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말하면 다 알만한 사람들입니다.
85년에서 85년 서울의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했다는 친구들과 함께 그야말로 잠깐 징역을 같이 살았습니다.
그 징역 살이에는 저처럼 자본주의가 뭔지도 몰랐지만 오로지 인간에 대한 뜨거운 연민 만으로 징역을 들어온 후배들도 있었고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 무기 징역을 받은 장기수 어른들도 함께 였습니다.
사실 징역 살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 곳을 해방구라 불렀고 교도소에서도 아침 일찍 문을 따면 오후 4시까지는 사동 안에서 자유롭게 서로 대화를 나누고 토론도 하며 운동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편한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장기수 어른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 분들은 늘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곤 했지요.
어떤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장기수 어른들은 그다지 학생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오랜 징역 살이 중에 터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10명이 넘는 학생들은 매일처럼 모여서 운동을 하고 밖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너명의 총학생회장 출신들이 따로 모이기 시작하더군요.
민민운동의 방향을 두고 그 잘난 운동의 이론 따위를 가지고 패거리를 짓기 시작하는 것도 보기 역겨웠지만 그들이 교도소 당국과 매일처럼 만나 무엇을 논의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도소 안에는 전담반이라는 소위 전향을 담당하는 놈들이 학생들을 감시하고 있었고 그 친구들은 아침 일찍부터 전담반을 만나 놀다가 오후가 되어야 감방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아침, 약속이나 한 듯이 네 명이 동시에 대전으로 이감을 간다고 하더군요.
대전 이감은 반성문을 쓰고 교육을 받으러 가는 것이었지요.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이제 겨우 몇 개월도 살지 않은 징역살이를, 나가서 싸우겠다는 말로 팔아버리던 그 친구들은 나중에 보니 거의 대부분 정치권으로 가있더군요.
국개가 되지 못한 놈들은 보좌관 자리를 꾀차고 오랜 시간 정치권 주변을 맴돌다가 참여정부에서 이런저런 자리에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끝까지 남아 싸웠던 후배들은 이름없는 노동자가 되었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 빛바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단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 때문에 민주화가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지만 늘 우리 역사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던 것은 시민의 힘이었습니다.
기득권의 적폐야 말할 것도 없고 그들에게 민중은 들러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룸싸롱에서 양주를 마시며 아가씨들에게 돈을 뿌려 대면서 전두환이 때는 더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서스럼없이 내뱉을 때 절망했지만 그들을 감쌌던 것은 얄팍한 동지애가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만기출소를 하는 날, 제 손을 잡던 장기수 어른들의 그 손을 기억합니다.
잘 살겠노라고 다짐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과연 이것이 맞는 일일까 고민합니다.
이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싸우다 그야말로 이름없는 사람들에게 한 때 운동권이라고 불리웠던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날입니다.
저들은 어찌 저렇게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지 모르겠네요.
님같은 분들께서 겪은 고통과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이 지금같은 민주주의라도 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념이나 진영과 관계없이
대우받고 잘살수 있는 유혹이 항상 존재하죠.
그래서 엘리트라서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 엘리트가 어떤 철학과 가치관 사명감, 통찰력과 능력을
갖췄는지를 끊임없이 살펴야죠.
민주주의는 연대이지만,
언제나 셀프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지금은 언행 하나 표정 하나 디테일하게 찾아보고 아카이빙할 수 있기에 본심이 조금은 드러나긴 합니다만 그래도 사람 속은 알기 힘들더군요... 그렇다고 같이 가지 않을 수는 없고,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반대로 눈을 밖에서 안으로 돌려보면 나를 나로서 지켜내고자 우직하게 가면 촛불 때처럼 알아주는 이가 있겠지 싶으면서도 이번 대선을 보면 암담하고... 반복인 것 같습니다. 저는 나이가 어려 선배님들처럼 감옥까진 아니고 mb때 집시법이니 도로교통법?이니 하며 닭장차나 유치장 신세는 몇 번 졌습니다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죠.. 지금까지 살아남아 청와대에 있고 국회에 있는 사람은 백명중에 한명도 안됩니다. 많은 친구들은 대부분 사라져서 연락도 안됩니다. 물론 지금내노라하는 사람중에 변절자 쓰레기도 있지만 아직 적어도 대가리 총맞지 않고 바른 말하는 친구가 남아 있고.. 그리고 만약 그때 그렇게 목숨걸고 싸우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게 굴종했다면 ... 이렇게 피흘려 쌓아놓아도 해먹을 놈 해먹고.. 어디 개돼지같은 년놈이 나타나 최고의 자리도 오르지만.. 그래도 다시 바로잡고 살게 만듭니다. 그들의 고통 죽음이 없었으면 우리의 지금 부강한 대한민국은 없었을겁니다.. 라고.. 목숨바쳐 투쟁한 선배 후배들에게 존경을 보냅니다.
아프더군요. 부끄러움을 안고 사는 이들은 대부분 너무나 어려웠고 자식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먼 이웃의 공허함처럼 느껴지더군요. 살아남았다는 것, 슬픔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자녀들이 부모님은 우리나라 민주화를 무엇을 했냐고 물을 때 어떻게 답할래?
이 물음이 동기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던 걸로 기억합니다.
비록 지금 그런 질문을 받기는 커녕 꼰대 소리만 듣기는 하지만 말이죠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거죠
민주의 피땀에 무임승차하는 삶을 살면 안된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던 그들이 짐작되네요.
더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도록 노력 해야 겠습니다!
저는 학생운동 막바지 세대라 큰 탄압없이
무난하게 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하지만 그저 운동에만 열심이었던 이들은 사회에 나갈 준비를 못하였으니 훨씬 못한 삶을 사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봤던 모습으로는...
이제 또 십수년이 지났는데.. 그들이 모두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길 바랍니다.
이런 글은 변절자들이 어이없게 변절하기 직전 남기는 글과도 비슷합니다.
국힘당, 일베들이 이글 돌려 읽으면서 좋아들 하겠습니다.
조금 앞에 이래 저래 다 수박이면 누가 남겠느냐고 호소하신 분의 글과 잘 대비가 되네요.
이리 저리 지저분하고 모자라고 더러운 줄 알아도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서 써먹는 거지요.
문재인보다 못하다고 다 내치면 누가 남나요.
울면서 산에 들어가든가, 국힘당에 부역하든가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