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를 보았습니다.
그 전에 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부산행"을 본 것이 전부고 말 많던 "염력"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애니메이션도 보지 않았고 각본으로 참여한 드라마 "방법"은 봤네요.
(그러고보니 "염력" 빼고 실사 작품은 다 "ㅂ"으로 시작하지만 아마 우연이겠죠?)
"반도"까지 보고나서 제가 본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들과 보지 않은 영화인 "염력"의 소재(초능력), 그리고 드라마 "방법"까지를 주욱 놓고 생각을 해보면
연상호 감독은 한국 실사영화, 드라마에서 잘 활용되지 않았던 장르와 소재를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부산행 : 좀비
염력 : 초능력
방법 : 오컬트
반도 : 일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런 한국 영화에서의 마이너 장르를 메이저에서 여러 편 다룬 다는 것은 일단 제작사가 그의 흥행성을 믿는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이런 서브컬처 장르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완성도를 떠나서 응원하는 편이긴 합니다.
(예를 들어 "마녀" 같은 영화는 잘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입장상 망하지 말고 다음 편에 좀 더 발전한 모습으로 나와주길 바라는 약간 양가적 입장이랄까요)
소재와 장르는 그렇다치고 그럼 시나리오 및 연출은 어떤가
영화나 영상에 문외한인 평범한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의 실사영화와 드라마에서 드문 장르와 소재를 쓰는 대신 각본과 연출은 클리셰를 많이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장르와 소재의 특이성을 각본과 연출의 익숙함으로 커버한달까요.
장르에 익숙치 않은 사람도 보면서 다음 장면을 유추하기 쉽게 뻔한 대사와 뻔한 장면, 그리고 뻔한 흐름으로 이야기를 가져간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초반 5분만 봐도 살고 죽을 사람이 다 그려지고 엔딩이 떠오르는 그런 영화란 말이죠.
그런 작품이라고 미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장르무비를 잘 만드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거든요.
그럼 연상호감독은 과연 그 "잘만드는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가 하면...
흥행과는 별개로 그렇게 좋은 결과물은 아닌 것 같다는 게 제 소감입니다.
(특히 그 신파의 정서가 참 별로입니다. 그런 거 없이도 충분히 좋은 장르물을 만들 수 있을텐데요.)
"부산행"은 제게 그냥 그런 영화였고 소재 때문에 기대했던 "방법"은 정말 클리셰 덩어리(그것도 일본의 유사장르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는 그런)였습니다.
그런 제 평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반도"는 ... 음 기대보다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핍진성으로 보자면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런 오염지에서 사람을 구출하는데 아무런 방호복도 없고 격리도 없이 그냥 대낮에 헬기로 우다다 하며 나타나서 좀비가 난리치는 동안 어떤 무력시위도 없이 대기타는 UN군은...참 뭐랄까 너무 기능적으로 쓰이기만 하죠.
캐릭터들이 셀로판지 처럼 납작해서 입체감이 없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하나하나의 캐릭터들 마다 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적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스테레오 타입적인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다만 연출 등에서 그걸 넘어설 만한 어떤 지점이 없다는 게 안타까운 거죠.
아무튼 그런 개연성-핍진성을 빼면 몇몇 지점의 액션은 참신함을 주기도 하고 이거 뭐야 싶기도 한 그런 선을 넘나듭니다.
다만 그럼에도 이 시국에 오랜만에 극장가서 보고 오기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추천까진 아니어도 볼 거 없는데 극장가고 싶으면 봐도 될 정도랄까요.
많이 까인 연감독의 인터뷰에서 보면 이 영화로 하고 싶었던 게 뭔지 아주 투명하게 보입니다.
"염력"의 흥행실패 이후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왜 보는가에 집중해서
그 이유를 스펙타클이라 생각해서 일단 그 스펙타클을 구현하는 데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봉사를 하는 것이죠.
비슷한 영화로 떠오르는 건 "옹박"입니다. "옹박"에서 시나리오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빼앗긴 불상의 머리를 찾아온다."는 간단한 시놉 아래서 얄팍한 캐릭터가 온몸을 던져서 액션을 보여줍니다.
그 영화의 목표는 바로 그 점에 있거든요. 무에타이에 기반한 작살나는 액션을 이쪽 저쪽에서 슬로우로 멋지게 보여주마.
제가 보기에 "옹박"의 목표는 그런 액션이었고 그리고 그 목표는 제대로 이뤄져서 개봉당시에 컬트적인 인기가 있었죠.
그리고 연감독은 스펙타클을 보여준다는 목표 아래 그럼 어떤 스펙타클이냐는 것에 대해 아무래도 "카체이스"를 들고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다른 액션도 이런 저런게 나오지만 다 쓸데 없고 기억도 안나고 머리에 남는 것은 모하비의 스턴트 주행이었죠.
이 분야의 마스터피스인 매드맥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참신한 액션설계도 있었다고 생각하구요.
좀비는 주제가 아니라 풍경이라는 말도 그런 점에서 아주 정확했습니다.
이 영화 "반도"가 수작은 아니지만 여름철 팝콘 무비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도입과 말미의 그 신파는 좀...그렇네요;;
연감독이 각본을 쓴 티비 시리즈 "방법" 시청 후 그에게 상당히 실망했던 것에 비하면 "반도"를 보고는 오히려 실망을 조금 덜어냈습니다. 이 사람은 최소한 자기가 뭘 하려고 하는지는 확실히 아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냥 거기서 멈출지 좀 더 업그레이드된 작품을 들고 올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말이죠.
단지 그걸 뛰어넘는 창의성도 같이 발휘해줬으면 하지만 결코 쉽지않겠죠.
장르의 다양성은 관객 입장에서 너무 좋죠.
때론 장르나 소재 자체의 매력 외에 아무 것도 없는 작품도 있기도 하지만 그런 장르의 작품이 더 나올 수록 완성도도 더 올라가겠죠.
한국에서는 드문 장르임에는 확실하니까요. 완전 새로운 장르 같은 게 있을리도 없구요.
올리고 다시 읽어보니 글이 많이 부족하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뭐지. 생각보다 괜찮은데?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처럼 디테일에 집착하고 마스터피스를 만들고 싶은 감독도 있고 연상호 감독처럼 적정투자로 효율적인 팝콘무비를 만들고 싶은 사람도 있구요.
매드맥스+신파+아포칼립스+라스트오브어스+강동원+이정현+좀비조연군
전형적 신파 컷만 좀 덜고 가장 마지막 늘어지는 부분만 좀 더 속도감있게 바꿨다면 좋았을거 같아요.
가끔 보면 우리나라 고객처럼 까다로운 관객이 있나 싶긴합니다. 하지만 그런 눈높이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죠. 우리 눈높이에 맞추면 세계에서 통하는건 사실인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