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콕, 바카디 그리고 잭콕
종로의 LP바 구석 자리에 두 사람이 앉아있다.
물결 모양의 스피커는 파장을 통해 두 사람의 심장을 진동시킨다.
음량이 컸지만 고가의 스피커이기 때문인지 귀를 거슬리게 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대화를 돋울 뿐이다.
그들은 잠시 이쪽을 보는 듯했으나 다시 잭콕을 입에 가져가며 대화를 이어간다.
A: "아니, 내 말 들어봐.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면 안된다니까?
하고 싶다 거나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건 진정 너가 원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커진 목소리는 화내는 사람으로 보이기 쉬웠다.
그는 어떻게 말을 구성해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심하며 차분하려 애썼으나, 몇 년 만에 진짜를 밖으로 꺼내 놓는다는 사실은 이미 그의 몸을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B: "무슨 소리야.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는데 그게 왜 안된다는거지?"
A: "그러니까 끝까지 들어봐. 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거랑 진짜 하고 싶어하는 거랑 다르단거야.
왜냐면 너가 의식 상태에서 생각하는 것엔 노이즈가 많이 껴있거든. 노이즈.. 말야"
그는 말을 마치며 원목 테이블에 보이는 나무의 결에서 유독 시커먼 부분을 검지 손가락으로 공연히 문질러 본다.
B: "뭔 노이즈를 말하는 건데?"
그는 상대방의 눈을 쉬지 않고 쳐다본다.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아서 답답하니 빨리 말하라는 표정을 한 채.
A: "음.. 인간의 뇌는 말야.. 패턴을 인지하고 그 결과에 의미를 갖다 붙이지.. 그러니까 그게..."
말하면서 무심코 아까 봤던 테이블의 검은 옹이를 다시 보니, 아까와 달리 오메가 문양이 보인다.
B: "그래서 어쨌단거지?? 답답하게 끌지 말고 빨리 좀 말해봐!"
그 말을 하던 그는, 의도치않게 손으로 오메가 문양을 덮어버린다.
A: "이거야. 이거라고!! 지금이 너가 원하는 진짜야!"
B: "응? 뭐가?!"
A: "너가 방금 생각 없이 손으로 여길 덮었지?! 바로 그런 행동이 너가 진짜 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진짜라는거야"
그는 유레카 대신 새로운 용어로 외치고 싶은 욕구가 들었으나, 막상 적당한 용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B: "내가 이 옹이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란 말야?! 난 이거 보면서 싫지도 좋지도 않고 아무 생각이 없는데?"
그는 말을 많이 해서 목이 건조한가 싶은 생각에 잭콕을 한 모금 들이킨다. 탄산은 목을 간지럽히고, 달콤한 맛이 혀를 적신다.
불현듯 그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든다. 테이블의 그런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B: "난 알아. 난 진짜로 저딴 거 신경도 안 쓴다는 걸. 근데 니 빨리 안마시면 잔에 있는 얼음 녹아서 맛 없어져. 빨리 마셔라"
평소 먹는 것에 철저한 그는 자기 잔도 아닌데, 어쩐지 불편해진다.
A: "아 맞지. 마셔야지"
그는 녹은 부분만큼 맛이 떨어졌으니 그 만큼을 상쇄코자 벌컥 들이킨다. 정확하진 않을지 몰라도 이제 남은 술엔 물 맛이 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입술에 얼음이 닿은 뒤 다시 잔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느낀다. 둔탁하면서 청량한 울림이 느껴진다.
bill evans의 곡이 웅장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바에 들어온 뒤 처음 나온 에반스의 음악이었던가 싶어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음량인데 소리가 뭉개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진 느낌마저 든다.
빨라지던 드럼 소리와 함께 어느새 남아있던 잭콕은 소리 없이 비워진다.
어느새 조명은 더 어두워졌고 색감은 조금 더 진해진 느낌을 받는다.
이전보다 더 조용한데 약간은 더 무거워진 베이스의 질감이 그들의 피부로 전해진다.
그들은 몇 번의 대화 끝에 bacardi 151 두 잔을 시킨다.
A: "야! 아까 내 말 이해했냐?"
그는 아까 상대방을 설득시켰었는지 헷갈렸다.
B: "뭔 소리야. 아까 아니라고 했잖아"
A: "아 그랬나"
그는 비록 밀폐된 공간에 사람들이 많았으나 음식물과 술 냄새가 버무려진 그 공간에서 방귀를 뀌는 것 쯤이야
들킬 일 없으리라 안심하며 방귀를 뀐다.
A: "아, 그러면 이번엔 이렇게 말해볼게. 그러니까.. 방구.. 아니 똥!
니가 똥이 마렵다고 가정해보자. 똥 안누고 베겨? 언제까지고 참을 수 있어?
바로 그런 게 니가 진짜 원한다는 거야"
소리없이 성공적으로 방귀를 배출한 그는 어딘가 홀가분한 마음에 말도 더 술술 나오는 듯하다고 느낀다.
B: "그건 생리현상이잖아. 어디서 자꾸 개소리를.."
그는 욕을 하려던 건 아니지만 완벽한 카운터를 먹인 것 같아 약간 흥분한 듯했다.
A: "음... 아닌데? 생리현상으로 너가 분류한 것 뿐이지.
똥을 무한정 참고 버틸 수 없듯이 너가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을 해야한다는 말이지"
그는 카운터를 피한 뒤 재차 카운터를 날렸다 생각하며 이쯤에서 게임은 끝났음을 알리려는 듯이,
술잔에 손을 가져가며 같이 마시자는 눈짓을 준다.
그들은 긴장된 눈빛으로 잔을 쳐다본다.
소주잔보다 작아보이는 잔에 담겨있는 75.5도의 바카디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아드레날린을 더욱 분비시켰다.
각자 잔을 들어 가볍게 제스처만 취한 뒤 잔끼리 부딪히진 않은 채,
그들은 그것을 빠르게 목구멍으로 넘긴다.
순간, 짧지만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십자가.
그들의 머릿 속에 불현듯 십자가가 떠오른다.
목구멍을 타고 들어간 바카디는 위장까지 흘러가는 동안 십자가의 흔적으로 잠시 남는다.
그들 중 한명 혹은 두명은 헛기침을 한다.
B: "후..."
A: "흐아..."
바에 있는 동안 내내 얼굴 표정에 어느정도 신경을 써오던 그들이었으나
잠시나마 못생긴 표정이 새어 나온다.
그들은
대화를 잊은듯
고개를 돌리며 바를 둘러본다.
조명이 어두웠으나 마침 두 명의 여성이 바에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한다.
젖가슴의 부피와 무게감을 빠르게 훑어본 뒤,
테이블로 향하는 그녀들의 골반과 엉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들은 콧구멍을 벌린 채 서로 봤냐고 재차 묻는다.
A: "아니, 제대로 봤냐고! 줄무늬 티 입은 여자는 거의 D컵 되어 보이는데? 저 왜소한 체격에 말이 되나?"
B: "개 맛있겠다. 피부도 촉촉해보이는데. 거기도 이쁘게 생겼을 것 같아 시발!"
어느새 음악은 뭉개진 베이스 음만 둥둥거리며 들릴 뿐이었다.
그들은 잠시 이쪽을 보는 듯했으나 확실치 않다.
그들의 시선은 어느 것도 향하지 않아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B: "존나 미친놈처럼 섹스하고 싶은데, 지금 이것도 가짜라고 생각하냐?!"
A: "나도 시발 개같이 핥아주고 싶네. 어느 곳도 예외 없이!"
B: "어떻게 하냐고, 미치겠는데!"
A: "안하는 동안.. 의 공허는
안하는 동안 얻는 것으로 채워질 수 없어.."
A: "미래는 어차피 모르는 거고.."
그는 바카디를 마실 때 참았던 숨을 그제서야 크게 들이마시며 일어선다.
그는 똥마려운 듯한 자세로 여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적어도 상대방에겐 그렇게 보였다.
착각이었나.
그는 여자들을 지나쳐 화장실로 간다.
설마 정말 똥이 마려운 것이었나.
'참을 수 없는 똥이 진짜다'라는 병신같은 말이 어쩐지 머릿 속에 남는다.
역시 바카디 때문인지 매우 빠르게 취기가 오른다.
'진짜.. 는 뭐지'란 생각을 잠시 하던 그는 여자를 흘깃 쳐다본다.
진짜가 뭐가 되었든 그는 오늘 당장 섹스가 하고 싶다.
운동하듯 폭발적으로 할 자신이 있다.
화장실에서 나온 상대방이 똥을 쌌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는 화장실에서 준비를 한 것이다.
그녀들에게 다가갈 준비를.
그는 여자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누었고 운 좋게 합석하게 된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만에 성공한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술보다 성적 욕망에 더 취한 그들은 여성들 것까지 계산하며 술을 주문했으나
어떤 술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처음 몇 마디는 나쁘지 않았다.
서로 웃기도 했고,
생각보다 분위기가 쉽게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다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음악은 계속 바뀌고 있었고,
잔 속의 얼음은 천천히 녹고 있었다.
한 명은 빨대를 만지작거렸고,
한 명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잠시 뒤,
비흡연자라던 여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린다 싶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들은,
papa roach의 Last Resort가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려댔으나
어쩐지 그녀들의 깔깔거림만이 귀에 들어올 뿐이었다.
순간 당이 떨어진 느낌이 든 두 사람은,
이미 먹었던 잭콕을 다시 시키기로 한다.
그들 중 한 명은 아까 먹을 때 얼음과 잔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그 하모니를 느끼고 싶다고 생각한다.
A: "거봐 하고 싶은 걸 하면 안된다니까.. 내가 말했지?!"
B: "그걸 아는 사람이 왜 아까는 간건데"
A: "이번엔 도저히 못참는 똥같은 진짜라 생각했어. 이번엔 진짜구나 싶었지"
B: "결국 생각하는 이상 모든 게 가짜가 되는거네.. 맞자나?!"
그들은 마침 테이블에 올려진 잭콕을 보고 서로 눈짓을 한다.
이번엔 서로의 잔을 부딪혔고, 그들은 아까와는 또 다른 맛의 잭콕을 마신다.
A: "이거 아까 그 잭콕인데, 바디감이 왜케 깊어졌냐?"
B: "바디감이 정확히 뭐지?"
A: "나도 몰러"
그는 자신이 바디감이란 단어를 썼는지조차 기억못하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B: "더 맛있는 거 같긴 해"
A: "좆같다.."
B: "그러게.."
주량이 쎄지 않던 그들은
어느새
소파가 되기도 하고,
파동이 되기도 하며,
입자가 되기도 한다.
미시적 입자가 거시적 존재로 된 순간,
그는 잠시 단어를 조합 후 배열하더니 입을 연다.
A: "사람이.. 생각을 안할 수가 없지. 생각을 안하면 사람이게?!
생각은 그저 수단인거고, 인간은 태생이 모순적이란 거야.."
B: "그 말은 니도 모순이고, 니 말도 모순이란거네"
그가 말을 마칠 때 잔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얼음이 아래로 미끄러진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듣기 좋은 소리라고 느끼며,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A: "당연하지! 나도 모순 덩어리! 너도 모순 덩어리지!"
B: "근데 그걸 아는 사람이 왜 계속 지금까지 얘기했대?!"
질문을 받은 그는 대꾸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테이블을 쳐다본다.
문득 아까 봤던 오메가 모양은 온데간데 없이 무한대 모양만이 보였다.
'왜지?'
'분명 오메가..였는데'
그는 뒤돌아 여자가 앉아있던 테이블을 본다.
'없다.'
'벌써?'
'다른 남자들이랑 같이 나갔나?'
'우리 때문에 나갔나?'
파도치는 모양의 흔들려 쓰러질 것만 같은 멋드러진 스피커에선
Thelonious Monk의 I'm Confessin' (That I Love You)가 재생되고 있었다.
엇박의 피아노 선율 속에서 그는 자신의 어딘가가 어긋난 느낌을 받는다.
A: "니, 지금 나오는 음악 누가 만든건지 아냐?"
B: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모르겠는데?"
A: "몽크인데 진짜 들을 때마다 개쩌네. 그 앨범 커버 사진이랑 여기 인테리어랑도 잘 어울리는데..
몽크가 바텐더로 술 건네주는 상상하니까 개 느낌있네"
B: "근데 여기 사운드 진짜 좆된다"
A: "그러니까 뒤에 몽크가 피아노 치는데 건반이 탁 눌리면서 전해지는 그 진동감이 여기서 느껴지는 거 같어"
B: "계속 똑같은 리듬으로 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엇박이 섞여있는데 그게 또 거슬리지가 않게 하는게 존나 대단한 거 같아"
A: "역시 넌 뭘 아네.. 엇박도, 엇나간 음도...
버려질 노이즈가.. 음.. 오히려 완성.. 꺼-억!"
말을 하던 그는 잭콕의 탄산 때문에 트림을 시원하게 한다.
어차피 소리에 파뭍힐 것이다.
그는 트림 후 인테리어를 살피다 문득 한 포스터를 본다.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사랑하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공부하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일을하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똥을싸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웃음짓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눈물나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희생하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믿음갖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의존하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탐닉하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섹스하고
우리는 복제되기 위해 평가한다
B: "야 니 잔에 얼음 녹는다. 빨랑 좀 처 마셔라!"
A: "야! 진짜 못참겠다. 이번엔 진짜 똥 못참겠어.
이게 진짜지! 진짜 싸러간다"
재즈 노래는 여전히 구름같이 생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잔을 홀짝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명은 깊어졌고, 공기는 조금 더 탁해졌다.
그의 시선은 이곳을 향한 채 걸어갔지만,
정확히 어딜 봤는지는 알 수 없다.
시커먼 옹이 위에 올려 둔 그의 잔은,
어느새 옅어져있었다.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영상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현실감과 대비적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비속어와 여성비하를 그냥 갈겨버리는…그게 마치 평범한 우리의 대화인양…
나는 소설을 x도 모른다로 시작하는 꼬방동네 사람들 시대의 글쓰기로 보입니다.
그러다 점점 쌍팔년대 일본의 쌈마이 철학적 허무주의로 빠지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