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마지막 수도는 한반도 평양이 아니고 하북성 북경(베이징)입니다.
조선성= 고구려 평양 = 평주 노룡현
"조선, 기자(箕子)를 뒤에 요(遼)의 낙랑에 봉하였다. 지금 평주(平州)의 노룡(盧龍)에 조선성(朝鮮城)이 있다. 그런 연유로 무덕(武徳, 618~626)년간에 요(遼)를 기주(箕州)로 삼았다. 8년 고구려 역시 그 지역이다." <노사(路史)> 권 27, 宋 나필(羅泌) 撰
고려 시대에는 "서경 대흥부" 였고 명 & 청 시대에는 북경 또는 북평 그리고 제왕이 탄생한 4대 천부 중 가장 으뜸가는 "순천부"로 불렸습니다. 수도를 남경에서 북평(북경)으로 천도했던 명나라 3대 황제 주체의 연호는 "영락" 이며 그것은 일찍이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연호와 같은 "영락"이고 살아생전 "영락대왕"으로 불렸던 광개토대왕의 길을 따라 스스로를 "영락제"로 불리기 원했습니다.
산맥을 끼고 배산임수를 이루며 남쪽으로 황하가 실어나르는 옥토가 펼쳐진 광대한 대평원을 태조 왕건은 우리 민족 최고의 길지로서 지맥의 근본으로 여기어 개경 이상으로 신성시했고 명나라 영락제는 옛부터 북방민족들의 도시이자 동아시아의 천하를 호령했던 그 땅으로 수도를 천도하여 아버지 주원장이 남경에서 건국한 명나라를 다시 설계했습니다.
북경(북평)의 남쪽 구역에는 오늘날에도 고려 서경의 지명이었던 "대흥" 구 (현지 발음 : 다싱 구)가 있고 북쪽에 있는 천수산의 "천수"는 태조 왕건의 연호 "천수"이며 거기에 명13릉으로 알려진 각각의 무덤 이름들은 놀랍게도 고려사에 언급된 고려황제들의 무덤 이름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자금성의 태화문, 중화전, 보화전, 수강궁, 황극문, 어화원, 만춘정은 고려사에서 황성과 관련하여 언급되는 명칭들과 일치합니다. 현대 중국의 단일성씨로 1위인 "왕"씨는 그 수가 1억 2000만명이 넘고 하북성에 왕씨 집성촌들과 함께 특히 많은 비율로 분포하며 왕건이 들어간 지명 (왕건하),시설 (왕건교)들이 남아있습니다.
몽골 (원나라)의 패망 이후 강남 지역의 남경에서 건국한 명나라와 한반도 조선으로 동북아 지정학적 관계가 재편되면서 하북 지역을 내어준 조선의 건국 세력들은 대명천지 아래 사대주의에 입각하여 수차례 분서갱유를 저질렀고
세종대왕께서 예조판서에게 전지하기를,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묘제(廟制)를 다시 의논하고, 신라·고구려·백제의 시조(始祖)에게 묘를 세워 치제(致祭)하는 일을 모두 고제(古制)에 상고하여 상세하게 정하여 아뢰라.”
이에 예조판서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삼국(三國)의 시조(始祖)의 묘(廟)를 세우는데 마땅히 그 도읍한 데에 세울 것이니, 신라는 경주(慶州)이겠고, 백제는 전주(全州)이겠으나, 고구려는 그 도읍한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9년 3월 13일)
이렇듯 당시 한반도 내에 고구려의 평양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할 당시 군대를 집결시켜 고구려와 전투에 임하기 직전 최종 전열 가다듬었던 "탁군"의 위치
(노룡현은 명나라 시대를 거치며 북경의 남쪽에서 당산의 동쪽으로 이동되었습니다.)

명나라 시대 부터 "요하"라는 지명이 생기고난 후 이동되어진 요동의 위치

고구려성의 특징인 치와 옹성을 갖춘 북경 성벽의 사진자료




고려사에는 거란이 고려와 우호를 목적으로 낙타를 건냈다는 기록 이외에도 낙타를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운영지침도 나옵니다.



https://m.youtube.com/watch?v=E4lXztywQvc
그 대학자들은 백제 수도도 틀렸는데요
몽촌토성 존재도 몰랐을테니 위례성 위치는 상상도 못했을거고
충청도에 있는지도 몰랐던거 보면 일제가 도굴하기 전이었는데도 왕릉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나보네요
조선 후기인데도 역사수준이 저 정도에요.
저 사람은 환빠가 아니라 대륙삼국설파 같습니다
그에 맞먹는 핀란드랑 같이 Finno-Korean Hyperwar라는(...) 밈 같은 문서도 있더라고요
영어: https://en.uncyclopedia.co/wiki/Finno-Korean_hyperwar
나무위키: https://namu.wiki/w/%ED%99%98%ED%95%80%EB%8C%80%EC%A0%84
저는 개인적으로 삼국사기의 천체 기록(개기일식)이 한반도에서는 관측될 수 없는 기록이라는 점이 가장 충격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점에 대해서 만큼은 이견을 주장하기 어렵지 않나 싶네요.
그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현재의 중국을 뜻하는 것이 아님은 모두 이해합니다.
따라서 엉뚱한 트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이 신라에서는 관측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관측되지 않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비슷한 언급이 처음 나온 논문에서도는 그런 주장이 없는데 다른 누군가가 확대 해석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 영상에서 30분 부근부터 보시면 됩니다. 다른 더 자세한 영상들도 찾을 수 있는데, 이영상이 일단 더 신뢰도가 높아 보여 공유합니다.
조선시대 이전 역사 기록은 조선 초기 왕들의 명령과 일제시대 일제에 의해 대단히 많이 소실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기존 사학계의 권위만으로 우리 역사를 규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천문 기록과, 아직도 특정하지 못하는 조선 이전 시대 기록의 지명과 지리, 요하문명과 우리 민족 역사의 상관관계 등. 기존 사학계들은 전혀 답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사학계에 대한 대다수의 굳건한 믿음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게 학설로 인정받으려면 다른 지역 또는 국가의 사서와 교차 검증되어 모순이 없는가를 봐야 하는데, 그걸 빼놓으면 그게 환단고기 같은 허황된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음모론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이 모여서
선관위 간첩 99명 얘기가 나오는 거겠죠..
왕조가 바뀌었다고 지명관련 서적을 그렇게 싸그리 없앨 이유가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옛날 집이유? 아. 그 지역에 댐 생겨 물에 잠겼다고는 하는디 대충 이 정도 같아유.
라고 말하던 옛날 하숙집 할매 생각나네요. 뭐가 다르죠?
다시 돌아온 건가요? 멀리도 갔었네…
고려 수도 지도와 북경 지도가 일치합니다.
남서울대 강준식 교수님 영상에 사료들을 통해 설명합니다. 32분 부터 북한 평양이 고구려 “한성”이었음을 증명하는 비문 유적이 발견됬고 우리가 그동안 알던 북한의 평양은 수나라, 당나라와 격전을 벌였고 고려시대 서경으로 알려진 평양이 아니라는 것을 유물로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평양이라는 지명이 만주 요동 요서 많은 곳에 있었다하죠
2. 환단고기의 위서 논쟁을 떠나 특정 종교와 결부되어 있어 환단고기 뿐 아니라 규원사화, 화랑세기까지 아직까지도 위서 논쟁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3. 한반도내에서 신라와 백제 왕궁터 조차 밝혀지지 않았고 신라의 중심 왕궁은 금성임에도 월성 터라고 가보면 조선시대 양반집보다 작죠. 천년 역사를 가진 신라의 왕궁터가 맞는지.....
4. 왕릉이라고 하는 건 사마라는 표현으로 무녕왕릉 뿐인데, 왕비 금석 비문 뒷편에 매입이라는 표현에 대해 해명하지 못하고 있죠. 그외 모든 삼국시대 왕릉은 모두 비정인데, 유일한 삼국시대 정사인 삼국사기와 방위가 모두 틀려요.
5. 무녕왕릉이라는 것도 고작 50년도 지속하지 못한 중국의 양나라 무덤 양식을 받았다고 하지만 산동성 백제 유민의 무덤은 2000기 이상 발굴되고 있는데, 왜 한반도에는 600년이상 지속된 백제는 왕족은 물론 대성팔족 무덤도 없고 대성팔족 기록이라는 하는 건 사택적덕 비문 하나죠.
6. 광개토대왕비와 경주 인근에서 발견된 비문에 의한 매금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현 사학계가 주장하는 삼국 비정에 모순이 생기죠.
7. 호우총에서 발견된 은합에 대한 호태왕 표기 때문에 기존 삼국시대 비정이 모두 모순인데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죠. (이걸 보면 일본이 다이센 고분에서 유출된 유물때문에 한반도 기원론 주장에 식겁해 발굴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고분 발굴을 미루고 있다고 상당히 의심됩니다.)
8. 이외에도 무수히 많지만 대륙 백제, 대륙 신라 여부가 맞느냐 논쟁을 앞서서 신채호 선생의 열국 시대에 대한 재정립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고, 삼한조선과 함께 대부여에 대한 기점을 명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한과 마한에 대해 재규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9. 8번의 조선열국에 대해 명확해 질때 수당과 고구려의 전쟁, 거란과 발해 및 고려, 금청에 대한 논쟁도 자연스럽게 논쟁이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강단사학과 이에 따른 국사 교육과정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하라고 조직한 동북아역사재단이 오히려 동북공정 근거를 제공하고 정부는 침묵하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때 동서화합으로 재추진된 가야사 연구에서 내린 결론은 일본서기에 기초한 임나일본부설을 한반도 남부 지역에 비정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고 지자체는 지역 행사에 활용하고 있죠.
1. 정황상 대륙 백제, 대륙 신라를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조선시대 수거령과 일제때 고서적 채집한 것으로 인해 문헌이 너무 빈약하고 금석문과 유물의 빈약함이 오히려 대륙설의 근거라고 하지만 현재로써는 빈약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어 대륙설에 대한 주장은 조심스럽습니다.
현재로서는 3가지 정도 방법이 있다 생각은 합니다만....
1) 중국내 유물, 유적에 대한 한중 공동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데, 외교적 문제와 상대국이 중공이니 너무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고요.
2) 일본 왕실청 보관 서고의 한국 고서적 반환까지는 아니어도 교류를 통한 부분 공개가 선행되어야 할텐데 이 또한 어려울 것입니다. 당장 다이센 고분도 발굴 중지해놓은 상황에서 말이죠.
3) 고인류 DNA 분석을 통한 유전자적 시계 이동 분석 뿐인데...연구비 삭감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그나마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게 이 쪽이 아닐지 생각됩니다만 한국 지질 특성성 고인류 dna 상존이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2. 대륙설 이전에 신채호 조선 열국에 대한 규정이 한국 사학계에서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3. 홍산문명에 대한 열린 시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조차도 한국 강단사학은 확고하게 폐쇄적이고 관심있는 곳이 특정 종교와 관련한 민족사하계라서 이 유적에 대한 국민적 피로도 역시 상당해 논리적 접근조차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러는 사이 중공에 의한 역사 왜곡은 더 가속화될 뿐이죠.
일반인분들은 고구려를 중심으로 만주 역사만 동북공정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데, 2010년 이후 백제까지 한나라 지배를 받았다는 게 동북공정 입장이고, 그 근거가 한국 사학계가 한국 삼국사기의 백제 기원설을 부정하는 건지 입장을 모호하게 하면서 중국 사서에 기인한 구태 기원설을 받아들이면서 대방국을 황해도로 비정하고 이를 근거로 중공은 백제 즉 한반도 남서부까지 대방의 권할권이라 주장하는 촌극에 이르게 되었는데, 한국의 일반인들은 환단고기에 대한 거부감으로 동북공정을 단순한 개소리로 치부하고 있죠.
지난 시진핑과 트럼프 회담에서 한국의 중국 속국론을 언급한 것에 아무런 외교적 언급도 못했죠.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2/01/06/IYS5KIZGIJHJTG3UESD6M2OCPQ/
원죄는 조선 개국시 기자조선 왜곡론이었고, 이를 한씨조선으로 또 다른 왜곡과 하남위례성, 풍남토성의 왜곡을 만든 이병도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굳어지고, 이 연장선상에서 임나일본부설을 받아들이기 위해 절충안으로 원삼국을 만들어낸 강단사학에 대해 이 또한 무비판적인 것이 문제 중에 문제죠.
항상 칭신하고요.
아니지 북위, 북제, 남조의 송제양진에도 다 칭신했죠
왜 그런거죠?
자주, 간단히 글 올려주심 더 좋겠습니다.
그럼 우린 왜 변방인 대한민국 반도에 있는거죠?
"고리타분하다" "고릿적" (고리 = 고려) 이란 우리말이 낡았거나 옛날 옛적을 의미하는 말로 통용되는 것을 보면
지난 600년 동안 망각한 것도 모자라 우리가 배우고 있는 한국사가 조선총독부 산하인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학자들을 필두로 써준 내용 그대로 배워온 결과입니다.
그것에 대해 재야사학계 뿐 아니라 강단사학(주류사학) 또한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별을보며산다님의 주장처럼 조선 수거령과 일제 고문헌 침탈로 인해 전해지는 문헌이 극히 빈약하고 심지어 유일한 삼국시대 정사인 삼국사기 역시 조선초 축약 재판되었죠.
그러나 상식적으로 고구려 700년, 백제 600년, 신라 900년의 역사인데 국경선의 변화가 아무 변화없이 한반도에서 내에서 변했다고 한다면 말 그대로 한반도내 변화는 그렇다고 해도 외부 북방 민족과 경계를 한 고구려의 국경선은 700년가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건 삼국사기 문헌상 동천왕의 기록을 봐도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일한 정사인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을 왜 초증고 과정에서 가르치지 않을까요? 이것만 가르쳐도 사실 삼국 대륙설에 대해 최치원 열전 뿐 아니라 일본 엔닌 스닙의 입당구법순례행기로 교차 검증되고 있지만 강단 사학은 언급조차 없죠.
그리고 댓글의 한반도에 그렇다면 무엇이 존재했는가?
이게 바로 문헌이 없어 매우 힘든 추정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재야사학 뿐 아니라 강단사학에서 답을 못하니 고조선 멸망후 고조선 유민에 의해 삼한이 존재했고 이를 삼국사기 신라 건국신화 6부와 연결하고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소서노에 의한 부여 기원설에 따른 온조설과 비류설이고, 중국사서에 나온 대방국 문제 때문에 구태설에 대해 대방국을 황해도에 비정했죠. 즉 고조선 멸망후 경기도 이북은 한사군과 대방국(한국 사학계는 연맹국가의 삼국으로 만들기 위해 대방군으로 주장하기도 함)이고 한반도 이남은 삼한이라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번한(번조선)이 문제되어 이를 명확히 비정하지 못한채 마한과 진한만...과거엔 삼한을 각각 백제, 신라, 가야로 비정했었고요.
재야사학계는 제각각인데, 일단 최근엔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다는 것에는 대체로 통일된 주장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1. 낙랑국의 하나와 한반도 남부는 소도의 연맹 도시국가라는 주장
2. 낙랑국이 한반도 전체를 다스렸다는 주장
3. 낙랑국을 포함해 연맹 도시국가로 있었다는 주장(즉 고구려 유민들이 통일된 세력없이 흩어져 도시국가를 이뤘다는 주장)
4. 강단사학처럼 삼한의 형태로 연맹국가로 존재했을 것이라는 주장
이후 고구려가 한반도 귀속 여부나 통일신라에 의해 복속 여부에 대해서는 고대사 기록과 유물이 빈약해 주요 논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북한 영토는 정치적 이유로 유적, 유물 검증이 어렵고, 한국은 급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정확한 발굴없이 개발해버렸습니다. 지금의 잠실~강동구 일대는 고구려를 중심으로 백제, 신라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두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도로와 아파트 건설로 묻어 버렸죠.
최근 중도 레고단지도 동아시아 최대 신석기 유적지가 발굴되었음에도 모두 부셔버리고 개발해버렸습니다. 이를 명확히 발굴하고 조사했어야 고조선 유민의 한반도 유입설에 대해 밝힐수 있었을텐데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윗분이 말씀하신대로 고려시대 정사 '고려사'는 지리와 지명이 전혀 한반도에서 해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게 강단사학계 주장인데, 그들이 가장 칭송하는 조선실록을 편찬한 조선시대에 편찬된 게 '고려사'예요. 그리고 이걸 마냥 왜곡하기도 힘든 게 고려사 마지막은 이성계가 포함되어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기록을 위해서도 집필되었기 때문에 강단사학의 주장이 모순되기도 하고요.
고려사 원문만 읽어도 삼국 대륙설을 무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송나라때 집필된 고려도경은 그림이 모두 없어진 사서지만 사서 내용만 봐도 고려의 영토에 대해 한반도라는 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요.
교차 검증 중요시 하는 강단사학계 주장대로 삼국사기에 대해서도 북사, 양직공도 등을 보면 삼국 대륙설에 대해 부정할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즉, 재야사학에서 주장하는 삼국대륙설에서 그 국경선의 경계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확신해 이야기할 수 없어도 한반도에만 있었다는 강단사학의 입장은 정사만 가지고도 삼국사기, 고려사 뿐 아니라 중국 25 정사 중에서 삼국을 다루는 18사를 보면 맞지 않다는 입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
* 사적으로 환단고기는 논란이 있으니 인용하지 않습니다.
강원도는 사실 형주에 있었습니다
사학계 다수가 바보라서 이런 걸 주장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한국 사학계의 대부분이 쓰다 소이치의 실증사학의 후계자, 이병도 후학이라는 것도 알고 계시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우리가 스스로 사료 비판이라는 역사학의 기초적인 틀을 지키지 않으면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같은 역사 왜곡에 비판도 대응도 할 수 없습니다
중국 동북공정을 막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세운 동북아 역사재단에 의해 동북공정 근거가 재활용되고 있다는 것과 문재인대통령의 동서 화합을 위해 1.8조원의 역사상 최대 사학계 연구용역의 가야사연구가 임나일본부설을 가져다가 원삼국 시대를 만들어 임나와 아라 가야 등을 비정해 놓은 건 알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1. 2천년 전에 그때 그당시에 바위에 기록된 기록
2. 대략 1천년 전에 기록된 2천년 전의 기록
3. 최근 100년도 안된 2천년 전의 기록
1, 2, 3 번중에 제일 정확한 기록으로 우선 순위를 가르자면 1 > 2 > 3 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공교육에서 받은 3번의 기록이 1번이나 2번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다면, 3번이 맞을까요? 1/2 번이 맞을까요?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 입니다.
지금 현실은 1/2번 기록은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사람들이 공교육을 통해서 배운 3번 사실을 가지고, 1/2번이 틀렸다고 혹은 맹목적 비난을 하는 것이 문제 입니다.
또한, 기득권 층들이 3번의 학설에 대해서 카르텔을 만들었고, 1/2는 찌라시 취급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제 1/2번에 대해서도 기를 귀울여서 아무 생각없이 세뇌시킨 3번의 기록이 맞는지를 검증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듯 합니다. 그리고, 대중들이 1/2번이 맞고 3번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