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참 말이 트여서 온갖 이야기를 떠드는 만 36개월 남자아이입니다.
말하기에 재미가 들렸는지 어른들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기억력도 꽤 발달한 것 같아서 신기한데, 오늘 어린이집 알림장 보고 빵 터졌습니다.
"오늘 점토놀이를 하다가 옥수수 이야기가 나왔는데, OO이가
'OO이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옥수수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옥수수를 늦게 사 와서 엄마가 슬펐대. 그래서 울었대,'라고 이야기해주었어요."
하아아아아아..............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첫째 임신했을 때 입덧으로 쓰러져 늘어져있다가 갑자기 불현듯 통조림 옥수수가 너무 먹고 싶었거든요.
그 달달한 스위트콘이 너무너무너무 먹고 싶어서 사달라고 했는데 그 때 남편은 한참 게임 (그것도 한번 시작하면 30분은 뛰어야 하는 보스 레이드...)을 하고 있었죠. 자기 딴에는 이제 막 들어와서 빠지기 곤란한 상황이었던지라 끝나면 사러 가겠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한참 끝나지 않아서 어언 1시간 가까이 기다린 것 같아요. 진짜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가뜩이나 종일 입덧으로 토해서 먹은 것도 없는데 그깟 옥수수가 뭐라고, 그거 하나 먹으면 그나마 조금 기운이 날 것 같았는데 게임에 몰두하느라 조금만 이따가, 조금만 이따가! 를 외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너무 서러워서 왈칵 눈물이 났더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직접 가서 사오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땐 진짜 하루 종일 토하고 앉아있을 기력도 없어서 누워있던데다 기분도 막 엄청 롤러코스터 타고 그랬던 지옥같은 시간이었어요...
어찌어찌 게임이 끝나자마자 남편은 후다닥 달려나가서 통조림을 사왔지만 이미 너무 늦었는지 딱 한 입 먹자마자 식욕이 사라져서 다시 우웩ㅠㅠㅠ(이미 토할 것도 없어서 위액만...)을 하고, 그깟 보스 레이드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서럽게 울다 잠들었던 그런 날이었어요.
얼마 전에 아이랑 돈까스 먹으러 갔더니 스위트콘이 샐러드 사이에 있길래, 문득 그 때 일이 생각나 혼잣말처럼 주절거렸거든요.
옛날 일이니 아이한테는 웃으면서 얘기해줬고, 저는 그 얘길 했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이걸 고대로 기억했다가 어린이집 선생님께 얘기할 줄이야....................아아 선생님은 얼마나 웃으셨을까요 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그러게 아버님 왜 빨리 안사오셨어요 하고 ㅋㅋㅋ)
정말 정말 정말 아이들은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흡수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네요.
오늘도 또 이렇게 자기반성(?)을 해 봅니다. 내가 오늘 아이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지 싶네요.
아이 키우시는 여러분도 조심하세요, 다 보고 듣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통조림은 1시간 후에도 살 수 있지만 보스레이드는 지금 안하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라고 그는 변명했다고 합니다.
서로 자기아빠 자랑하는데
저희 애는 "우리 아빤 맨날 게임만 한다~";;;;;
전 문 다 닫았는데 던킨이 먹고싶다던...... 어쩌라고...ㅡ,.ㅡ 평생 갑니다....
답은 가는 척이라도 해라... 그래야 할말이라도 있....
진짜 그 때 서러운거 평생 가는데 저희 남편은 왜 사서 그래가지고...
어 그러냐.? 네.. 아빠가 그러는데 할아버지랑 가면 돈도 많이들고 해서 이번엔 우리끼리만 가자고 그랬어엽..^^;;;