 8할 이상이 다 저 코스여서 흥미롭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지우펀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라 지옥펀이라니, 굳이 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호우통은 저를 위한 여행지였습니다. 저는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안타까운 애묘인이죠. 여기에 스펀을 추가하기로 했는데요. 오래전 애니메이션 ‘라푼젤’의 풍등 씬에서 마음을 홀딱 빼앗긴 와이프 때문입니다. 스펀에서 풍등을 꼭 날리고 싶다더군요. 다행히 스펀과 호우통은 두 정거장 차이. 기왕 움직인 거 스펀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루이팡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다시 호우통으로 가는 핑시선을 갈아타야 했습니다. 기차로만 이동 시간이 한 시간이 넘는 거리. 게다가 이제 막 대만에 도착한 상태. 모든 게 낯설기 때문에 기차를 타러 가기까지 물어물어 가야 할 게 뻔했습니다.
마음이 급했지만 아이 때문에 식사를 안 할 순 없었습니다. 맛집을 찾아볼 시간이 없어서 길 건너에 있는 KFC로 들어갔습니다. 호기심에 시킨 메뉴는 땅콩 소스가 뿌려진 약간 기괴한 스타일. 적당히 시장한 상태였는데도 목구멍으로 좀체 넘어가지 않더군요. 유사시 대비해야 하는 가족의 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입 안에 꾸역꾸역 쑤셔 넣었습니다.
루이팡행 열차를 타는 매표소까지는 어렵지 않게 찾아갔습니다. 다만 열차 시간이 온통 한자로만 적혀 있어서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죠. 사실 인터넷에서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호우통까지 직행으로 가는 기차가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가능하다면 환승보다는 한 번에 갈 수 있는 그걸 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손에 꼽을 정도.
시간표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던 그때, 아침부터 고된 일정을 소화해냈던 아들이 더위에 지쳐 그만 잠들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차라리 잘 됐다 싶었습니다. 가는 동안 잘 자고 도착해서 깨는 것만큼 베스트가 없죠. 여유로운 마음으로 개찰구 옆에 서 있는 직원에게 가는 법을 물었습니다. 그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루이팡행 열차가 곧 출발한다고 서두르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플랫폼 번호를 거듭 이야기해주니다. 쓰러진 아들을 품에 안고 우리는 뛰었습니다.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첫날부터 분량 조절 실패했네요. ;; 곧 이어집니다!
먼가 아빠와 가장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사용기네요.
오, 꼭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난 주에 6살 아이와 다낭 갔다온 아빠가 -
잘 봤습니다!
찬물 끼얹는 소릴 한마디 얹자면, 우리 아들놈은 10세 이전 갔던 그 수많은 (비싼) 해외 여행지는 전혀!!! 기억도 못하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