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필즈상 수상을 한 허준이박사가 한국에서 상문고 다니다가 중퇴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허 교수의 부친인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는 “아들이 고교 때 건강이 좋지 못해 야간자율학습을 빼달라고 요청했는데 학교에선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거부하는 등 학교교육이 강압적이었다”며“아들이 자퇴를 원해 의논 끝에 집에서 공부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참 전인 제가 학교 다닐때도 그랬지만 야자 빠진다 그러면 담임이 엄청 갈궜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자율학습 빠지는거 허락 안한 담임이 필즈상을 만든 장본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전 근처 미술학원에서 입시 준비 했는데 상문애들 은 학원 일찍오고 그랬던거 기억나네요.
상문은 교복이 예뻤죠.
저 빼고 저희 형제들이 다 상문 나와서 잘 압니다 ㅎㅎㅎ
그래도 착한학교 다니셨네요 우리는 야자 안한다 그러면 선생들에게 엄청 혼났습니다...
도망가서 영화보는것은 기본이구요.
생각나네요 영화 무릎과...사이
서울만 그랬나요?
(소설 책 한권 들고 아침 버스 다 보내고 빈 버스 타고 감)
야간 자율이랑 심화반도 다 도망갔습니다.
없애야하고 없어야하고 하면 안되는 거죠.
당시에 여러가지로 말이 많았죠..
머리도 빡빡밀고
재단이 썩을때로 썩어 왠만하면 사학과 결탁한 교육부가 재단을 건드리지 않는데 상문은 그정도가 너무 심해서
결국 재단을 해산시키고 관선이사를 파견할 정도 였으니까요.
학생들을 동원하여 신축건물공사에 동원하거나 교비횡령, 성적조작, 내신비리, 현직교사과외, 촌지, 교사에 의한 학생구타는 아주 일반화된 학교였습니다.
8학군에 있었기때문에 스카이에는 대규모로 입학하였으나 그것이 공부를 제대로 가르쳐서가 아니라 애당초 학생자원이 좋아서 그랬고 그나마도 연고대 좋은과에 들어갈 애들을 서울대 농대에 반강제로 원서를 쓰게해서 서울대 입학 인원이 많다고 광고한 그런 비교육적인 학교였습니다.
제 대학동기들 중에서도 상문고 출신이 제법 있는데 스스로 상문고 출신이라고 말을 못했습니다. 너무나도 쪽팔려서요..
상문고를 모티브로한 웹소설, 영화(두사부일체, 화산고) 많습니다..
네... 학교 옆 부지에 골프연습장 짓는데 거기에 자재 나르기 등 공사에 동원 했습니다..1980년대 중반쯤.. 지금처럼 권리 의식이 강하지 못하였고 학부형들도 항의를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죠
전교생 조회 때 교사가 딴짓 했다고 교장이 연단에서 날라차기 했다는 전설이 떠오르네여....ㄷ ㄷ ㄷ
거기 출신들은 그 이야기만 대충 3시간을 할 수 있더군요 ㅋㅋㅋ
80년대 상문과 기수 같은 o고 다녔는데 선생들이 너희 상문 안간거 다행이라 생각하라고 거긴 학생들이 학교 공사하고 아직도 푸세식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
학교쪽 보곤 오줌도 안눠요
교사란 직업을 안좋게 보게 만든 곳이죠.
부모님이 야자는 빼달라고 허락을 해도... 거의 안빼줬습니다.
이후로는 그냥 유령이 되었습니다.
전수 학교 탈피를 위한
좋은학생 배정에 의해 한때 좋았죠 !
그 피해는 내신으로 상문고 재학생 들 !!
94년도에 제가 입학하던 시기에 상문고 비리 터지고, 교복 선정하고, 슈카...석재가 전교에서 놀던때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입학하던 첫날 두발정리 제대로 안해서 테니스채로 머리대고 바리깡으로 밀던 학교였으니 말 다했죠.
지각하면 그 긴 오르막과 운동장을 앉은뱅이걸음으로 올라가던 기억이 있네요. 겁나 빡쎘는데...ㅠㅠ
83년생이면 교복이 정착하던 시기네요.
아마도 자율학습을 가장한 줄세우기로 독서실 무조건 입장시키던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네요.
저 교수가 중퇴를 했다는 내용이 상당히 이해가 갑니다.
94년도였으니 94년도에 상문고 재학생들이면 76년생에서 78년생이 당시 현역 고등학생이였죠.
지인 중에도 상문고 출신 형들이 있었는데 예전에 장난 아니였다고 하더라구요.
수학적인 교양이 자연스레 쌓일 수가 있었나봐요...
고딩때 제 짝궁도 아버지가 근처 국립고등학교 물리샘이었는데...
애가 물리시간에 딴 공부를 하더라는...ㅎㅎㅎ
85년에 뺑뺑이로 서울고 배정받아서 다녔습니다.
그당시 상문고 배정받은 애들은 중3 겨울방학때 천자문을 10번(횟수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시절 다니셨던분들 확인 부탁합니다.)인가 써서 입학식때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서울고하고 등교시간이 동일해서 그당시 87-1, 1번 두개 버스는 등교시간에 버스가 아주 꽉꽉차서 다녔는데 어느날 보니 상문고에서 등교시간을 조정해서 조금 널널해졌죠. 근데 그게 30분을 당긴거였습니다.
87-1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기억에 입학기수 숫자만큼 써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10기면 10회 11기면 11회...
미국 프로야구선수 데이터만 가지고 어떤 선수인지 유추해보라는 수업이 있었죠. ㅎㅎ
무슨 야자? 그리고 댓글들에 무슨 이리 유언비어가 많습니까?
비리 이사단이 나간건 제가 다닐때 보다 더 윗세대였고,
그 이사단이 복귀 조짐이 보이자 학생들이 시위를 한거였고
테니스체도 그냥 농담이고, 저희때는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루머가 진실 처럼 말씀들 하시네요.
당시 상문고 배정받으면 싫어하진 않았습니다. 경문고 배정받은 애들은 얼굴이 안좋았지만..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고.. 그 앞에 골프연습장 팔아먹고..
저 교수분보다 조금 어린데 경기도의 평범한 학교를 다녔습니다.
야자 필수 참석, 1학년 땐 10시까지 2,3학년은 11시까지 야자였습니다.
누구 한 명 빠지기 시작하면 분위기 나빠진다고 열외 없이 모두 다 학원 이든 뭐든 못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밤 12시에 과외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교회 다니는데 교회도 못 가게 해서 (고3땐 주말도 8시 - 5시 무조건이었어요..)
부모님이 선생님 찾아가서 사정하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원 야자를 한 건 아니고 반에서 5등까지만, 총 20개 반이니 100명 대상으로 모아서 교무실동 윗층의 독서실같은 곳에 몰아넣고 야자 시켰던 기억이 나네요.
입학하자마자 처음 며칠 해봤는데 (그땐 나름 공부를:::쿨럭) 일주일하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담임에게 도저히 못하겠다고 빠졌습니다. 허교수는 담임이 그걸 용납 못해준걸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