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가 체결되어 있을 때, 그것은 완벽한 곡선을 그려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두 개의 곡선은 그 아래에서 받쳐주는 또 다른 곡선과 만나있었다. 곡선이 직선보다 아름다워야 할 마땅한 근거는 없지만 수 세기 동안 우리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입 밖에 더 내뱉곤 해왔다.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조용히 놓여있었다.
내어줄 수 없다는 듯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그것은 대상을 한껏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드러내지 않을 때 비로소 순수한 색을 말하게 된다. 불순물이 없이 오직 한 가지 색으로 가득 차있는 그것은 한없이 자신을 더럽혀주라고 외치고 있었다.
전 세계의 지성인들과 권력자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려 노력할 때, 공장에서 찍어낸 값싼 와이어와 패드는 때론 전쟁을 일으켰고, 때론 인류를 보존시켰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밖에서 땀을 흘리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문이 닫히자마자 하루 종일 자신을 구속했던 브라를 벗어젖혔다. 고리가 풀리는 찰나 팽팽하게 당겨있던 브라가 통쾌하다는 듯이 움직이며 풀어졌다. 현관문 옆 벽면에 붙어있는 전신 거울에서는 좌우로 활짝 벌어진 가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브라 속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색상도, 모양도, 물성도, 흔들림도 그리고 어쩐지 기분이라든지 가치관마저 달라 보였다. 두 개의 유두는 대화가 안 통한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 채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신발을 벗으려 몸을 숙이고 펴는 과정에서 두 개의 덩어리가 이리저리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었다. 모양뿐만 아니라 움직일 때의 이동 경로 또한 곡선을 그렸지만 브라 속에 있을 때와는 어쩐지 다른 분위기를 띄웠다. 그들은 때론 철썩철썩 같은 소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티셔츠를 벗으며 가슴 밑에 잔뜩 배어있던 땀을 닦아 냈다.
중력의 방향이 몸통을 향했을 때 그들은 흐느적 거리기 시작하더니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멀리했다. 여전히 곡선의 모양을 띄었지만 역사는 그런 곡선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타인에 의해 건드려지기 전까진 그랬다. 그때까지의 아름다움은 시각 정보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서로 다른 피가 흐르는 살결과 살결이 맞닿을 때는 촉감에 따라서도 그 판단이 바뀔 수 있다. 와이어 뽕브라에 의해 한껏 업된 가슴은 가짜이고 처진 가슴이 양쪽을 바라보며 쩍 벌려있는 가슴은 진짜일까. 실리콘을 넣은 가슴은 가짜이고 넣지 않은 가슴은 진짜일까. 손이 닿기 전의 가슴은 가짜이고 닿은 후의 가슴은 진짜일까. 혀로 건드려지기 전의 분칠한 핑크빛 유두는 가짜이고 탁한 흑갈색 유두가 혀에 닿을 땐 진짜일까.
한 가지 문제 의식을 다양한 매체로 풀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글과 사진, 영상과 회화 그리고 설치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