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비효율의 극치인 전투로 보이겠지만, 저 당시 유럽에서는 저런 전투 방식이 최선이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주요 무장으로 쓰이던 총기인 머스킷 소총의 유효 사거리가 상당히 짧았기 때문에, 근접 전투를 벌일 수 밖에 없었죠.
머스킷 소총의 사거리가 짧다 보니까 매복, 엄폐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고, 그래서 드넓은 벌판에서 격전을 벌이는 것이
당시 유럽의 전쟁 양상이었습니다. 서로 가까이 갈 때까지 행진을 멈추지 않다가 가까이에서 접근하면 그제서야 총을 쏘는방식..
엄폐, 매복하면서 싸우는것도 소용이 없다 보니까 군복의 색상도 화려해졌는데, 프랑스군은 주로 파란색이 메인인 군복, 영국군은 빨간색이 메인인 군복을 주로 입었습니다. 지금에서보면, 매우 어리석은것인데 군복의 색상이 저렇게 튀면 표적이 되기 딱 좋지요.
게다가 머스킷 소총 사거리가 짧고 소총 장전 시간도 짧은 문제가 있었다 보니, 1분에 2~3발의 총알을 쏠 수 밖에 없어서 최대한 사거리에 맞춰 싸워야하는게 효율적인 전투 방식이라 총을 먼저 쏘는 쪽이 불리했습니다.
지금과는 전쟁방식 교리가 매우 다른...
연사력이 너무 느리니까요.
연사력이 느려도 총검을 이용한 방진 때문에 정면에선 전열을 뚫는게 상당히 어려웠어요
전열로 일단 막고 기병으로 측면이나 후방을 치면서 치고 빠지기를 하면 기병때문에 기존 넓은 전열에서 사각 방진으로 병력이 밀집되는데 거기다 대포를 쏘면 볼링핀 스트라이크 나듯이 병사들이 갈려나갔죠
밀집 방진에 대포 한두발 물수제비 튀듯 튕겨가면 그줄은 그냥 고깃덩이 되기가 일수였습니다
총과 방진의 등장이후 기병은 망치역할을 거의 못했어요 정찰과 적의 보병진을 묶거나 모는 양치기개의 역할을 했죠
일반인을 숙련된 화살병으로 양성하려면
훈련기간이 년단위입니다.
활시위 당기는 근력 없으면 쏘지도 못하죠.
그러데 총은 훈련 몇십분만 하면 누구든지 첫발을 쏠 수 있습니다.
걔들은 2열로 서있다가 한열씩 돌아가면서 쐈으니...
거기에 실제 전투 현장 발굴 결과에서도 발견된 탄환 숫자가 너무 적어서 요즘은 삼단 철포는 후대에 만들어저 부풀려진 이야기로 알고 있어요
전열보병은 총자체가 창의 역할을 해서 별도의 창병이 필요 없습니다
또 활은 숙련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효용성이 없었고요
총이 대세가 된지라 숙련된 궁병을 구하는게 더 어려웠죠
반대로 조선은 총이 주력이 되어 대부분 화승총병이 주력이 되었지만 활이 대중적이라 숙련된 궁수 확보가 쉬어
병행으로 상당이 오랫동안 유지 되었습니다
문제는 프린트락머스켓이 없었고 총도 개머리판 없어 짧은 편이라 30년 전쟁 때와 비슷하게 별도의 창병이나 검병이 필요했지요
대신 조선 화승총병들의 숙련도는 최고 수준이긴 했습니다 화승총으로 최신식 플린트락 머스켓을 든 러시아 총병을 탈탈 털어버릴 정도 수준이었죠 개머리판도 없는 소구경 화승총으로 원거리 저격을 하시던게 우리 조상님들이죠
청나라 총병의 두배이상의 명중율을 자랑했죠 유럽의 라이플 병 만큼 명중율을 보일정도 인지라
저 방패는 수성하는 용도지 돌격용은 아닙니다.
공격하는 측도 현지에서 쉽게 만들어서 사용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나무라 가벼워서 가능했죠.
일반 활은 시위 당길 힘과 훈련이 많이 필요해서 비싸고, 시위를 반자동으로 당겨놓는 석궁은 강도가 약하고 비용이 비쌌지요.
총은 일정 이상 산업화만 달성하면 쇳물로 찍어내면 되고 방아쇠만 당기면 나가지요.
장전 방식만 주입식으로 반복훈련하면 교육수준이 낮아도 되니까요
/Vollago
조선에도 총이 널리 사용된것도 짧은 훈련기간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짧은 훈련기간만으로도 병력을 많이 뽑을 수 있고, 진영을 갖출 경우 엘리트 병과라고 할 수 있는 기병대도 쉽게 견제할 수 있고,
훗날 청나라 박살낸것만 봐도...
건들건들 유튜브채널에서 관련 내용(알마전투) 다룬게 매우 흥미롭게봤어서 올려봄미다.
청나라 군대가 저 방식의 유럽하고 붙어서 개박살 났다고 하더라구요...
4분경 부터 전열보병 전투 방식이 나온 연유와 그 이후로 바뀌어가는 전투방식까지.. 흥미 진진합니다..
그리고 후장식 소총이 나오고 기병대는 전멸합니다 (...)
영화 <워호스> 중에서 기병대 격퇴 장면 덧붙입니다!
그런데 전열보병보다 더 잔혹한 전투양상이 된 시기는 오히려 탄피형 소총으로 총기가 발전하고 음폐엄폐를 하기 시작한 이후 정착된 20세기 초반 참호전이죠.
육성했죠
그 설명을 듣고 패트리어트를 보니 그런 대목이 나오더라구요. 멜깁슨이 장교들만을 노려서 죽이니, 남부군 장군이 멜깁습에게 장교를 죽이면 병사들이 지휘가 안되니 장교들만 노리는 비신사적인 행위를 중지하라구요.
사회에서 적응 못하고 할거 없는 사람이 끌려가는게 군대였거든요
나폴레옹 군대가 훈련도가 개판인데도 다른나라 군대를 정복할수 있었던 이유가 그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러시아군 군대가 훈련도는 완전 개판인데 의외로 보병전에서 강했던 이유도 그렇고요
러시아군은 도로망 개판에 너무 멀어서 전투에서 진다고 병사들이 와해되고 탈주하지 않고 재집결이 잘되었다고 하더군요
전장에서 총맞아 죽는거 보다 고향으로 돌아가다 굶어죽는게 더 무서웠다고......
뭐 이미 다 생각했었겠죠 ... 저도 생각할정도면.
어짜피 명중율이 그닥인지라 얼마나 동시에 많은 숫자의 총을 발포하느냐가 더 중요 했지요
거기다 당시에 실제 화약으로 사격훈련을 정기적으로 할수있는나라가 영국이 유일했습니다
화약이 비싸고 플린트 부싯돌도 상당히 고가의 전략물자였습니다
당시 영국 제외한 대부분의 전열 보병들이 입대한 후 한번도 실탄사격 해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총도 똑같은거지요
활 좋은건아는데 교육시키는건 어렵고
결국 교육기간이 짧고 인적자원 필터링이 불가능한 국민개병일땐 전열진으로 전진을 강제시키는게 당시의 답이죠 튀면 뒷선서 죽일테니 100퍼 죽는데 전진은 살희망이라도 있으니까요
궁수부대와 소총수부대가 전투했을때 종합적인 측면에서 소총수부대가 더 나았기 때문에 궁수부대가 없어진 것이지요.
열맞춰 진격하는 남부군을 북부군이 소수의 병력으로 조준 사격해서 격파.
머스킷의 치명 사거리는 짧지만, 근거리내에서 파괴력이 기존의 플레이트 아머도 뚫을 정도 입니다. 활의 파괴력과는 차원이 다르죠.
그러니, 갑옷입고 느리게 접근하다간 머스킷에 치명타를 입게 되니, 갑옷을 벗고 근접 총 공격 후, 재장전 전에 돌격이 최선의 전투 방식이었던 겁니다.
기사는 비싸고, 창술 검술도 훈련시키기엔 비싸고, 활도 근력 키우려면 고급인력 써야 할테고... 삼총사 생각하면 총사가 검술 등한시한건 아닌듯 하지만, 기사 대비 동네 건달 느낌도 좀 있죠.
후장식 소총 써서 일어설 필요가 없게 된 시점부터 엄폐하여 싸운걸로 알고 있습니다. (독일 기술력!) ... 결국 포병(나폴레옹)이 승리한다로 결론이 나지만요....
활을 쓰면 갑옷과 방패로 다시 무장하죠...총이 활을 밀어낸게 갑옷과 방패 모두 그냥 뚫어버리는 장점이..
그리고 연기가 많이 나서 안보여서 멀리서 못쏩니다. 저렇게 쏘다가 백병전이 되죠. 그때 뒤에서 기병들이 닥치고요..
저게 엄청 머리싸움이 장난이 아닙니다. 대충 백병전 되기 전까지 3발 정도 쏜다고 합니다. 양쪽에서 6번에 총성이 울리면 백병전으로 바뀝니다. 한마디로 백병전 하기전에 더 많이 죽이자예요.
그러면 왜 붙어 있냐..머스켓은 집단으로 일제 사격할때 효과가 발휘 됩니다. 조준력이 완전 랜덤이라서...
싸움양상이
기병이 주변에서 계속 돌고요. 진영대 진영이 어딜 때릴지 간도 보고
단순하지 않아요.
만약 동양에서 청 조선 일본이 동시에 머스켓이 보급되고 그랬으면 유럽처럼 싸웠을 겁니다.
청은 계속 유목기병유지 했고
조선과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로 무기가 전혀 발달이 안됐죠.
조선과 일본 조총은 아퀴버스라는 사냥용 총입니다.
나선 정벌이후 머스킷 노획후 개발도 했었는데 결론은 화력은 좋은데 의외로 불발율이 높고 화약 소모량도 많고 명중율도 그닥이라 다시 화승총을 썼죠
우리나라에선 질좋은 부싯돌이 안나옵니다.
조선이나 중국은 초석의 저율 생산이 가능했지만 충분치는 않아서 화약이 귀했지만 전쟁도 많지 않아서 그럭저럭 대포를 개발해 사용한거죠.
서구는 인도와 아메리카에서 구아노 초석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화약무기가 대중화되고 고만고만한 나라끼리 매일 치고 받으며 싸우니 화약무기 발전이 가속화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