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란글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워낙 목사님도 좋은 분이셨고, 깨어있는 분이셨고 해서
교회 자체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는데요..
20년 넘는 개신교인이었다가....개심하여 신앙을 버린
가장 결정적인 배교의 이유는 '제 삶의 일관성' 이었습니다.
왜 모든 일상생활에서의 사고의 기준은
합리적인가, 과학적인가, 사리에 맞는가, 에 두면서
유독 종교와 신앙에 대해서만은 예외를 두어야 할까?
왜 모든 인간은 남녀간의 교합으로 태어나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예수님(과 나사로?)에 대해서는 예외로 받아들여야 할까?
왜 예수님에 대해서는 엔트로피가 역전되는 걸까?
그리고 내가 예수님께 보통 인간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려는 순간의
그 공포란....당장이라도 지옥으로 떨어져버릴 듯한 수준이었지요.
내가...이 내가 감히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다니!
어려서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저같은 사람에게,
이건 정말 금방 되는 일이 아닙니다. 친우의 말에 따르면, 마귀의 큰 역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저는 제가 과학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난 과학적인 사람이야. 단, 예수님은 제외' 따위 타협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지옥의 심판대에 서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합리적인 이성과 의심할 수 있는 사유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배교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 할 것 같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한 마디가 힘이 되었습니다.
죽어서 신앞에 섰을때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고 야단치면
"신이여, 증거가 불충분했습니다. 증거가요."
저는 워낙 목사님도 좋은 분이셨고, 깨어있는 분이셨고 해서
교회 자체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는데요..
20년 넘는 개신교인이었다가....개심하여 신앙을 버린
가장 결정적인 배교의 이유는 '제 삶의 일관성' 이었습니다.
왜 모든 일상생활에서의 사고의 기준은
합리적인가, 과학적인가, 사리에 맞는가, 에 두면서
유독 종교와 신앙에 대해서만은 예외를 두어야 할까?
왜 모든 인간은 남녀간의 교합으로 태어나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예수님(과 나사로?)에 대해서는 예외로 받아들여야 할까?
왜 예수님에 대해서는 엔트로피가 역전되는 걸까?
그리고 내가 예수님께 보통 인간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려는 순간의
그 공포란....당장이라도 지옥으로 떨어져버릴 듯한 수준이었지요.
내가...이 내가 감히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다니!
어려서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저같은 사람에게,
이건 정말 금방 되는 일이 아닙니다. 친우의 말에 따르면, 마귀의 큰 역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저는 제가 과학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난 과학적인 사람이야. 단, 예수님은 제외' 따위 타협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지옥의 심판대에 서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합리적인 이성과 의심할 수 있는 사유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배교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 할 것 같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한 마디가 힘이 되었습니다.
죽어서 신앞에 섰을때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고 야단치면
"신이여, 증거가 불충분했습니다. 증거가요."
그게 안 되더라고요.
전 뭐랄까 불교라 그런지 그럭저럭 타협이 되더군요.
합리적인 사고에 대한 일관성을 추구하시는 것과 그로 인해서 종교에서 멀어진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동시에 세상사 모든 것에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색한 예시입니다만... 제가 제 아내를 사랑하고 제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을 내린 적이 없어서요...
예외란걸 어찌 결론 짓냐 차이라고 봅니다
인간의 감정도 이젠 분석이 되는 시대가 되었죠
인간만이 지닌 고유하고도 특별한 행동은 아닙니다.
제 아내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딱히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거죠. 이유야 만들면 되지만 자기합리화 이상의 의미를 가질까 하는 거죠... 이렇듯 살아가면서 모든 것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서 종교를 굳이 예외로 두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저는 모르겠다는 거죠.
제 삶의 준거를 합리성에 놓고 매사를 그에 따라 따르겠다고 결심한 것은, 말씀하신대로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죠. 당장 저는 해야할 일을 두고 잠을 자고 싶으니까요. 무척이나 비합리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어차피 논리적으로 풀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으니 종교도 그런 부류로 두자'
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생각과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그 쪽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은 것이지요.
내가 배가 고플 때에는 배가 부를 것을 기대하며 밥을 먹고,
아플 때에는 병이 나을 것을 기대하며 주사를 맞고,
돈이 필요할 때에는 월급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 즉 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를 늘 기대하면서,
왜 신앙은 아무 이유 없이 '그저 그렇다고 하니' 믿어야 할까요.
어짜피 인간이 인지하는 것은 오감에 기초한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영역이고 그 이상의 것은 인간의감각이나 논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거든요. 그래서 신념의 영역이 되는거고...ㅎㅎ
개미는 개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때문에 개미의 논리로 상대성이론등에 따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듯.. 인간의 논리와 인지에는 한계점이 있으니까요 ㅎ
과학의 출발이 바로 그 한계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의 사유방식 자체는 불변합니다.
그 사유방식이 바로 '의심' 이라는 인간 본연의 능력입니다.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틀렸으면 다시 관찰하고.....
이것이 이제껏 인간이 발전해온 방법이니까요.
그럼으로써 꾸준히 사유영역의 한계를 넓혀왔고, 아직도 까마득하지만 천천히 가는 겁니다.
그런데...신앙의 영역에서는 그러한 일련의 방법 자체를 부정해버리고
결론이 먼저 나오니까, 이게 납득이 안 되는 거죠.
과학의 탐구방식 논리체계조차
인간의 대뇌피질속 작용에 의하죠.
즉 이러한 방법론 조차도 인간으로서 가진 물리적한계영역 내의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논증체계로 온 우주 즉 all을 설명 할 수 있으리란건 그래서 어찌보면 무모한 이야기가되지요 ㅎ
양자역학에서는 불확정성원리 즉 입자의 존재는 확률로만 특정 할 수 있다고 결론내리는데
확률에대해 잘 생각해 보면 논리의 영역이란것도
결국은 인간 뇌의 작동범위라는것... 그런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인간의 뇌는 확률앞에 무력합니다.
확률을 왜 인정해야 할까요? ㅎ
왜 동전의 앞이나올지 뒤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을까요?
원래 그런거라고 하지말고 잘 생각해보면
인간 뇌는 그 범위 이상의 인지와 고찰이 안되는구나. 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겁니다..
왜 어느 입자가 어디에 반드시 있을수 없는것일까.... ㅎㅎ 재미있는 고민거리죠..ㅎ
과학의 시작은 자유롭게 의심할 수 있는 데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고, 결국 더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을 때 당분간 현 과학적 역량 내에서는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뿐이죠.
인간의 영역으로 인지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인지영역 내의 작용인 '논리'로서 부정하는건
'논리'자체로 봐도 맞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논점과는 다른 말씀이시네요 ㅎ
각 개인에게 일어나는 행동의 발단이 신인지 마귀인지 인간이 판단하는거 자체가 웃기는 일이죠
그걸 알 수 있다는건 신 아니면 마귀 두 종류 뿐인데?
결국 교회가 원하는건 " 교회가 곧 신임 = 내가 신이다." 이라는 권력욕의 실체화라는게 여기서 드러나죠
신이 없다면 우연에 우연이 겹쳐진 산물이 생명인 건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럴바에는 신이 있다고 믿자 라고 결심했는데...
그럼 신의 기원은? 여기서 막혀 있습니다. ㅋ
조건이 갖춰지면 생겨납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 사실이고
사람이 신의 영역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지혜를 갖추게 되면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라면,
현재로서는 (신의 영역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의심하는 것이 최선이죠. 아직은 증거가 없으니까요.
다만, 현재까지의 부족한 증거들을 관찰하여 가설은 세울 수 있겠습니다.
단 그 가설은 반증들에 의해 언제든 부정될 수 있어야 하고요.
모든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행동의 결정을 자주 내립니다.
그에 반해 기독교는 어떤 법칙 예를 들면 율법이라던가 십계명 등의 어떤 법칙을 지키기를 강요하죠.
또한 거룩하라던가.
사람은 이성적인 것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이성적인 동물은 아니거든요.
그냥 뻘글에 뻘 생각중입니다.
저는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멀어도 한참 멀었다고 봅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사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개미와 인간의 차이만 생각해도, 개미가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 스스로는 살다보면 저의 유한함과 제한적인 지식의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식적인 탐구를 게을리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면에서는 저는 글쓰신이와 같은 결론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신동호님께서 '범신론자 겸 불가지론자'라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에 대해 인정할 수 있지만
유독 예수님, 알라 등의 유일신을 믿고 다른 신들에 대한 구원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인간 지식의 한계를 인정해라. 신은 인지의 차원 너머에 있다'
라는 말을 하는 분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체 FSM이 옳고 야훼가 그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차피 신은 알 수 없는 존재인데요.
불완전한 정황 (증거) 만을 제시한채...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
자체가...말이 안되죠...
그냥 남자로서 볼 때는 그런걸로 지옥을 보내는건 정말..쫌생이나 하는 짓이죠...
뭐 모든 개신교가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본 대다수들이 이런식이라...정말...맘에 안듭니다.
뭐 저는 예수가 이러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만...
성경에서 봐온 예수는 이런 쫌생이가 아니기에...
다른 생각과 논리들을 한번만 더 내려놓으시고 이전과 같이 한번만 더 애써보심은 어떠실까요?
그냥 글을 보면서 맘이 좀 안좋아서 써봅니다..
신에 대한 진정한 고찰을 하실.의향이 있으면 성경이 아니라 동서양의 고전, 주역등을 진지하게 살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에서 신이라고 하는 존재조차 벗어날순 없습니다.
그러한 자연의 법칙에 인격화를 한것이 신화적 존재로써의 신이라고 하면 문명에서의 신은 우리 인류와 더불어 역사를 살아간 존재들에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존재들입니다.
"신" 이라고 칭할때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신을 의미하는것은 너무 작게보는 관점이라고 봅니다.
당연히 신의 존재는 인간의 사유로 어느정도 파악을 한다고 봅니다.
인간의 사유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기독교적인 신에 대한 관점은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