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 시절 연구실 일본인 동료에게 들은 바로는 일본에서는 역사시간에 20세기 부분은 아예 수업에서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교과서에 실려 있기는 한데, 수업은 하지 않고, 선생님이 관심있는 사람만 각자 읽어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연하지만 대입 시험에도 이 부분은 출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긴 우리도 일본 메이지 유신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누가 승리하였고, 그 결과가 무엇이고... 이런 거 한국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일본에서 공부하기 전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니엉덩이내꺼
IP 118.♡.7.140
04-13
2021-04-13 07: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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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상자(FreeHK)님 과거의 잘못을 덮으려는 일본의 미래는 없겠네요. 직접 보고느낀 경험을 공유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일성이 모택동에서 남침 승인해달라고 수차례 요청. 모택동 스탈린에게 김일성의 요구 전달. 하지만 스탈린 미국의 참전과 확전 우려로 외면.
위의 과정 수 차례 반복. 그러던 중 미국의 에치슨 라인 선언.
스탈린 미국 발 빼는구나 싶어서 승인. 대신 중공과 마적단 출신 김일성으로는 혹시 모를 미국의 참전 전 전쟁 끝낼 가망없으니 독소전 베테랑 장성 일제 소집.
남침 작계 수립 해줌. (기본적으로 기습해서 서울로 진격한 주력과 춘천으로 우회한 주력이 수원에서 후퇴하는 국군 두드려 패서 소멸시키는 망치와 모루 전술, 하지만 춘천의 김종오 장군에 발목 잡혀서 실패.)
암튼 개전 초 침략군은 김일성의 북한군과 우리가 동포네 어쩌네 하는 조선족 3개 사단(표면상 국제적으로 중공의 개입설 차단 가능)으로 구성되어 있었음. 모택동이 보내준 조선족 3개 사단은 국공 내전에서 혁혁한 공을 올린 최정예였고, 모택동도 이들의 공로 때문에 김일성 도운 거나 마찬가지였고.
이후 북한의 패색이 짙어지자 중공이 대놓고 참전했고요.
북한과 중공이 침략했다는 말은 모든 면에서 정확한 표현이죠.
엽차
IP 221.♡.211.172
04-13
2021-04-13 05: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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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릴 줄 알았는데 대충은 맞히는군요.
ika
IP 153.♡.118.55
04-13
2021-04-13 06: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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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저렇게 한건지 의심스런 퀄리티네요
앗싸조쿠나
IP 175.♡.30.51
04-13
2021-04-13 07: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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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일본남자애가 한국어랑 북한말이랑 같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더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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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우리도 일본 메이지 유신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누가 승리하였고, 그 결과가 무엇이고... 이런 거 한국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일본에서 공부하기 전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김일성이 모택동에서 남침 승인해달라고 수차례 요청.
모택동 스탈린에게 김일성의 요구 전달.
하지만 스탈린 미국의 참전과 확전 우려로 외면.
위의 과정 수 차례 반복. 그러던 중 미국의 에치슨 라인 선언.
스탈린 미국 발 빼는구나 싶어서 승인. 대신 중공과 마적단 출신 김일성으로는 혹시 모를 미국의 참전 전 전쟁 끝낼 가망없으니 독소전 베테랑 장성 일제 소집.
남침 작계 수립 해줌. (기본적으로 기습해서 서울로 진격한 주력과 춘천으로 우회한 주력이 수원에서 후퇴하는 국군 두드려 패서 소멸시키는 망치와 모루 전술, 하지만 춘천의 김종오 장군에 발목 잡혀서 실패.)
암튼 개전 초 침략군은 김일성의 북한군과 우리가 동포네 어쩌네 하는 조선족 3개 사단(표면상 국제적으로 중공의 개입설 차단 가능)으로 구성되어 있었음. 모택동이 보내준 조선족 3개 사단은 국공 내전에서 혁혁한 공을 올린 최정예였고, 모택동도 이들의 공로 때문에 김일성 도운 거나 마찬가지였고.
이후 북한의 패색이 짙어지자 중공이 대놓고 참전했고요.
북한과 중공이 침략했다는 말은 모든 면에서 정확한 표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