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그 말로만 듣던 교토식 화법의 끝판왕인가 싶네요. 이걸 항복으로 알아 듣는 인간이 있었을지.
일왕의 항복 선언이 없으면 일본인들이 결사항전을 할거란 조언 때문에 이런 방식의 선언을 허용한 것 같은데.
이게 무슨 항복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것인지.. 맥아더가 일본을 많이 좋아했나 싶네요.
베스트 댓글을 인용하자면
1923년생 작고하신 큰아버지 증언 - 당시 조선인 심정 -
1. 일본어 잘모름
2. 일본어를 알아도.. 일왕실 어휘와 말투라서 언어의 괴리가 심함. (왜놈 말투가 왜저래?)
3. 알아들어도.. 명확하게 종전..또는 항복, 패전 등의 용어가 없어서 뭘 말하자고 하는지 모름. (그냥 전쟁에 힘든 상황인데 화이팅하라는 말인가?)
4. 라디오 자체가 고가에 구입시 허가를 득해야하며, 그나마 시골은 라디오 방송도 안나옴.
5.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다음날.. 경찰서, 관공서 등에서 무장해제 등의 여러 조치가 나온 다음에야 해방된줄 알았다고함.
드라마일 뿐이죠.
아직 일본 군, 경찰이 그대로 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당시 36세의 신문기자였던 영문학자 조용만은 8월 15일 당일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사람들이 큰길로 뛰쳐나오고 독립만세를 부르고 좋아라고 법석일 줄 알았는데, 그냥 그전대로 무표정하기만 했다. 오랫동안 줄곧 겁만 먹고 일본 경찰에 옴쭉달싹 못하고 눌려 지내온 때문일까. 일본이 항복했다고 해도, 우리가 일본 통치에서 해방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일본 경찰이 아직도 버티고 있었으므로 이것이 겁났을는지도 몰랐다."(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 29쪽에서 재인용)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28871#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그래서 함석헌님이 당시 상황을 '도둑처럼 찾아 온 해방'이라고 했고... 이게 당시 상황을 표현하는 대명사처럼 되었죠.
라는 내용을 일본 왕실내부에서 쓰던 중세 고어급인 어투로 늘여서 꼬아 방송을 했으니 그 의미는 일본 현지에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죠..
제가 관련 글을 적었죠.
이 영화 보시면 저 선언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생쇼(!)를 했는지가 나옵니다.
회의만 짧았어도 나가사키에까지 핵이 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족음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