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신하를 함부로 죽이지 못하도록 못박았던 송태조 조광윤. 이후 멸망할 때까지 송의 후대 황제들은 이 원칙을 거의 따르게 됩니다. 이는 왕조국가들 사이에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례죠.
후대 왕조였던 원, 명, 청나라까지 송대의 인권 의식을 앞지르지 못했고 오늘날의 중공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중국 역사에서 가장 저평가된 나라가 송이라고 개인적으로 봅니다. 당시 천하무적이었던 몽골족이 아니었다면 4백년의 한나라만큼이나 조명을 받았을지도요.
이걸 보고 리틀 송을 꿈꾼 조선은 송 멸망 100여 년 후에나 사대부의 나라를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조선은 당대와 송대의 장점을 취하고자 했고 이를 고도화하게 되죠.
임진왜란 이전까지 전쟁과 약탈이 일상이었던, 전세계사적으로 드물게도 무려 2백년이나 지속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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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5145
IP 147.♡.35.100
21-12-07
2021-12-07 20:17:07
·
@baroniace님 근데 송은 몽골 없었어도, 금나라, 요나라한테 털려서...
baroni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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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5209
IP 59.♡.96.249
21-12-07
2021-12-07 20:20:24
·
진천명님// 몽골족이 칩입한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오래 버틴 나라가 송과 고려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송은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만큼 다른 방도로 해결했을 가능성도 배제 못합니다.
a2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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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6865
IP 39.♡.38.81
21-12-07
2021-12-07 21:35:12
·
@진천명님 금도 요도 남송에서 나오는 경제력때문에 결국 못이겼...
하얀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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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8120
IP 211.♡.11.238
21-12-07
2021-12-07 22:27:46
·
@baroniace님 세계 역사상, 인류의 문명 수준이, 당시의 송을 넘어선 것이 영국의 산업혁명 때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살짝 가물가물 한데, 송이 몽고의 공격을 5년 이상 버티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도 5년 못 버텼죠. 송과 고려만이 몽고의 진격을 오랫동안 저지했던 나라인 것 맞습니다.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가'에도 당시 송의 수도였던 카이펑의 경제력이 어떠했는지 묘사하는데, 환상적이었습니다.
포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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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8440
IP 125.♡.44.217
21-12-07
2021-12-07 22:40:56
·
@baroniace님 고려는 버티지 못했습니다 국사책이 좀 잘못 서술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같은논리라면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전쟁에서 중화민국이 타이완으로 수도를 옮기고 중국본토 방어중으로 볼수있어요
당시 무신정권은 몽골이 쳐들어오던 말던 섬만 지키고 본토는 점령되든 말든 신경안썼습니다 강화도에서 지휘한게 아니고요
r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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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8830
IP 223.♡.219.167
21-12-07
2021-12-07 22:58:13
·
@포톤7님 그랬으면 쌍성 총관부처럼 진즉에 영토가 몽고에게 뜯겨 나갔겠지요. 무신정권이 몽고군 주력과는 안싸워도 작은 반란이라도 터지면 쥐잡듯이 잡으며 영토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휘를 않한것도 아닙니다. 그 지휘라는게 몽고군 쳐들어오면 소개하고 산성으로 튀라는 준칙 하나 뿐이어서 문제였던 거지요.
MD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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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9070
IP 173.♡.64.83
21-12-07
2021-12-07 23:10:00
·
@baroniace님 송이 문화적으로 찬란했던 것은 맞지만, 그 이후의 몽고족의 원나라 시대에도 매우 선진적인 발전들도 있었습니다. (국제도시화, 실크로드 다시 시작, 동서간 경제 교류 촉진). 또한 송대에 많은 과학 /문화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도 명확했고요.
baroni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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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9409
IP 59.♡.96.249
21-12-07
2021-12-07 23:28:39
·
포톤7님// 네, 물론 말씀대로 끝까지 버텼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오랫동안 저항했다는 말이 더 정확한 말이겠지요. 천하무적이던 몽골군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고려의 저항이 심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겠지요.
틀린 말씀이 아니신데 만일 정권 차원에서 빨리 항복하였다면 전후 양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고려라는 나라가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풍속까지요. 한때 문화가 찬란했던 송나라가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로 잿더미가 됐듯이 몽골제국은 지구상에서 손꼽힐 만큼 잔학했던 나라입니다.
그래서 고려사를 접한 세종이 국난 극복에 최선을 다한 고려의 원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있는 거겠죠. 고려라는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몽골제국에 새긴 덕분에 유일하게 왕조를 지켜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우리의 풍속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죠.
포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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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9970
IP 125.♡.44.217
21-12-08
2021-12-08 00:02:54
·
@baroniace님 고려 본토는 사실 무저항으로 함락되었습니다 풍속이고 뭐고 다 갈려나갔어요 정예병력은 짱박아두고 몽골군이 본토로 돌아가면 다시 한반도를 통제하고요 쳐들어오면 다시 짱박혀서 안나옵니다 백성 학살하든 강간하든 그냥 내버려둡니다
국사책이 좀 그런식으로 유도합니다 고종때 간도조선땅설, 김구가 중도우파 내지 좌파로 오해받게 기술하는 등 교묘한 서술들이 국사책에는 있습니다 오해하게 기술해놓고 니가 오해했을뿐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식으로요
한반도를 직접 복속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청나라도 인조한테 항복받고도 조선은 조공국으로 유지됩니다
그냥 한반도가 옛날에는 계륵이었던 거예요
포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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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70253
IP 125.♡.44.217
21-12-08
2021-12-08 00:21:48
·
@baroniace님 좀 드라이하게 서술된 것만 읽으면 대만처럼 강화도 하나만 점령안됐구요 몽골은 돈뜯어가는 조건으로 회군합니다 그냥 식민지 그리고 돈 안주니까 또 점령하고요 애초에 눌러앉을 작정이면 한반도에 주둔 통치하면 됐어요 근데 가성비가 안나오니 안한거죠 처음부터 몽골제국의 목적은 삥뜯기는 신하국이 되라지 합병하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단군이 부동산 사기당한게 아니고 꿀땅에서 시작했으면 그냥 몽고 직접지배 받았을 거라는거죠
불량게임제조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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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70454
IP 182.♡.179.22
21-12-08
2021-12-08 00:35:28
·
@baroniace님 역대 왕조 중에 거의 유일하게 송나라는 멸망때 배신자가 없었습니다. (삽질은 많이 했지만...) 모든 사대부들이 끝까지 저항하다가 바다까지 밀려가서 죽었습니다. 왕조차도 바다 위에서 자살했고요. 사대부를 예우했기때문에 나라에 보답한 것이겠지요. 보통 예우하면 뒤에 가서 버르장머리가 없어지는데...
baroni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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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70768
IP 59.♡.96.249
21-12-08
2021-12-08 01:06:01
·
포톤7님// 반은 맞고 반은 틀리네요.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개정해나가기 때문에 수십 년 전의 국사책은 말씀대로 뭉뚱그려지게 서술돼 있는 건 맞습니다. 재미도 없었구요. 그래서 저도 이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모두가 인정하고 있듯이 중국과 일본의 역사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은데 우리나라 국사는 희한하게도 축소된 형태를 띄우고 있습니다. 즉 중국과 일본에 비해 역사적으로 과소평가된 측면이 없진 않다는 것이죠. 그만큼 불태워진 사서도 워낙 많다보니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의 시선으로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과거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는 100% 정확히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왕조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명백하죠. 중국의 왕조들은 살아남지 못했는데 한반도의 왕조들은 왜 극적으로 살아남았을까. 이게 단순히 요행으로 이뤄진 일이었을까.
쿠빌라이가 타국과 달리 전례없이 왜 고려의 문화와 풍속을 인정하고 남겨두었는지, 천하의 당태종을 물리친 한반도의 이야기를 천하의 쿠빌라이가 왜 언급을 하였고, 심지어 몽골제국 입장에서 고려만큼 특별대우 받은 나라가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그것도 요행으로 이뤄진 일이었다고 여기십니까?
고려는 싸웠든 싸우지 않았든 간에 어떻게든 외교력으로 살아남은 것은 부정할 수는 없겠지요. 그 외교력으로 멸망 직전까지 갔던 신라가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고려 역시 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교력으로 요나라를 물리친 역사가 있죠. 물론 나중에 전쟁을 벌이게 돼서 승리를 거두기는 하지만 일단 시간 끌기에는 성공은 했죠.
그렇다면 상대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당시 유라시아 대륙을 떨게 했던 몽골 제국을 상대로 어찌해야 할까요? 한반도가 만일 그냥 계륵이었다면 왜 일본까지 침공하려고 했을까요? 일본으로 건너 가려면 한반도를 거쳐가야 하는데 말이죠.
또 왕조의 정통성 때문에 고려라는 이전 왕조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 밖에 없는 조선의 입장에서 세종이 왜 고려의 원종을 높이 평가를 했을까요. 그것도 고려 초중기도 아니고 암담했던 고려 중말기인데도요. 한참 까여도 부족할 판인데도요.
한반도를 직접 복속하지 않은 이유는 산지가 많아서 지형적으로 요새화되어 있는 부분도 없진 않지만 과거 한반도에 대한 반전 스토리를 당태종 관련 일화처럼 타국에서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지 못하고 있었다면 행운에 가까운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또 임진왜란 때도 조선을 '강대국' 고려를 이은 나라로써 원군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던 명나라 관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렇게 수많은 의문점이 존재해 있는데 그냥 계륵으로 치부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조선이 조공국이든 아니든 간에 청나라 주변 국가들처럼 강제로 '합병'되지 않았고 풍속 역시 살아남았죠. 청나라 주변 국가들은 변발을 강요했는데 조선은 예외였죠. 그것도 요행일까요?
차라리 단순히 지형적인 이점이 큰 요인이라고만 말씀을 하셨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릅니다.
백성 학살이든 강간이든 그걸 '내버려둔다는 것'은 이를 주목하는 현대인들의 시선으로 본 것이지 과거 당시는 나라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민족도 인간 대우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원나라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은 것은 어떠한 이유로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해석도 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아니면 다른 나라들은 고려와 똑같이 취급을 받았나요?
따라서 '인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권을 가진 현대인들의 생각이지 과거 역사를 토대로 봤을 때 '내버려둔다는 말'이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baroni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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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70849
IP 59.♡.96.249
21-12-08
2021-12-08 01:14:46
·
무하하님// 네 저도 이 사실을 접하고 놀라워 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사대부들이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어했나 봅니다. 왕의 나라가 아닌 나라를요.
송나라는 중국 문화의 정수라고 불릴만큼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였죠. 그런 송나라에서 거드름 피우던 강국이 고려였구요 ㅋㅋ 특히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 후 그 기세는 송나라를 압도했습니다. 그 예로 송나라에 명목상 조공하며 무역을 했던 고려인들은 송의 대신들을 압박해 삥 뜯어가는건 예삿일이고, 송나라의 연호도 쓰지 않았는데, 하도 송 조정에서 뭐라 하니까 당나라 연호로 화답할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당대 대문호이던 소동파가 고려 금수론을 내세우며 고려인의 해악을 요목조목 따졌겠습니까... 어쨌든 역사는 돌고 도는데, 지금은 국방이 튼튼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중국 문화중 동시대 전세계에서 가장 찬란했다고 하는 송나라도 별 것 없었네~ 하고 스크롤을 내리면서 반성하였습니다. ㅎㅎㅎㅎㅎ
쩌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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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7613
IP 118.♡.100.221
21-12-07
2021-12-07 22:04:55
·
근데 파노라마가 360도가 아니라 720도 아니 1800도는 되어 보이는 느낌이…
Ursa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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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7659
IP 183.♡.3.34
21-12-07
2021-12-07 22:07:07
·
엄청난 그림이네요.
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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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7697
IP 125.♡.218.215
21-12-07
2021-12-07 22:08:40
·
정말 예술이네요
블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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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7795
IP 125.♡.66.126
21-12-07
2021-12-07 22:13:01
·
음.... 파노라마 화풍이군요.
제발착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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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7915
IP 61.♡.48.45
21-12-07
2021-12-07 22:18:40
·
에이지오브엠파이어 송나라네요
kam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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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7967
IP 203.♡.187.92
21-12-07
2021-12-07 22:21:04
·
900년 전이라니. 엄청난 도시네요.
wonder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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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8133
IP 223.♡.155.3
21-12-07
2021-12-07 22:28:50
·
그런데 윗분들 댓보니 청명상하도라는데 아닌것 같다는 느낌이... 교과서에서 보던 청명상하도의 그림과 다른것 같아서요.
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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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8155
IP 116.♡.178.67
21-12-07
2021-12-07 22:29:49
·
저는 뜬금없이 경주 박물관에 있는 신라시대 가장 융성했던 도시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 시대에 저럴 수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문화라는 게 시대가 지나면서 꼭 더 좋아지는 건 아니더라구요. 이 그림을 보니 신라시대 경주의 모습도 진짜 그랬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되네요. 가보고 싶네요.
너무 오래전에 알아봐서 진짜 기억이 희미한데 .. 저는 도올 선생이 2000년대 초에 티브이에서 전시회를 소개해줘서 예술의 전당에서 실물?을 봤습니다. 그 닿때 본 그림은 굉장히 묘사가 세밀하고 색침? 같은 것으로 찍어 그린 듯한 세밀화였어요. 마치 인쇄물을 보는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그게 당연히 오리지널일거라고 생각했죠..나중에 십년도 더 지나 그 강렬했던 기억을 확인해 본다고 서치를 좀 했는데 오리지널 수묵화가 따로 있더라구요. 본문은 후대 모사본일 겁니다..
이를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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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71034
IP 182.♡.97.137
21-12-08
2021-12-08 01:35:25
·
좀 찾아보니 본문의 그림은 청나라 때 그린 "청원본"이라는 모사본이네요. 맨 위 낙관부?를 보면 '건륭춘삼월'이라는 한자도 보입니다. ^^
청명상하도 로군요. 여기서 보게 되니 반갑네요. ^^ 중국은 국보를 번호를 메기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꼽는 국보 1호 설문조사에서 늘 1위를 하는 중국 최고의 보물이지요. 사실 역사나 사료적으로 더 중요한 것도 있지만요. 측천무후의 건릉이 발굴되서 전설로만 전해지는 왕희지의 '난정서' 원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부동의 1위가 아닐까 싶네요. 유튜브에 보니 미디어월로도 구현했던데 멋지더라구요. 왕희지의 난정서는 중국의 <모나리자> 같은 작품이라 원본이 발견되면 빚을 내서라도 보러갈 용의가 있습니다. 관련 인문학자로 난정서는 중국고궁박물원에 있는 후대 모사본이 제일좋지요. 수십명의 대가들이 감히 도장 하나를 떨면서 장서인을 찍은 글씨. 가치를 메길 수 없다고 하는데, 거기에 커다란 도장이 찍혀 있지요. <진당심인> 기억이 맞다면 당태종이 난정서를 3부 베껴쓰라고 당대 최고의 서예가들에게 시켜 남은 한 본이 대만에 있는 것으로 원본급의 취급을 받습니다. <진당심인>은 이 작품이 위조된 것이 아닌 진품이고 누구도 위조할 수 없음을 진나라(사마의의 그 진나라입니다.)와 당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도장을 찍었다.는 전설적인 글씨입니다. 대만에 가서 보고싶네요. 갑자기.... 코로나 전에 꼭 갔어야 했는데..
낭만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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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70732
IP 175.♡.136.116
21-12-08
2021-12-08 01:01:47
·
중국에서 청명상하도로 만든 미디어 작품입니다. 규모가 엄청나다고 이야기만 들어왔네요.
4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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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71195
IP 175.♡.105.249
21-12-08
2021-12-08 01:55:53
·
@낭만지리님 잔잔하게 너무 이쁜데요
바닐라플랫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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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71266
IP 219.♡.76.172
21-12-08
2021-12-08 02:08:22
·
낚시가 아니었다니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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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엄청나게 길군요 ㄷㄷㄷ
다시 찬찬히 올라가면서 봐야겠어요 헐...
'문송文宋'
(근데 목돌아 갔습니다 ㅠ)
그림만으론 살기 좋아뵈네요 ㅎ
가로 528.7㎝, 세로 24.8㎝
한쪽 귀퉁이에 고려인의 모습도 보인다 하니 찾아봅시다. ^^
수궁인가?
황제가 신하를 함부로 죽이지 못하도록 못박았던 송태조 조광윤. 이후 멸망할 때까지 송의 후대 황제들은 이 원칙을 거의 따르게 됩니다. 이는 왕조국가들 사이에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사례죠.
후대 왕조였던 원, 명, 청나라까지 송대의 인권 의식을 앞지르지 못했고 오늘날의 중공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중국 역사에서 가장 저평가된 나라가 송이라고 개인적으로 봅니다. 당시 천하무적이었던 몽골족이 아니었다면 4백년의 한나라만큼이나 조명을 받았을지도요.
이걸 보고 리틀 송을 꿈꾼 조선은 송 멸망 100여 년 후에나 사대부의 나라를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조선은 당대와 송대의 장점을 취하고자 했고 이를 고도화하게 되죠.
임진왜란 이전까지 전쟁과 약탈이 일상이었던, 전세계사적으로 드물게도 무려 2백년이나 지속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가'에도 당시 송의 수도였던 카이펑의 경제력이 어떠했는지 묘사하는데, 환상적이었습니다.
당시 무신정권은 몽골이 쳐들어오던 말던 섬만 지키고 본토는 점령되든 말든 신경안썼습니다 강화도에서 지휘한게 아니고요
틀린 말씀이 아니신데 만일 정권 차원에서 빨리 항복하였다면 전후 양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고려라는 나라가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풍속까지요. 한때 문화가 찬란했던 송나라가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로 잿더미가 됐듯이 몽골제국은 지구상에서 손꼽힐 만큼 잔학했던 나라입니다.
그래서 고려사를 접한 세종이 국난 극복에 최선을 다한 고려의 원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있는 거겠죠. 고려라는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몽골제국에 새긴 덕분에 유일하게 왕조를 지켜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우리의 풍속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죠.
국사책이 좀 그런식으로 유도합니다 고종때 간도조선땅설, 김구가 중도우파 내지 좌파로 오해받게 기술하는 등 교묘한 서술들이 국사책에는 있습니다 오해하게 기술해놓고 니가 오해했을뿐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식으로요
한반도를 직접 복속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청나라도 인조한테 항복받고도 조선은 조공국으로 유지됩니다
그냥 한반도가 옛날에는 계륵이었던 거예요
단군이 부동산 사기당한게 아니고 꿀땅에서 시작했으면 그냥 몽고 직접지배 받았을 거라는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모두가 인정하고 있듯이 중국과 일본의 역사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은데 우리나라 국사는 희한하게도 축소된 형태를 띄우고 있습니다. 즉 중국과 일본에 비해 역사적으로 과소평가된 측면이 없진 않다는 것이죠. 그만큼 불태워진 사서도 워낙 많다보니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의 시선으로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과거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는 100% 정확히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왕조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명백하죠. 중국의 왕조들은 살아남지 못했는데 한반도의 왕조들은 왜 극적으로 살아남았을까. 이게 단순히 요행으로 이뤄진 일이었을까.
쿠빌라이가 타국과 달리 전례없이 왜 고려의 문화와 풍속을 인정하고 남겨두었는지, 천하의 당태종을 물리친 한반도의 이야기를 천하의 쿠빌라이가 왜 언급을 하였고, 심지어 몽골제국 입장에서 고려만큼 특별대우 받은 나라가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그것도 요행으로 이뤄진 일이었다고 여기십니까?
고려는 싸웠든 싸우지 않았든 간에 어떻게든 외교력으로 살아남은 것은 부정할 수는 없겠지요. 그 외교력으로 멸망 직전까지 갔던 신라가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고려 역시 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교력으로 요나라를 물리친 역사가 있죠. 물론 나중에 전쟁을 벌이게 돼서 승리를 거두기는 하지만 일단 시간 끌기에는 성공은 했죠.
그렇다면 상대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당시 유라시아 대륙을 떨게 했던 몽골 제국을 상대로 어찌해야 할까요? 한반도가 만일 그냥 계륵이었다면 왜 일본까지 침공하려고 했을까요? 일본으로 건너 가려면 한반도를 거쳐가야 하는데 말이죠.
또 왕조의 정통성 때문에 고려라는 이전 왕조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 밖에 없는 조선의 입장에서 세종이 왜 고려의 원종을 높이 평가를 했을까요. 그것도 고려 초중기도 아니고 암담했던 고려 중말기인데도요. 한참 까여도 부족할 판인데도요.
한반도를 직접 복속하지 않은 이유는 산지가 많아서 지형적으로 요새화되어 있는 부분도 없진 않지만 과거 한반도에 대한 반전 스토리를 당태종 관련 일화처럼 타국에서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인지 못하고 있었다면 행운에 가까운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또 임진왜란 때도 조선을 '강대국' 고려를 이은 나라로써 원군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던 명나라 관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렇게 수많은 의문점이 존재해 있는데 그냥 계륵으로 치부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조선이 조공국이든 아니든 간에 청나라 주변 국가들처럼 강제로 '합병'되지 않았고 풍속 역시 살아남았죠. 청나라 주변 국가들은 변발을 강요했는데 조선은 예외였죠. 그것도 요행일까요?
차라리 단순히 지형적인 이점이 큰 요인이라고만 말씀을 하셨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릅니다.
백성 학살이든 강간이든 그걸 '내버려둔다는 것'은 이를 주목하는 현대인들의 시선으로 본 것이지 과거 당시는 나라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민족도 인간 대우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원나라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은 것은 어떠한 이유로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해석도 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아니면 다른 나라들은 고려와 똑같이 취급을 받았나요?
따라서 '인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권을 가진 현대인들의 생각이지 과거 역사를 토대로 봤을 때 '내버려둔다는 말'이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매우 공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거 비슷할 겁니다. ㅎㅎ
하지만 중국대륙이나 한반도나..
만주지역을 고조선시절부터 천년넘게 주름잡았던 예맥족(고구려,백제)을 소멸시킴으로서
거란 여진이 발흥하는 대 참사를 야기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발해가 그나마 버텨주긴했지만
패전국의 유민이 세운 나라는 보통 그리 오래가진 못하더라구요.
사실 중국왕조의 수명을 생각하면 200년 발해 또한 나름 오래가긴했지만요
고맙습니다.
다행이면서 한편으론 아쉽긴 하네요
네. 실제로 있던 다리 맞습니다.
720도 아니 1800도는 되어 보이는 느낌이…
교과서에서 보던 청명상하도의 그림과 다른것 같아서요.
불화라서 과장됨이 들어간건 사실이지만
일본 중국 태국의 불화를 보더라도 보통 당대의 건축문화를 많이 반영했더라구요
현존하는 경회루 보다 한층이 더 높고 기둥도 용으로 조각했었죠..
문화란것이 보통 위로만 가진 않더라구요.
칠협오의도 저 시절에 강호를 주름잡던... (*/ω\*)
(애호 귀여워요 애호)
송나라 때 오리지널입니다.
전체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보세요.
https://m.blog.naver.com/choindy/221809787638
보다보니 파노라마 빰칩니다
진짜 잊을수가 없어요 ㅎㅎ
당대의 생활상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너무 좋았어요
잘 찾아보면 그림속에 고려인의 모습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ㅎ
잘 봤습니다
측천무후의 건릉이 발굴되서 전설로만 전해지는 왕희지의 '난정서' 원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부동의 1위가 아닐까 싶네요.
유튜브에 보니 미디어월로도 구현했던데 멋지더라구요.
왕희지의 난정서는 중국의 <모나리자> 같은 작품이라 원본이 발견되면 빚을 내서라도 보러갈 용의가 있습니다.
관련 인문학자로 난정서는 중국고궁박물원에 있는 후대 모사본이 제일좋지요. 수십명의 대가들이 감히 도장 하나를
떨면서 장서인을 찍은 글씨. 가치를 메길 수 없다고 하는데, 거기에 커다란 도장이 찍혀 있지요. <진당심인>
기억이 맞다면 당태종이 난정서를 3부 베껴쓰라고 당대 최고의 서예가들에게 시켜 남은 한 본이 대만에 있는 것으로
원본급의 취급을 받습니다. <진당심인>은 이 작품이 위조된 것이 아닌 진품이고 누구도 위조할 수 없음을 진나라(사마의의 그 진나라입니다.)와 당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도장을 찍었다.는 전설적인 글씨입니다.
대만에 가서 보고싶네요. 갑자기.... 코로나 전에 꼭 갔어야 했는데..
중국에서 청명상하도로 만든 미디어 작품입니다. 규모가 엄청나다고 이야기만 들어왔네요.
잔잔하게 너무 이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