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4일, 마침 생일 저녁이였습니다. 어느덧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게 된 강아지 까미 - 유기견이였습니다. 그래서 버림받는줄 알고 밖에 나가는걸 정말로 엄청나게 싫어했었습니다 - 를 운동시킬 겸 마눌신님과 둘째가 산책을 나갔고, 저는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잡생각을 하고 있는 중 마침 산책을 마치고 마눌신님과 둘째가 돌아왔는데, 산책을 다녀오는데 걸린 시간이 이상하게 좀 짧았거든요.
마눌신님의 품 속에는 그야말로 콩알만한 삼색 아기 고양이가 안겨 있었는데, 군데군데 털이 빠진데다가 구수한 향기 – 사실 고양이의 대변 냄새는 초 울트라 악취를 풍기지만 차마 사실대로 쓸 수는 없으니 - 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마눌신님 말에 따르면 집 뒤편 다른 아파트 단지의 야트막한 담장 위에 수건이 깔려 있었고, 거기에 뚜껑을 딴 사료 캔 두개와 함께 고양이가 버려져 있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사료 캔에는 개미가 들끓고 있더랍니다. 저는 퍼뜩 정신이 들어 이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자고 선언한 뒤 고양이를 받아 안고는 평소 다니는 동물병원에 뛰다시피 데리고 갔습니다. 이 작은 생명을 단지 피부병과 설사가 있다고 버린 주인을 내심 원망하면서. 또 꼭 살려내고 싶어서.
설사 때문에 탈수가 조금 온 상태고 곰팡이성 피부병에 결막염 증세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행히도 설사용 처방 사료를 주면서 약을 써서 적절히 치료를 하면 회복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체온을 재려고 체온계를 내가 안고 있던 고양이의 뒤에 밀어넣는 순간, 뭔가 썩 좋지 않은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그 아프고 기운 없는 와중에도 기분나쁘다는듯 내 약지손가락을 물어 떡 하니 동그란 바람구멍을 하나 내 버렸고, 바람구멍에서 별로 반갑지 않은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습니다. 고양잇과 동물 중에 맹수가 많다더라니. 어쨌거나 – 아마도 약간 알딸딸한 상태라 그냥 버틴 것 같은데 – 체온은 쟀고, 이 황당한 상황을 본 수의사 선생님은 베타딘으로 손가락을 소독하고 밴드로 드레싱을 해 주셨습니다.
동물병원에서 맹수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 받은 사람이라. 흔치 않은 경험을 했군요.
기본적인 치료를 받게 하고 목욕을 시킨 다음 아기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일단은 낯선 곳에 갑자기 오게 됐으니 약간의 적응기간이 필요할 거라는 마눌신님의 의견에 따라 부랴부랴 감자 박스에 신문지를 깔아 은신박스를 마련해 주었고, 이렇게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니 처방식을 준 덕에 밤새 설사는 대강 잡혔는데, 결막염과 피부병은 치료를 좀 더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듬성듬성 털이 빠져 있는 모습이 안쓰럽데요. 그날부터 한동안 시간 날 때마다 안아주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직 아기라 그런지 품에 안아 심장소리를 들려주면 안심한 듯 안겨 가끔 쭙쭙이를 하다가 잠이 들곤 했어요. 이게 나중에 부메랑처럼 돌아오는데...
며칠 뒤 어느날 아침, 박스에 고양이가 없었습니다. 낯선 곳에 처음 온 터라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게 뻔하니 주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디에 갔나 여기저기 둘러봤더니만 박스 바로 옆 벽 모퉁이에 착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밤새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렸는데 그게 너무나도 무서워 목숨을 건 탈출을 한 다음 최대한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에 숨은 거였어요.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주거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집에 있던 강아지용 케이지 – 이게 제법 큽니다 – 에 고양이를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운동화 박스에 수건을 깔아 케이지 안에 넣어 은신할 수 있도록 하고 다른 종이박스에 화장실을 세팅해 줬습니다. 작은 그릇에 사료와 물은 덤. 창살이 있는 케이지 안이니 어디론가 도망갈 수는 없겠지만, 안심하고 새로운 집을 관찰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였습니다. 숨어있고 싶으면 운동화 박스 안으로 들어가면 되고요.
가족회의를 열어 새 가족이 된 아기고양이의 이름을 ‘앵두’라고 정했습니다.
2014년 여름, 개인적으로는 이런저런 일로 조금 힘들었던 시절. 작은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부메랑의 실체입니다. 이녀석 입질(?)을 해요... ㅠㅠ
사진 좋습니다.
살을 부벼가며 키운 아이라는 메시지가 팍 오니까요. :)
흐뭇하게 읽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
ps : 냥이 한마리당 10장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