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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모공글 보다보니 댓글에 IMF 시절에 못먹고 다녔던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때 일이 갑자기 기억났는데요,
집안 사정이 IMF 상관없이 꾸준히 별로였지만 IMF 터지고 나서는 다들 없이 사니까 저지대 물난리만 안겪어도 나름 행복하다고 외치며 살았거든요.
미아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집이 딱히 가깝지도 않은데 그리로 배정이 돼가지고 매일 돈내고 버스를 타야해서 뭐 사먹을 돈도 없고 문제집도 살수없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엔 저처럼 저소득층 학생들도 절반 정도는 됐는데 사립이라 그런걸까 잘사는 집 아이들도 꽤 많고 유명한 데에서 전학도 오고 그래서 촌지도 많이하고 재력있는 부모들이 뜻을 모아 학교에 에어컨을 설치한다던가 당시로선 파격적인 지원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담임들도 촌지 요구를 빈번하게 하는데 당시에 그럴줄 모르고 부반장인지를 괜히 해서 돈 안갖고온다고 엄청 맞았어요. 공부를 상당히 잘 했기 때문에 집에서 지원을 해줄거라고 오해를 했었던것 같은데 왜 때리는지 대충은 느꼈지만 돈은 없고 자존심에 그냥 맞고 넘기자 했었죠.
하루는 학년 전체가 가는 소풍 계획이 잡혀서 친구들이랑 "가면 뭐하고 놀까?" 하며 수다를 떠는데 담임이 와서는 저더러 소풍날 자기 도시락을 싸오라고 어머니한테 얘기하라 언질을 주더라구요.
그당시엔 사정이 어려워서 도시락도 맨밥에 김이랑 김치랑만 싸던 시절이라 친구들이 그 소리 듣고는 깜짝 놀라 괜찮겠냐고 걱정을 하더라구요.
저도 이걸 어쩌냐 하다가 못한다 소리하면 또 맞을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전날밤까지 궁리하다가
수퍼에 가서 900원짜리 가짜소세지랑 참치 한 캔을 사서
김치 볶음밥을 2인분 만들어서 하나는 제 도시락에 또 하나는 동생 코끼리 도시락통을 하루 빌려서 따끈하게 담았어요
깨도 뿌리고 엄청 맛있을거 같은 비주얼이라 선생님도 좋아할줄 알았는데
여행가서 담임이 부르기에 도시락 쌌다고 가져다 주려고 보니까 다른 반 선생님들이랑 진상(?) 받은 식사를 펴놓고 있는데 그 수준이.. 진짜 도시락을 싸온건 저밖에 없고 막 고급 용기에 갈비에 무슨 해파리 냉채에 잔치상이 펼쳐져 있더라구요.
가져간 도시락을 담임선생에게 건내니까 위아래로 절 훑어 보더니 그냥 가져가라 그래서
뚜껑도 안열어본 게 서운해서 진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도시락 두 개를 챙겨서 친구들한테 돌아갔는데 애들이 안맞았냐고 묻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애들이 그렇게 될줄 다 알았던거 같아요 저만 모르고 ㅎㅎ
쪽팔려서 눈물 닦고 담임 배불러서 안먹는데더라 그러니까 애들이 막 "야 신경쓰지마 그새끼 싸이코라 입맛도 지랄이야" 이렇게 얘기해주는데 분한 게 좀 풀리더라구요..
애들이랑 그렇게 도시락 까서 먹고 김밥 싸온 애들이 많아서 집집마다 김밥이 참 다양했지만 제가 싸간 김치볶음밥도 고추장을 잔뜩 넣은게 당시 양푼 비빔밥 느낌이 나서 꽤나 히트를 쳤어요. 2개나 있다고 하니까 애들도 신나고 저도 "야 이거 내가 만든거야 ㅋㅋ" 막 이러면서 기분 풀고..
그렇게 장기자랑도 하고 잘놀고 돌아오는데 동생이 집에서 도시락 담임이 잘 먹더냐고 해서
"그럼 아주 싹싹 먹더라" 이렇게 대답하는데 또 한번 분해서 폭풍 눈물이 났던 기억입니다.
나중에 대학합격하니까 담임이 자기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꽁한 성격인거 같다고 그러면서..
그때 그양반이 40대 중반 정도 나이었는데 힘든 시기여서 더 그랬던걸까 아니면 사립이라 썩어서 그랬던걸까.. 지금은 할아버지가 됐겠지만 언제 길거리에서 만나면 한마디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러면 안되는거 알면서도요.
할 거 없으면 선생질이나 해라던 시절이긴 했습니다만... 쩝...
imf때 대학 졸업반 이였는데 진짜 먹고살길이 뚝 끊긴걸 눈치 챗을때, 어른들이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매몰차게 내 칠때 생각이 납니다. 잘될땐 모르던 사람들의 본성이 드러 나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친구분들 두셔서 힘이 많이 되신것 같아요.
imf 겪으며 중고등학교 기억이 선명해서 긴장이 많이 되는 요즘입니다.
하루 1000원으로 그날 교통비랑 밥을 해결해야했죠
(굶거나 몇정거장을 걸어가거나…)
대학교는 들어가서 휴학하고…
담임은 그지 같지만
그래도 친구들이라도 괜찮은 거 같아서
제 마음이 놓이네요..
그렇게 애들 괴롭히던 일진이나 깡패형들도 그렇지만 그나마 학생편이라고 믿었던 인간들에게 느끼는 배신감이란...
여기 글과 리플들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아픈 기억 달랬으면 합니다
토닥 토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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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시절 사립은 다 그랬죠... 선생들도 돈 내고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1990년 기준 최소 3천만 원에서 4천만 원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생많으셨어요. 부반장도 하시고 친구들도 잘해준걸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훌륭하셨던것 같네요.
친구들도 좋은 분들을 만나셨군요.
저도 imf때 고등학생이었는데 imf되기 전 아버지가 명퇴하시고 보증을 서시는 바람에 집안사정이 너무 어려워졌어요. 학급에서 몇 번의 수업료를 미납한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담임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동산이 얼마냐 부동산이 얼마냐 하는데 돈이 없다는 게 참 슬프더라구요. 학부모에게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미성년자에게 다그치는 게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그때는 너무 서러워서 복도에서 엉엉 울었네요. 그리고 나중에 수업료 감면을 받는 절차로 동의서를 받는 것도 너무 창피했던 기억이 나네요...
만약 제가 그런일을 당했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한마디 정도가 아니라
열마디는 퍼부었을거 같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