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자료 - 나무위키, TV 조선)
6.25 전쟁 초기 위기의 낙동강 방어선.
북한 김일성은 대구 돌파를 위해
칠곡군 다부동에 8월 총공세 명령을 내린 상황.
당시 압도적인 인민군의 화력에 국군은 밀렸으나
국군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이
병사들에게 "내가 후퇴하면 니들이 나를 쏴라" 라며
적진으로 장군이 선두 돌격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이 사단장 돌격 일화는 미군에게도 유명한 사건이며
역대 전쟁사에서 거의 없는 장군 돌격입니다.
결국 다부동 전투는 국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 승리를 계기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며
우리 국군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5169790CLIEN
-- 위키 --
그냥 살기위해 몸부림친 결과물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요.
여기요~
백선엽이 저지른 친일행위보다 6·25전쟁의 공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6·25전쟁사를 모르는 일반인, 특히 정치인들은 마치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이 인민군을 다 막아서 대한민국이 구출된 것처럼 주장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낙동강 전선이 240㎞였다. 그 전선에서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즉 8개 사단이 합심해서 방어해낸 것이다. 백선엽은 그중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낙동강 방어에서 미군도 큰 역할을 했다.
미국 공군 B29 폭격기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한·미 연합군 8개 사단을 지휘하면서 불퇴전의 결의로 앞장섰던 미군 워커 장군의 공도 컸다. 워커 장군은 나중에 교통사고로 작고했지만 우리 정부도 낙동강 전선의 공로를 기려 그의 이름을 딴 ‘워커힐 호텔’까지 만들었다. 훗날 일각에서 백선엽이 낙동강 전선을 혼자 사수한 것처럼 과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누가 과장했나?
6·25전쟁 공로를 과장해 스스로 영웅화한 주역은 백선엽 자신이었다. 그는 군복을 벗은 뒤 박정희 정부 때부터 30년간 전쟁기념관에 사무실을 두고 출근하면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자원해 맡았다. 참전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고, 백선엽 장군이 내신 6·25 관련 책이니까’라며 덮어놓고 찬양했다. 그러나 참전 장군들은 다 안다. 그분들은 백선엽 장군을 영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6·25전쟁의 진짜 영웅이 있다면?
당시 전쟁기를 통틀어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장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 정규군 중장 출신으로 일제 말기 임시정부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다. 6·25전쟁 초기 김홍일 장군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글자가 없어질 뻔했다. 이 역사가 아직까지 너무 묻혔다. 일본군 출신 백선엽 때문에 묻혔다. 국민들이 거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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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원로인사 중 한분이자 전 예비역 준장 박경석 장군은 백선엽 '성역화'작업에 매우 안좋게봅니다. 박경석 장군만해도 굉장히 반공주의적 가치관 가진분인데 이런분들조차도 백선엽 성역화는 문제많다 보는 시각.
이건 국군의 정통성 문제에 정면으로 문제 건드리는 사안이 되버려요
전문성 1도 없는자가 국토부장관하면서 수천억 재산 증식했죠
애잔합니다. 쉴드칠 자를 치세요
백선엽이를 미화해서 얻고자 하는게 뭐죠? 뭔가요?
글 1개 올리면 재단쪽에서 알바비가 나오나요? ...........진짜로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국군은 죄다 포위 섬멸당했고, 그 뒤의 대한민국 역사에 없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