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말고단거님 저는 학자로서도 표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정도의 영향 관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김지하의 시와 엘뤼아르의 시는 "이름을 쓴다"고 하는 모티브만 동일하지 전개방식, 이미지, 언어, 무엇보다 반영된 역사적 맥락과 주제의식이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그의 논쟁적 행보와 다르게 평가할 문제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가 표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김지하의 초기 시집을 정독해보시고 그의 초기 시작 안에서 "타는 목마름으로"가 얼마나 일관된 작가적 의식으로 쓰여졌는지 생각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나타샤와님 우리의 민주화에 대한 기억과 역사는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 내부의 모순과 문제들에 대한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반성과 비판은 우리 사회에서 철저하게 억압되어 있고 억압되어 왔습니다. 김지하의 논쟁적 행보는 70-80년대 한국 민주화 세력의 내부 모순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년 행보를 옹호하거나 동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단순히 그 자신의 행보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를 변절자로만 치부하기에는 우리 민주화 역사를 바로 세우는 문제에서 훨씬 더 깊고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michael120
IP 183.♡.14.202
05-08
2022-05-08 19: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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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_within님// 보통의 시들은 그런 모티브도 동일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언어가 다르다고요? 당연하죠 프랑스 시와 언어가 다르다는 말을 왜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프랑스인이 한국어로 시를 썼겠습니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변절자의 일관적 작가적 의식 같은 건 관심 없고요. 작가는 작품으로 평가 받는 겁니다.
“이 댓글에서 ‘언어’의 의미에 대해 화자가 의미하는 바를 서술 하시오. (주관식 5점)”
1941년생이니 의외로 연세가 꽤 많으셨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표절.
변절.
창작자와 시민으로 버린 양심은 영혼과 함께 지옥에서 불타길 바랍니다.
세월이 무상합니다.
김지하도 가다니....
본인은 욕도 안하고 명복도 안빌겠읍니다
김지하 시인의 90년대 이후 언행에는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캄캄한 어둠의 시기에 그의 시에서 빛을 느꼈던 한 사람으로서 애도를 표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안식을 얻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