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이런건 잘 대비되어있더라구요. 태풍 상륙하면 경보 등급에 따라 휴교령은 물론 회사 휴업령까지 자동으로 발령돼서 출근을 안해도 됩니다. 폭우나 강풍등급에 따라서 학생이 집이나 학교에 머물러야 하는지 등교를 해도 되는지까지 규정되어 있고요.
테스형
IP 112.♡.28.178
07-06
2022-07-06 23:31:39
·
개근은 가장 배이스로 깔고 가야할 덕목이었죠. 아파도 어떻게든 학교로 가야
밀누룽지
IP 118.♡.22.95
07-06
2022-07-06 23:40:19
·
1990년 폭우로 홍수가 났을 때 탄천 옆에 배명고 다녔거든요.. 거기 3층에서 탄천을 보는데 양쪽 강둑이 넘치기 직전이더군요. 평소에는 볼 수가 없던 강물이 넘칠 정도로 흐르는데 너무 비현실적인 풍경이라 지금도 생각나네요. 그때 가락아파트 쪽으로 범람을 해서 많이 침수가 됐었던 게 기억나네요..
무조건 지금의 잣대로 그때를 평가할 필요는 없겠지요. 사회인식도 많이 바뀌고 시대정신도 그때와 달라졌으니까요. 어쨋든 저런 성실함과 책임감은 저당시 중요한 덕목이었고 그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된 것 또한 사실이라 봅니다.
다시금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미래에 오늘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일단 그때까지 살아야될텐데.....
산책길
IP 220.♡.250.158
07-06
2022-07-06 23:48:55
·
제 청소년 시절 중 가장 후회되는 상이 12년 개근상 입니다. 저희 집 아이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게 키우고 있습니다. ㅎㅎ
풋콜패리티
IP 122.♡.230.26
07-06
2022-07-06 23:59:01
·
@산책길님 그렇게까지 후회할 필요가 있나 싶네요. 요즘은 개근상이라는 존재조차 모르고 아이들이 학교 다니는 세상이기에 모두가 그렇게 다니듯이 그때는 그게 중요했으니까 그렇게 다녔을 뿐이다 생각합니다. 참고로 그때는 출결사항이 대학입시 점수에도 반영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산책길
IP 220.♡.250.158
07-07
2022-07-07 00:15:06
·
네 후회가 많이 됩니다. 출석이 생명이었고 가끔씩 학교 빠지는 친구들은 불성실한 사람들로 생각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 밖에도 괜찮은 경험들을 쌓을 수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오로지 12년 등교와 개근에 목메었던게 제 정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좋은 기억은 결코 아닙니다. 제 아이들은 평일에 좋은 기회가 있으면 학교에 결석계 내고 경험케합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 대한 거부감도 별로 없더군요.
저 시대엔 개근상이 진짜 가치있는 상이었고 성실함의 지표였기 때문에 학교를 빠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지금 보면 어이없고 야만스럽기도 하지만 전 제 개근상이 자랑스럽네요. ㅋㅋ 그래도 내가 한 때 무언갈 열심히 한 적도 있구나 싶어서요. ㅎㅎ
직설화법
IP 106.♡.11.197
07-07
2022-07-07 00:37:44
·
태풍 홍수때 등교하며 재미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위험하긴 했죠.
파라메딕
IP 50.♡.109.149
07-07
2022-07-07 00:41:30
·
이게 직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건 더 비극이었습니다. "죽어도 회사에서 죽어라. 그래야 산재라도 신청해볼 수 있다...." 2008년도에 사수에게서 들었던 말이었고 다들 진짜로 회사에 와서 쓰러졌습니다. ㅠ.ㅠ
WhoIsIt
IP 121.♡.176.156
07-07
2022-07-07 01:01:25
·
저는 대학교 때 시험 처야하는 강의동 옆산에 산불이 다가 오고, 운동장에 임시로 산불진화 헬기가 내리는 와중에 - 교수님 왈: "예들아 오늘 시험은 그대로 진행 이다"
불냄새 맡아 가며 시험 쳤네요 @@
삭제 되었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nice05
IP 175.♡.18.168
07-07
2022-07-07 02:03:32
·
저는 70년대생인데, 제 학창시절은 교사는 학생에게 폭력을 행해도, 성희롱을 해도 괜찮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체벌을 당한 적이 있고, 목격한 적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해 불만은 크게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애 인권을 아작낼 듯이 과하거나 야만적인 폭력을 행하는 교사는 초중고대에 걸쳐 딱 한번 보았거든요. 폭력이 인정되는 사회라는 전제가 깔리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폭력만이 있었거든요, 제가 겪거나 본 한계에서는요.
본문의 논조와는 달리 태풍 등이 올 때엔 학교에 가진 않았습니다.
어느 부모도 진심으로 한 얘기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지만 개근상이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상보다 의미 있고 좋은 상이라고 얘기하는 학부형들도 있을만큼 결석을 거의 범죄 취급하던 시절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학 뺀 12년 동안, 즉 수천일의 수업일수 동안, 결석을 한 적은 열번도 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일년에 한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죠. 저희 부모님은 흔히 말하는 개방적인 분들이라 감기나 몸살로 열만 좀 나도 결석을 하라는 주의이긴 했지만, 뭐 결석할 정도로 아픈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 연 1회 미만의 결석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 '결석할 정도' 라는 게, 결국은 사회 분위기에 의해 강요된 감도에 의한 것이긴 합니다. 지금 제가 태어났고 동일한 성장 과정을 겪는다면, 결석할 정도로 아픈 경우가 훨씬 많을 것 같거든요.
본문에서 표현한 야만의 시대란 말은, 제한적이긴 해도,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속버스에서 흡연이 가능했고, 재떨이까지 좌석 좌석 마다 구비돼 있었거든요. 어느 식당에서든 그 살인행위가 제한되지 않았고, 심지어 산인이 있는 자리에서도 흡연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제지자는 희소한 중에서도 희소했고요. 금연한지 3년이 다 돼 가는 지금, 저는 흡연자는 마약을 하는 사람과 비슷한 인식으로 바라보거든요. 그런데 현재의 제한된 흡연이 아니라 무제한적 흡연이 횡행하던 시절이었으니, 야만의 시대였다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0대 초반, 혹은 그 직전의 나이에 노동을 위해 학업이 후행돼 버리던, 제 전 세대의 사회에 비하면 사회가치적으로 발전한 인류들이 살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탈야만과 관련해서는, 엄청난 수의 세대가 지날 때 까지, 점양호해져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후대의 눈엔 제가 사는 현재도 야만의 시대로 보일 거라는 거죠. 길거리 흡연이 허용되고, 음주 운전을 하는 인류가 존재하는 세상이니까요.
규링
IP 121.♡.181.197
07-07
2022-07-07 02:36:05
·
저러고 살았던 게 당연하였는데... 지금 잣대로 보니 진짜 이상하게 살았네요.
Ireland
IP 219.♡.143.41
07-07
2022-07-07 02:45:07
·
정말 죽을 것 같아서 6년간 하루 빠졌는데 개근상이 아닌 정근상으로 마무리ㅠㅠ
율이신
IP 121.♡.135.171
07-07
2022-07-07 03:39:38
·
비오고, 개천 범람하고, 뚝이 무너져도 학교를 가야했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 무식하던 시절이었어요.
제이슨보온
IP 172.♡.195.67
07-07
2022-07-07 04:03:16
·
학교다닐때 반친구가 담임한테 전화로 아프다고 학교 못간다고 말했다가 와서 말해야지 왜 전화로 하냐고 다음날에 난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쭈니~
IP 211.♡.251.196
07-07
2022-07-07 04:52:21
·
예전에 학교다닐때는 아파도 학교와서 아프다고 하고 조퇴하는 게 일반적이었지요. 그냥 결석같은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고 질병결석도 죽을 병 아니면 인정도 안해줬지요. 코로나 이후로는 발열증상있으면 학교에서 입구컷 당하고 담임한테 증상있는 데 왜 보냈냐고 연락오더군요. 아이가 말도 안하고 증상을 감추니 몰랐던거죠.
시대에 따라서 보편적 사고가 변하니 뭐가 맞다틀리다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좀더 사람사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확실해 보입니다.
왁짜
IP 211.♡.192.76
07-07
2022-07-07 05:14:31
·
새벽에 하나 또 배우네요. 저는 온전히 다닌게 초등학교뿐이지만 맞다가 대가리깨저서 며칠 쉰거 졸업할때보니 개근으로 해줘서 신기했습니다. 다른건 다잘했는데 미술점수가 꽝이었는데 따로 돈먹이고 할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슬쩍 올려주기도 했구요.
zase
IP 211.♡.5.249
07-07
2022-07-07 05:36:58
·
요즘 나오는 중국오지마을 아이들이 등교하듯이 강건너 산넘어 걸어서 등교하던 그때예요 그땐 왠만하면 학교가는게 원칙이고 그래서 개근상을 받으면 이사람 성실하군 하고 인정하던 때였죠 지금 생각하면 무식하고 야만적인 시절이었죠 학교에선 선착순에다 줄빠다에 쌍 싸다귀가 유행했던 쇠자로 손등치기 날라서 차기등 선생님들의 체벌이 최고조로 달렸던 시절 하..............그래도 살아남았네요 젠장
루다나리에
IP 220.♡.221.4
07-07
2022-07-07 05:39:40
·
@zase님 예전에는 그런시절이었다면 지금은 거꾸로 역전당해 젊은선생님들이 학생들,학부모들에게 시달리는 세상이 되버렸네요..ㅠ 촉법소년 강력사건도 많고.. 뭔가 중간이란게 참 어려운것 같습니다.
덕분에 구석에 짱박혀서 왕따 아닌 왕따를 ㄷㄷㄷ
이거 개근했다고,,나중에 근면한것도 아니고요,,,
그만큼 근면 성실이 사회 최우선 가치이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회가 고도화 되고 더이상 단순 성실함 만으론 한계에 다다르니
요즘에서는 창의성이니 자기만의 길이니 개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갑니다만
그 시대엔 그게 맞았던거죠
뭐.. 시대 흐름이라 봅니다
여전히 사회 각분야에 원로로 남아 이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겠구나... 생각하면, 아직 정리해야할 일들이 많구나 생각이 듭니다.
당장 사업장내에서도 무사고 ㅇㅇㅇ일 달성 이딴것 때문에 사고가 나도 은폐하는 문화가 생기는거죠.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3 졸업앞둘때까지 개근이었다면 당사자인 학생도 욕심이 나기 때문에 억지로 학교가는 심리가 형성됩니다.
그게 뭐라고.,
악착같이 했네요ㅎㅎㅎ
반바지 입고 친구들과 재미있다고 웃으며 등교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ㅎㅎ
태풍 상륙하면 경보 등급에 따라 휴교령은 물론 회사 휴업령까지 자동으로 발령돼서 출근을 안해도 됩니다. 폭우나 강풍등급에 따라서 학생이 집이나 학교에 머물러야 하는지 등교를 해도 되는지까지 규정되어 있고요.
그때 가락아파트 쪽으로 범람을 해서 많이 침수가 됐었던 게 기억나네요..
다시금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미래에 오늘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일단 그때까지 살아야될텐데.....
참고로 그때는 출결사항이 대학입시 점수에도 반영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성실함의 지표였기 때문에 학교를 빠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지금 보면 어이없고 야만스럽기도 하지만
전 제 개근상이 자랑스럽네요. ㅋㅋ
그래도 내가 한 때 무언갈 열심히 한 적도 있구나 싶어서요. ㅎㅎ
- 교수님 왈: "예들아 오늘 시험은 그대로 진행 이다"
불냄새 맡아 가며 시험 쳤네요 @@
제 학창시절은 교사는 학생에게 폭력을 행해도, 성희롱을 해도 괜찮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체벌을 당한 적이 있고, 목격한 적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해 불만은 크게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애 인권을 아작낼 듯이 과하거나 야만적인 폭력을 행하는 교사는 초중고대에 걸쳐 딱 한번 보았거든요.
폭력이 인정되는 사회라는 전제가 깔리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폭력만이 있었거든요, 제가 겪거나 본 한계에서는요.
본문의 논조와는 달리 태풍 등이 올 때엔 학교에 가진 않았습니다.
어느 부모도 진심으로 한 얘기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지만
개근상이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상보다 의미 있고 좋은 상이라고 얘기하는 학부형들도 있을만큼 결석을 거의 범죄 취급하던 시절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학 뺀 12년 동안, 즉 수천일의 수업일수 동안,
결석을 한 적은 열번도 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일년에 한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죠.
저희 부모님은 흔히 말하는 개방적인 분들이라 감기나 몸살로 열만 좀 나도 결석을 하라는 주의이긴 했지만,
뭐 결석할 정도로 아픈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 연 1회 미만의 결석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 '결석할 정도' 라는 게, 결국은 사회 분위기에 의해 강요된 감도에 의한 것이긴 합니다.
지금 제가 태어났고 동일한 성장 과정을 겪는다면, 결석할 정도로 아픈 경우가 훨씬 많을 것 같거든요.
본문에서 표현한 야만의 시대란 말은, 제한적이긴 해도,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속버스에서 흡연이 가능했고, 재떨이까지 좌석 좌석 마다 구비돼 있었거든요.
어느 식당에서든 그 살인행위가 제한되지 않았고, 심지어 산인이 있는 자리에서도 흡연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제지자는 희소한 중에서도 희소했고요.
금연한지 3년이 다 돼 가는 지금,
저는 흡연자는 마약을 하는 사람과 비슷한 인식으로 바라보거든요.
그런데 현재의 제한된 흡연이 아니라 무제한적 흡연이 횡행하던 시절이었으니, 야만의 시대였다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0대 초반, 혹은 그 직전의 나이에 노동을 위해 학업이 후행돼 버리던, 제 전 세대의 사회에 비하면
사회가치적으로 발전한 인류들이 살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탈야만과 관련해서는,
엄청난 수의 세대가 지날 때 까지, 점양호해져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후대의 눈엔 제가 사는 현재도 야만의 시대로 보일 거라는 거죠.
길거리 흡연이 허용되고,
음주 운전을 하는 인류가 존재하는 세상이니까요.
지금 잣대로 보니 진짜 이상하게 살았네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무식하던 시절이었어요.
와서 말해야지 왜 전화로 하냐고 다음날에 난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시대에 따라서 보편적 사고가 변하니 뭐가 맞다틀리다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좀더 사람사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확실해 보입니다.
다른건 다잘했는데 미술점수가 꽝이었는데 따로 돈먹이고 할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슬쩍 올려주기도 했구요.
강건너 산넘어 걸어서 등교하던 그때예요
그땐 왠만하면 학교가는게 원칙이고 그래서 개근상을 받으면
이사람 성실하군 하고 인정하던 때였죠
지금 생각하면 무식하고 야만적인 시절이었죠
학교에선 선착순에다 줄빠다에 쌍 싸다귀가 유행했던
쇠자로 손등치기 날라서 차기등 선생님들의 체벌이
최고조로 달렸던 시절 하..............그래도 살아남았네요 젠장
촉법소년 강력사건도 많고..
뭔가 중간이란게 참 어려운것 같습니다.
저렇게 해놔야 비가오던 눈이오던 출근할줄아는 노예가 될테니까요
학교에서도 큰 관심 없었던거같구요
그저 개근상을 받아내야겠다는 가정의 의지였던듯 해요
아프거나 할때는 누구나 결석이나 조퇴를 했던것같습니다
겁나 강요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아파서 죽어도 책상에서 죽어!" 라고 외치던 담임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약간 그전 세대인데
조퇴못하게 하는건 학생개인의 엄살 가능성이 있을경우였건거같고 부모님이 공식적으로 전화하면 조퇴 결석 쉬웠던거같습니다 선생들이 개근에대해큰 관심 없었던거같아요 강요할 이유도 없고
태풍와서 홍수 나면 당연히 학교 안갔죠.. 무슨 등교?
예를 들어 광복후 최대의 서울 홍수가 1990년 홍수로 압니다. 여기 참조 --> https://ko.wikipedia.org/wiki/1990%EB%85%84_%ED%95%9C%EA%B0%95_%EB%8C%80%ED%99%8D%EC%88%98
이 당시 학교에 등교했는데, 홍수가 시작되자 서둘러 모두 귀가했죠. 당연히 그 뒤로 며칠간 집에서 쉬었죠.
다 잠겼는데 무슨 등교를 하나요? 그냥 다 집에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 생각으로는 미리 태풍 대비해서 등교시키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 할 수도 있는데, 예전에는 기상 예보가 그리 정확하지 못해서 그렇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국에 장마와 태풍이야 여름이면 오는 거고, 그걸 매년마다 학교 쉬면 수업일수 맞추기가 힘들었겠죠.
나이가 다들 들어가나봅니더
그래도 저는 요즘학교다닐래 옛날학교 다닐래하면 옛날학교 갈겁니다 ㅋㅋ
친구들 괴롭히는애들은 선생님한테 두들겨맞고 ㅋ친구들끼리 서로서로 재미있게 놀던시절 좋았던거같아여
반환점을 돌고 와야지요.ㅎㅎㅎ
1명~2명 될까 말까..
성실성 지수를 알려주는 것인데, 코로나 정국의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 자신들이 받은 것이 혜택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되겠죠..
어떤 업체에서도 이들을 반겨줄 곳은 없다는 것을..
지금 보면 하등 쓸모없는 12년 개근상을 받아야 한다면서 말이죠.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