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세계 최강국으로 인정받던
인구 2500만명의 프랑스와
영국이 7년전쟁(1756~1763)을 치르지요.
이때 아메리카, 인도에서 승리하고
세계 최강국으로 번영을 누리지요.
그때의 식민지가 위 지도라네요.
물론 얼마못가 1775년의 미국독립혁명 발발로
그 지위가 단축되지만요.
이때 영국과 앙숙인 프랑스 군주(이름 기억 안남 ㅜㅜ)가 미국독립혁명을 지원하고
아이러니하게 미국혁명이 도화선이 되어
14년 후 프랑스혁명(1789)의 단초가 되고 군주는
자리에서 퇴출~
프랑스는 미국혁명 100년을 기념해 자유의 여신상을 보내주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미국은 프랑스 에펠탑 근처에
자유의 여신상을 세우고~
그럼 영국은 왕따인가요?
미국에 본토 원주민도 있지만
영국 입장에서는
메이플라워호 타고 미국에 정착한
영국 청교도 102명인가? 그들을
미국의 조상이라고 우길 것 같기도 한데요.
암튼 이들도 영국 본토에서 성공회만 인정하고
청교도를 박해해서 고향을 떠났기에
영국왕실에 좋은 감정은 없을테고요.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복잡다묘한
관계가 얽혀 한 편으로는
이해도 되고
우리네 회사 생활만 보더라도
여러 총만 안들었을 뿐 복잡한 갈등관계가 있고
과거의 역사가 지금의 역사인 것 같습니다.
암튼 결론은
영국의 식민지가 참 많았구나.
그리고
전쟁의 이면에도 돈(세금)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구나입니다. ㅡㅡ;;;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잘못된 정보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네 기억났어요.
루이 16세 ㅎㅎㅎ
감사합니다.
전쟁이건 혁명이건 돈문제가 핵심입니다 =3=3
2차대전이후 영국이 베트남을 프랑스에게 이양 안하고 더 주둔했다면
월남전은 없었을거라고 하더군요.
식민지부심인가봐요
댓글 달아주신 님들 감사합니다.
댓글 보면서 다른 시각, 오류, 추가 지식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영국인들에 의해 버지니아에 제임스타운 식민지가 건설되죠. 이들은 청교도들과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 입니다.
위키에서 "미국의 식민지 역사"를 찾아보시면 자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을 것입니다.
추가 정보 감사합니다.^^
제임스타운은 유럽에서 건너간 144명인가?
긁적;
메익플라워호보다 13년인가? 긁적;
먼저 도착했다고 하지만 주로 범죄자들이 도피해 간 곳으로 미국 역사에서 이들을 시조로 보지않고
메플 타고 간 사람들을 필그림 파덜즈해서
조상으로 인정한다고 알고 있어요.
즐거운 저녁 되세요.^^
포카혼타스의 배경이 된 제1차 엥글로-포우하탄 전쟁이 1609년에 발발했으니(포카혼타스는 1614년이니, 바로 그 배경이 저 전쟁일 겁니다) 메이플라워가 상륙한 1620년 보다 훨씬 이전이죠.
1607년 : 제임스타운 건설(144명, 항해 과정에서 40여명 사망해서 100여명이 건설했으나 그해 가을 절반이 사망(50명)
1608년 : 유럽인들(폴란드, 네델란드) 이주
1609년 : 제1차 앵글로-포우하탄 전쟁
1610년 : 이주민 급감(220명 --> 60명)
1613년 : 제1차 앵글로-포우하탄 전쟁 종결
1614년 : 포우하탄 추장딸 포카혼타스, 영국인과 결혼
1619년 : 흑인 노예들 이주, 여성들 이주(90명, 그 이전까지는 거의 남자들만 있었음)
1620년 : 청교도들, 메이플라워호 도착(메사추세츠 주 플리머스)
1622년 : 제임스타운 학살(인구의 1/3인 347명 사망)
1644년 : 제2차 앵글로-포우하탄 전쟁, 포우하탄 몰락
즐거운 시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