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편이 두개나 있는 글이며 이전 글을 보셔야 이해가 가능한 내용이므로 혹시 선수출신 딸과의 농구 승부에 관하여 글을 보신 적이 없으시면 아래의 글을 먼저 보시기를 권합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6327871CLIEN
드디어 지난 글에 말씀드렸던 경기를 치루었으며 이전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을 위하여 결과를 보고해 봅니다. 마침 잠깐 방학을 맞아 집에 와있는 아들 녀석이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자신이 살고 있는 주로 돌아가야 했기에 바로 그 전날에 행해진 딸과의 농구 시합은 저희 가족에게는 아들을 환송하는 각별한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날씨도 덥긴 하지만 미친 듯이 덥지 않았고 항상 비어 있는, 저희가 경기 장소로 선택한 농구장에는 한명도 사람이 없었던 지라 이 경기를 사정없이 기피해 왔던 쑥스러움이 많은 딸아이에게는 최상의 조건이었습니다. 더구나 경기장에는 19년째 제가 운행중인 낡은 미니밴을 온 가족이 타고 갔는데 미니밴 바깥쪽 아래에 접이식 의자를 펼쳐놓고 아내와 아들이 관중으로 앉으니 미니밴의 높은 지상고로 인하여 햇볕까지 제대로 차단이 되어서 우리집 관중들은 야외임에도 불구하고 쾌적하게 관람이 가능했다는 후기를 나중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다짐한게 몇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저의 큰 덩치로 밀면서 골 밑으로 들어가는, 소위 말하는 포스트업 플레이를 하지 말자는 거였고 또 하나는 거친 수비로 딸아이를 맘 상하게 하지 말자였습니다. 이미 미국 나이로도 성인이 된 딸아이지만 마음의 여리기가 을숙도의 갈대 같아서 한번 맘 상하면 방학이 끝나는 8월말까지 잘못하면 집안에 냉기가 가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글에 이미 룰을 소개해 드렸지만 골이 들어가지 않으면 리바운드 없이 무조건 볼을 중립지역으로 가져와 다시 시작한다는 룰은 리바운드에서 강점을 가진 저에게 불리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이 룰 덕분에 체력 소모가 그나마 덜할 수 있어서 제가 경기를 끝까지 뛸 수 있게 한 감사한 룰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농구 1:1 을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누가 겨루어 보고 싶을만큼 농구실력이 출중한 편이 아니다 보니 할 일도 없었을 뿐더러 이렇게 신체나 나이나 차이가 나는 선수와 플레이를 할 일은 더더구나 없었으니까요. 정말 생애 단 하나의 농구 이벤트였지 싶습니다.
딸과 마찬가지로 역시 선수 출신인 아들은 길거리 농구에서부터 1:1 까지 워낙 경험이 많은지라 (가끔 살고 있는 시에서 4-5시간 떨어진 곳까지 가서 용병으로 농구 시합을 뛰곤 합니다) 아들이 정한 룰은 경기를 하면서 고개가 끄덕여 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만약 애초에 제가 생각한 별다른 규정이 없는 7점 넣기 룰이었다면 저는 경기를 분명히 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딸아이와 1:1 을 시작해 보니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엄청 났습니다. 경기 시작 2-3분이 지나자마자 관중석에서 ‘벌써 지친거야?’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을 보니 제 얼굴이 썩은 모습으로 바뀌는데 불과 몇분 걸리지가 않더군요.
자유투로 첫 선공을 결정하고 딸아이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큰 덩치의 아빠가 바짝 붙어서 ‘훠이 훠이’ 하면서 어쩌다 한번씩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수비를 하니 당황한 기세가 역력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의 딸아이 슛은 어이없이 빗나가기 일쑤였고 저에게 바로 기회가 왔지만 저는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황당한 에어볼을 날려야 했습니다. 1;1 어렵더라구요, 작은 딸아이가 바싹 붙어 수비를 하는 것을 키로 쉽게 극복할 줄 알았는데 그건 정말 저의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옆의 오산이었습니다. ㅠ.ㅠ
골대에도 닿지 않는 황당한 곳으로 제가 날린 슛이 날아가자 아내와 아들 녀석의 웃음소리가 농구장을 가득 메웁니다 (위에도 말씀드렸지만 골밑으로 밀고 들어가는 포스트업 대신에 드리블을 오른쪽으로 치고 가서 적당한 거리에서 중거리(라고 저는 생각하지만 단거리) 슛이 제 전략이었습니다. 슈팅가드(슈가!) 출신인지라 슛이 될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딸아이도 뭔가 처음 겪는 시츄에이션이 황당했는지 어이없게도 골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첫 2득점을 제가 먼저 했습니다. 나중에 경기를 다시 보며 나눈 대화에서 딸아이는 정말 많이 당황했었다고 고백을 하네요. 물론 제 2득점도 뭐 꾸역 꾸역 들어간 거였습니다만…
그리고 2점을 넣고 저는 방전… 크흐흑.. 그리고 딸아이의 선출위력이 드디어 효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빠른 드리블로 시작점인 3점 라인에서부터 우측이나 좌측으로 치고 들어온 후 단 한번의 좌우 페인팅과 드리블로 제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벗겨지더군요. 굉장히 단조로운 패턴인데도 한번 스피드가 나니 지구 온난화로 더워진 북극에서 총맞은 곰 마냥 뒤뚱거리는 제가 매번 딸아이에 의해 손쉽게 좌우 드리블로 제껴지더군요. 아니 이런 드리블은 자기 경기를 백날 천날 보러갔을 때도 못보던 건데 선출이 일반인을 이런 식으로 농락하더군요. 자기 경기 뛸 때나 이렇게나 좀 하지. 흥!!!
선수를 보호하기 위하여 아들은 처음부터 4점을 내면 하프타임이라고 선언을 한터라 스코어가 4:2가 되자 바로 멈췄습니다. 물론 딸아이가 4구요. 그래도 제가 꼴에 자존심은 지킨다고 하프타임 휴식 시간에 일절 의자에 앉지 않았습니다. “난 이렇게 서있을 체력이 있다구!!!” 하는 외침이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고 물조차 거절하는 저를 보면서 왜 저러나 하더라구요. 크흐흑…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애초의 결심과는 달리 딱 한번만 포스트업을 해보고 싶더군요. 될까? 될까?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볼을 몰고 딸아이를 등뒤에 두고 슬슬 밀고 들어가니 골대 밑까지 가는게 그리 어렵지가 않더군요. 밀린다! 밀려!!
그러나 이미 체력은 바닥이 난지라 그 쉬운 골밑 슛도 파리채보다 더 빠르게 느껴지는 딸아이의 팔 두개가 얼굴 앞으로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이건 안들어가겠다 싶더라구요. 그냥 슈팅 자체를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제 발바닥은 땅에 붙어있어 5cm 점프도 안되구요, 딸아이는 폴짝폴짝 뛰면서 수비를 하니 14cm 신장 차이가 바로 무력화 되더군요. 1980년대 후반에 몇번 써보고 거의 써본 적이 없는(저는 슈팅가드라 외곽에서 쏘는 편이지 골대 밑 경합을 별로 안해봤습니다) 피봇 플레이를 하면서 그야말로 슛을 쏜게 아니고 골대 위에 가까스로 올려놓아서 힘없이 굴러 들어가는 걸로 한 골을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피벗을 하느라 확 돌아설 때 관중석에서 약간의, 아주 약간의 ‘와!’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며 ‘이 사람들이 나는 회전도 못하는 사람인줄 아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곧 쓰러지지는 않을 거라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정말 지쳐서 죽을 것 같았거든요. 처음에 아들이 7골도 장난 아니야 이렇게 룰 안하면 아빠 죽어 할 때 얘가 날 뭘로 보나 싶었는데 다음에는 꼭 5골이나 그 이하로 해야겠다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딸아이는 신나서 펄펄 날아다닙니다. 초반의 당혹스러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이 시합을 위하여 양갈래로 최근 들어 처음으로 머리를 땋고 오랜만에 농구화를 신고 ‘우다다다’ ‘우다다다’ 드리블을 해댑니다. 전날 이 경기 때문에 속까지 안좋아져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더니!!!
결과는 7:4 로 딸아이의 승리. 그래도 네골이나 넣은 나 자신에 ‘좋은 경기였다’ 라는 자위를 하며 딸아이와 경기를 마치는 악수를 하고 돌아서는데 아내가 아들과 딸에게 하는 한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꽂힙니다.
‘니네 아빠 하는 것 보니 다음에 나도 한번 붙어봐야겠다’
아니 이 양반이.. 울컥 하더라구요. 결국 여러분들이 이미 예상해 주신 교훈을 얻었습니다. ‘선출에게 까불지 말자!’ 그러나 매우 매우 즐거운 가족 이벤트였고 아내와 아들 얘기로는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었다고 하네요. 그럼 되었죠 뭐. 가장의 역할이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가족의 평화! 하하핫…..
뭐 많은 분들이 예상한 결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응원하신 분들에게는 아쉬운 결과이지만 뭐가 문제인지 확실히 알았으니 이 점을 개선해서 다시 한번 도전해서 이기겠다는 의지를 살짝 표현해보니 아들이 또 찬물을 끼얹네요.
‘아빠의 문제는 스피드에서 밀린다는 점인데 이건 노력해도 개선되는 부분이 아니니 다음 경기가 의미가 없네요.’
허, 나원참.. 그래도 틈틈이 농구공을 손에 한번 쥐어 보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라도 엄청난 골 세례를 퍼부어야 할 듯... (참고로 아내는 걷기 외에 다른 운동을 전혀 못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에 저와 같은 운동을 좋아하는 (아니 할 줄 아는) 따님이 계신 분이 있다면 꼭 저의 실추된 명예를 대신 회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꼬맹이 선출도 선출이다라는 교훈을 다시 새기며 남은 인생 겸손하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 아차차! 소중한 선물도 하나 얻었습니다. 경기를 끝내고 본 딸아이의 환한 웃음, 그리고 그날 저녁 핸드폰으로 찍은 경기 동영상을 함께 보면서 오랜만에 이야기 꽃을 피웠던 것.. 딸아이와 이런 시간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가 어딘가 하고 놀랬습니다.
결론은 역시 선출에게 덤비지 말라! 군요.
근데 사모님하고 경기는..이겨도 손해 져도 손해 아닌가요...
디피에서 알게된 샴페인님을 모공에서 보니 반갑습니다 ^^
가족들과의 미소짓는 화목한 시간들 멋지고 부럽네요!
가족들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생기신 게 좋네요 :)
어쩌다보니 글 올라오는 대로 시리즈 다 읽었네요;;
잼나게 읽었습니다!
이제 중학생 되니 슬슬 밀리는 느낌이에요... ㅠ_ㅠ
부모 입장에선 아이랑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그래도 즐겁자나요 ㅋㅋㅋ
이제 형들이나 삼촌들이랑 게임하고 다녀서 저랑도 잘 안 놀아줘요. ㅎㅎ
엘리트 가고 싶다는걸 작년에 말리느라 예전만큼의 사이는 아니지만
사춘기 온 녀석이랑 사이가 이 정도(?)면 다행이다 싶습니다.
타협점으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레슨은 쭉 하는걸로 하다보니 허리가 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 클럽에서 성적도 괜찮고 해서
중학교 가면서 엘리트 체육(체육 특기생)으로 농구를 하고 싶어했어요.
한국에서는 엘리트 체육으로 넘어가야 농구선수로 대학 입학 그리고 프로 선수로 가는 코스니깐요.
하지만, 여러 상황을 봤을 때 학업을 하면서 잘하는 취미로 농구를 가지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하에 일반중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다 큰 아이들과 재미있는 이벤트를 이리도 재미지게 하시다니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번 패배가 8월말까지 가정의 평화를 위한 한 가장의 희생이라고 보여집니다.
그 다음주에 고등학생 현주엽한테 발리고 덩크금지당한 서장훈한테 발리고
고딩이던 세자저하(이민우군)이랑 같이 농구하던 시절이 그립네요
시간있으니 몸 만들지 그러셨어요 ㅎㅎ
저도 아들과 축구하면 피지컬로는 제가 압도하는데
기술적인면에서 상대가 안되더라구요.
중딩만 되도 질것같네요 흡
멋진 가족분들과의 행복한 이벤트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번 겪으셔서 아시겠지만 마라톤 체력이 받쳐줘도 10분 내에 쏟아낼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력이 있으시던 없으시던 최근 농구를 안하셨다면 말그대로 죽습니다. 현역 3x3 프로선수들이 4명 로스터로 21점 한경기 끝나면 땀뻘뻘에 말도 못하고 기진맥진하는데 일반인은 더하죠.
포스트업 옵션을 쓸 수 밖에 없는건 잘쓰면 통하거든요... 개콘출신 송준근, 정범균님의 유튜브 슬램덕후 채널을 보시면...
선출, 비선출 가리지 않고 여선수에게 찐스트업을 시전하는 정범균님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실 수 밖에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