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1960년 월간지 새벽에 실린 작품입니다. 이 당시 최인훈 작가의 나이는 스물 다섯이었다고해요. 옛날 작품인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이런 작품을 스물 다섯의 나이에 쓰셨다니..
그러나 엄밀히 말하여 이 초판본이 지금 우리가 읽는 광장의 원형은 아닙니다. 이듬해 200여매의 분량을 추가하여 1961년 정향사에서 나왔던 판본이 지금 광장의 원형에 가깝다고 하네요.
'광장'의 출간 시기는 4.19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 혁명에 큰 감명을 받았고, '광장'의 탄생 역시 영향을 받았다고 최인훈 작가는 밝히기도 했습니다.(광장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고, 추후 몇 번의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실 매우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저명한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인데요.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
'광장'의 매력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이명준의 나그넷길
'광장'을 읽다보면 주인공 이명준의 생각의 길을 자연스레 따라가게됩니다. 이명준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와 그 안에서의 현실적 조건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죠. '생각이라는 이름의 화냥년'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이명준은 생각을 좀처럼 멈출 수가 없습니다. 독자는 그의 생각을 따라가며 그처럼 시대에 분노하고, 고통에 공감하고, 사랑에 슬퍼하게 되죠. 그는 어떤 의미에서 매우 서툰 인간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그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를 멀리할 수가 없습니다. 힘겹게 걸어가는 그의 몸을 부축하여 함께 걸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함께라면 그의 고뇌를 좀 덜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했지요.
이렇듯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진중하게 바라보고 풍문이 아닌 현실을 좆았던 이명준. 그런 그의 생각 하나하나가 손에서 쉬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2. 서사의 균형
'광장'의 서사는 아주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중립국으로 가는 타고르호에서 시작하여 회상으로 시간을 오가는 '광장'은 그 비선형적 시간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라는 파도가 너울거리며 조화롭게 나아갑니다. 남한에서의 경험과 북한에서의 경험이 서로 대척점을 이루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곳의 문제를 아주 효과적으로 보여주죠. 이는 이명준이라는 인물이 이데올로기라는 큰 문제에 부딪히면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꿋꿋히 자신 마음속의 균형을 지켜나갔죠. 어느 쪽으로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중립국을 택한 이명준의 선택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아주 당연한 결과로 느껴지죠.
그래서 '광장'의 이야기 흐름은 자연스러운 균형 속에서 적절한 속도로 독자와 함께 흐를 수 있는 것이겠죠. [남-북-중립국-푸른광장] 아주 깔끔한 전개입니다.
3. 시대를 초월한 발걸음
지금까지 '광장'은 10번 개작되었습니다. 무려 10번이요. 최인훈 작가는 1960년 출간 이후로 계속해서 '광장'을 개작합니다. 마지막 개작이 2010년이었어요. 한 작품이 50년동안 시대에 맞춰 걸어온 것이죠. 처음 서문에서 이러한 사실을 보았을 때, 정말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이 작품은 아직도 살아있구나.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죠. 새로운 독자를 위해 낡은 표현들을 고치고, 필요한 부분을 다시 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요. 작품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다만, 정말 안타깝게도, 작년 7월 최인훈 작가가 타계하시면서 더 이상의 개작은 없겠지요. 최인훈 작가님, 그간 정말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참 아끼는 작품이다보니 말을 골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여전히 불충분하고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네요.
4. 지금의 광장
성공 신화, 대박 신화가 광장에 떠돕니다. 우직하게 자신의 꿈을 펼쳐 보란 듯이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들립니다. 작게는 모두가 풍족하게 사는 듯이 자신의 삶을 갖가지 창구를 통해 내보입니다. 모두가 잘 살고, 모두가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티비, 핸드폰이라는 작은 창이 아니라, 내 주변 삶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마치 풍문만을 듣고 사는 것 같네요.
막상 나가본 현장, 지금의 광장 역시 아직 완벽하진 않습니다. 여전히 이명준이 남에서 느꼈던 배신, 탐욕, 추악함이 여기저기 보이고, 더불어 북에서 느꼈던 흉내와 소문이 즐비하지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가치관을 들이밀며 내 방을 부수고 들어오는 경우도 여전히 허다합니다. 정말 아직도 우리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것일까요?
밀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바람직한 열정이 가득한 광장. 중립국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 은혜와 함께 살 수 있는 곳. 우리는 여전히 광장과 밀실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때로는 한 쪽에 갇혀 숨이 막히기도 하지요. 하지만 인간은 광장과 밀실 어느 한 곳에서만 살 수는 없습니다. 방황하는 모든 21세기 이명준에게 바랍니다. 부디 자유와 열정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광장과 밀실이 살아 있는 곳을 찾기를. 풍문에 살지 말고, 현장으로 나아가기를. 그곳에서 마음껏 사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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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아하는 작품인데 생각보다 많이 읽어본 사람이 없더라고요. 대부분 '중립국'이라는 단어로 기억할뿐 전문을 읽어본 사람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세대의 흐름일까요? 하지만, 정말 이데올로기라는 큰 주제를 벗어나서도 최인훈 작가의 '광장'은 충분히 뛰어난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표현과 플롯의 구조 등, 최인훈 작가는 평생 문학의 실험적 연구를 많이 하셨던 작가이기도 합니다.
작년 최인훈 작가가 돌아가신 일이 제게는 참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라도 다시 기억하고 싶네요.
그동안 미뤄두셨다면, 최인훈의 '광장'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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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단부에 제 북튜브 영상을 첨부해놓겠습니다.
* 위의 글 자체가 영상 대본이랑 대부분 일치합니다.
* 소리로 편하게 듣고 싶은 분들은 영상으로 보아주세요.
참 너무나 많이 알면서, 너무도 모르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워요 ㅠㅠ
한 번 다시 봐야겠네요.
저는 화두라는 작품이 깊게 남더군요.
처음읽을땐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번 읽어보니 문장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